택배기사와 택배회사 갈등 일단락 됐지만 …
갈등 해소할 만한 근본대책 나오지 않아
핵심은 특수고용직의 진짜 사용자 찾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다. 개인사업자다. 그래도 노조는 만들 수 있다. 노조법상으로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누구는 ‘개인사업자’라 하고, 누구는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법이 오락가락이니 그들도 오락가락한다. 심지어 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사장이 누군지 모른다.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환경이 열악한 줄도 모른다. 이 황당한 상황을 그대로 묻어두는 게 옳을까. 당신 옆집의 마음씨 좋은 청년이 택배기사라도 그러겠는가. 더스쿠프(The SCOOP)가 택배기사와 택배회사간 갈등이 풀리지 않는 진짜 이유를 취재했다. 

택배기사들의 노동환경 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택배기사들의 노동환경 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택배기사들의 ‘7시간 공짜 노동’ 주장에 혹자는 피로감을 느낀다. “다들 먹고살기 힘든데 또 돈타령이냐”는 거다. 하지만 이 주장의 쟁점은 돈이 아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되찾겠다는 작은 움직임이다. 택배기사들은 노동3권을 인정받았지만 자신들의 사장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일한다. 노동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택배기사 중 상당수가 자신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한지도 모른채 땀을 흘리고 있다는 점이다.

“택배 분류에만 7시간씩 걸린다. 물량은 계속 늘고 있다. 택배분류에 더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는 거다. 우리는 배송을 하는 사람들이지, 분류작업자가 아니다. ‘사용자(CJ대한통운)’가 별도 인원을 고용하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CJ대한통운(이하 CJ) 택배기사들이 주축이 돼 결성된 전국택배연대노조(이하 택배연대)가 최근 주장하는 내용이다.

CJ측은 이렇게 반론했다. “회사는 택배물량 증가를 예견하고 2016년 11월부터 1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자동분류기를 도입해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줄였다. 더구나 우린 택배기사들과 계약 당사자도 아니다. 택배기사들은 대리점주들과 협의해야 한다.”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한 소비자는 “하루 이틀이면 오는 택배를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받았다”면서 “특히 전문 택배기사가 아닌 탓인지 소화전에다 물건을 두고 가는 일까지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용노동부가 특수고용직 노조에 실질적인 노동3권을 보장해주려면 그들에게 ‘실질 사용자’부터 찾아줘야 한다.[사진=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특수고용직 노조에 실질적인 노동3권을 보장해주려면 그들에게 ‘실질 사용자’부터 찾아줘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이 불만의 화살은 아무래도 택배연대에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프레임은 이미 ‘택배기사들의 분류작업 거부→배송지연→파업으로 간주한 CJ의 대체인력 투입’으로 짜인지 오래다. 실제로도 “노조가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밥그릇 싸움’은 노조 비판에 빠지지 않는 문구다. 

하지만 “노동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택배연대의 절박한 요구를 일부 귀족노조의 임금 투쟁과 비슷한 시각으로 비판해선 곤란하다. 임금을 또 올려달라는 주장과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달라는 요청은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엔 주 52시간 근무는 고사하고 온갖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며 일하는 이들이 숱하게 많다. 택배기사나 오토바이 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방문판매원, 학원 강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건설기계운전자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다.

물론 일부에선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개인사업자다. 돈을 많이 벌어가려고 자발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일하는데 뭐가 문제인가.” 하지만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수는 약 230만명(2015년 기준)이다.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늘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인구가 약 28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10명 중 1명이 특수고용직인 셈이다.

‘노동자성’ 해석에서 모순 시작

최소한의 여가시간도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하루 벌이에만 신경하며 살아가는 특수고용직은 내 친구, 옆집 아저씨, 혹은 내 가족일 수도 있다. 230만명 특수고용직의 현실을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더구나 택배연대가 제기하는 문제는 오롯이 CJ대한통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2•3위 택배업체 롯데글로벌로지스나 한진택배도 특수고용직의 모순을 갖고 있다. 실제로 택배연대에는 롯데와 한진의 택배기사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어정쩡한 특수고용직의 법적 지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CJ 택배기사들의 노조 설립과정부터 보자. 지난해 1월 CJ 택배기사들은 택배연대를 설립했고, 11월 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아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정식 보장받았다. 합법적 노동쟁의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거다. [※ 참고 : 택배기사는 노동3권을 인정받았지만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는 아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이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각각 다르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동3권을 보장 받은 노조가 누굴 상대로 노동쟁의를 하느냐다. 노동3권을 보장받았지만 의견을 나누고 협의를 진행할 주체가 모호하다는 거다. 노동부는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대리점주와 맺고 있으니 ‘사용자(사측)’는 대리점주”라고 주장했다. CJ측도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대리점주들은 대부분 택배회사와 계약관계를 맺고 있다. 택배회사와 직접 계약을 맺거나 지입차가 더 많다는 것 외에 택배기사와 별 차이가 없다. 실제로 대리점주 중엔 택배기사도 많다. 대리점주에게 권한이 많은 것도 아니다. 가령, 택배를 분배하는 실질적인 권한은 대리점주가 아닌 택배회사가 갖고 있다. 노동부가 택배연대의 사용자로 ‘대리점주’를 지목했지만 그들이 ‘실질적인 사용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택배연대와 비슷한 처지의 특수고용직들이 노조를 만들 때 ‘실제 사장이 누구냐’를 묻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택배연대 관계자는 “대리점주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수수료를 좀 낮춰주는 게 전부”라면서 “택배회사가 갖은 이유로 택배물량을 분배하지 않으면 대리점주도 끝인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이들에게 우리가 뭘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급한 문제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게 CJ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사용자’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택배기사의 사장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탓에 계약체계도 엉망이다. 대기업 택배회사는 ‘먼 산 불구경’만 하니, 시스템이 구축될 리 없다. 더 큰 택배기사(대리점주)가 작은 택배기사를 거느리기 위한 불공정 계약이 수두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례로 대리점주들과 맺고 있는 계약서는 철저히 ‘갑(대리점주)’ 위주다. CJ의 경우 노조가 설립된 이후 개선된 표준계약서가 등장했지만, 계약기간이 남아 기존 계약 내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하는 CJ 택배기사들도 부지기수다. 기존의 한 계약서에는 “택배를 분실 혹은 파손하거나 기타 피해를 입혔을 경우, 분실에 대해서는 즉시 시점 가액으로 변상하고 파손 및 기타 피해를 입혔을 경우 물품가액의 전액을 ‘을’이 부담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조항까지 있다. 

이용희 IBS법률사무소 변호사는“‘전액배상’을 특정한 경우에 한정하고 있는 현행 상법에 어긋나는 내용”이라면서 “특히 대리점주는 운송보험에도 가입돼 있을 텐데 을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진의 경우 한 대리점주는 “‘을’은 계약 해지 시 2개월 전에 통보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화물 1개당 2000원씩 계산해 용차 비용을 손해배상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었다가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행위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롯데에선 계약서를 써놓고 나눠주지 않는 곳도 있다. 심지어 3사에서 정식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만 하고 일하는 택배기사들도 수두룩하다.

해결책은 없을까. 노동부가 택배기사들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해 실질적인 노동3권을 부여하려 했다면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제대로 찾아주면 그만이다. 더 간단한 방법도 있다. 특수고용직에게 “노조법상으로만 노동자”라는 말장난보다 모든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도록 해주면 된다. 그럼 노동환경 개선은 법에 맞춰 이뤄지기 마련이다. 

7월 19일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차동호 CJ대한통운 부사장의 면담 후 사태는 진정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사진=뉴시스]
7월 19일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차동호 CJ대한통운 부사장의 면담 후 사태는 진정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사진=뉴시스]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민주노총법률원의 김세희 변호사 겸 노무사는 “노조법에서는 비재직자의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법보다 노동자성을 더 넓게 인정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에서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느냐는 갑론을박이 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을 일괄적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질 사용자’ 찾는 게 급선무

하지만 그는 “사용자 인정 범위는 이야기가 다르다”면서 말을 이었다. “실제 노동조건을 결정짓는 당사자는 대부분 원청회사인 만큼 사용자를 넓게 인정해줘야 하는데, 가끔 개별 판례를 통해서만 인정하고 있다.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수고용직들이 개별적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등을 통해 ‘진짜 사장 찾기’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19일 김종훈 민중당 국회의원과 차동호 CJ대한통운 부사장간 면담을 통해 ‘정상화 구두 합의’를 한 후, 택배기사들도 정상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런 땜질식 처방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통일하고, 실제 사용자를 찾아주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게 특수고용직의 눈물을 닦아주는 첫 단추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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