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5인승은 좁아서 소화기 못 싣는다니…
[김필수의 Clean Car Talk] 5인승은 좁아서 소화기 못 싣는다니…
  •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 호수 298
  • 승인 2018.07.25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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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무산된 소화기 의무 배치

2년 전 정부는 5인승 이상 차량에 소화기를 의무 배치하는 법을 추진했다. 차량 화재가 발생할 경우, 초기 진화하는 데 소화기만큼 유용한 건 없어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유를 물어보니 “소화기가 무거워서 차에 실을 수 없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5인승 이상 차량용 소화기 탑재 의무화 제도가 슬그머니 무산됐다.[사진=뉴시스]
5인승 이상 차량용 소화기 탑재 의무화 제도가 슬그머니 무산됐다.[사진=뉴시스]

자동차 관련 이슈는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생활과 밀접한 영역이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이슈는 있게 마련이다. 2년 전 정부가 추진하겠다던 ‘5인승 이상 차량용 소화기 탑재 의무화’를 철회했다는 이슈는 그중 대표적이다. 

일반 소비자 눈엔 관심 없는 내용일 거다. 차의 품질이나 가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량용 소화기가 생명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냥 지나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자동차 화재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차 전체에 연료가 흐르고 있어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초기에 진화하지 않으면 자동차가 전소될 수밖에 없다. 차량 내부에 소화기를 배치하는 건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이제 2016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그해 소방청의 전신인 국민안전처가 ‘화재안전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차량용 소화기 의무 배치 차량을 7인승에서 5인승 이상으로 넓히는 게 골자였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을 국민안전처의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로 이관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는 구체적인 플랜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철회됐다. 소방청이 최근 공개한 ‘2018 소방관련법령 개정 계획안’에 따르면 차량 소화기 비치 규정을 소방법으로 이관하되, 기존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탑승 인원 5인승 이상의 차량에 소화기 설치 의무를 두지 않겠다는 얘기다.

어이없는 결과다. 계획이 무산된 이유도 다양하다. “소화기를 적재할 공간이 없다” “소화기 설치로 차량 중량이 올라가면 연비에 악영향을 미친다” “해외 선진국은 의무가 아니다” 등. 심지어 “소화기가 흉기로 작용해 안전에 위협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고, “자유무역협정(FTA)로 인해 무역마찰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고 한다. 

자동차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목숨을 살리는 장비를 설치하는 데 대체 무슨 이유로 막아설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출시되는 소화기는 가볍고 크기도 작다. 공간이나 무게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거다. 필요 없이 무거운 옵션만 끼워 판매하는 제조사의 관행을 떠올리면 기가 찰 정도다.

해외 선진국도 의무화가 아닌 이유로 우리도 의무화할 필요가 없다는 건 그들의 문화와 시스템을 모르고 꺼낸 무지한 발언이다. 교통 안전문화를 충분히 교육받은 선진국에선 차량 화재가 발생하면 너도나도 소화기를 꺼내 함께 불을 진압한다. 사진을 찍거나 구경하느라 바쁜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필자는 의심한다. 자동차 관련법을 소방청에 뺏기는 국토교통부가 몽니를 부린 건 아닐까. 혹은 비용 부담이 늘고 이익률 저하를 고민하는 제조사들의 로비가 작용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4185명, 인구 10만명당 3.5명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1.1명 수준인데, 한국은 3배 이상 높다. 올해 초 정부에서 2000명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태도로는 무리다. 소화기만 제대로 준비됐다면 다수의 목숨을 구했을 거라 확신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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