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장인 마이스터 공존 모색 긍정적 평가
다시세운시민협의회 운영도 자율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논란 잠재우지 못해
소유자-세입자 사생협약 약점 많아

낡고 음침한 세운상가를 ‘다시 세우기’로 한 것은 서울시였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차 사업이 끝난 세운상가는 ‘젊은 창업자의 기운이 넘치는 곳’으로 환골탈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고, 언론도 서울시도 그렇게 홍보했다. 그로부터 1년여, ‘다시세운’상가는 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임대료가 껑충 뛴데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뜸해서다. 세운상가는 과연 다시 세워진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세운상가의 불편한 재생을 취재했다. 

지난해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세운상가엔 활기가 돌지 않는다.[사진=천막사진관]
지난해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세운상가엔 활기가 돌지 않는다.[사진=천막사진관]

도시재생이 유행이다. 글자 그대로 낡은 도시를 되살리는 일이다. 언뜻 똑같아 보이는 뉴타운ㆍ재개발과는 함의含意가 다르다. 재개발ㆍ뉴타운 등 도시개발정책은 ‘관官 주도 톱다운(Top-down)’ 방식이었다. 그 때문에 지역 주민의 의견은 외면되기 일쑤였고, 그러다 내몰린 이들은 박탈감에 몸서리쳤다. 웅장한 빌딩과 높은 아파트를 콘셉트로 삼은 탓에 골목의 정겨움도 콩크리트 속에 묻혔다. 반면 재개발ㆍ뉴타운의 대안으로 등장한 도시재생은 참여와 협업이 콘셉트다. 주민과 전문가가 지역 현안을 논의하고 직접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이런 도시재생은 ‘청계천 복원사업’의 흥행 이후 주목받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여러 지자체장들이 시정철학으로 삼았고, 2013년엔 관련법이 제정됐다. 문재인 정부 역시 ‘도시재생 뉴딜’을 공약으로 걸었다. 이들이 롤 모델로 삼는 건 서울시다. 시는 현재 도시재생이 필요한 중점지역 30곳의 선정을 마치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중 몇몇 지역은 윤곽이 드러났고, 주목받은 곳도 있다. 바로 세운상가다. 

지난해 9월 1단계 사업이 끝난 세운상가는 도시재생의 으뜸 모델로 조명받았다. 세운상가가 갖는 남다른 의미 때문이다. 1968년 문을 연 이 상가는 우리나라 최초 대형 도시개발 계획의 산물이다.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에 이르는 8개 건물을 통칭했으니 웅장하기론 따라갈 건물이 없었다. 1980년대엔 국내 전자ㆍ전기산업의 메카로 활약했다. “세운상가에선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용산구 등에 전자상가가 둥지를 틀고, 개발된 강남에 상권이 이동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는 낡은 건물이 방치되면서 ‘죽은 상권’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7년 재생사업으로 세운상가는 첨단산업기지로 탈바꿈했다. 청계 대림상가와 세운상가 사이 공중보행로를 정비했고, 이 구간에 30여개의 창업공간을 신설했다. 흉물처럼 널브러진 시설들을 깨끗이 다듬어 카페ㆍ음식점ㆍ전시관을 유치했다. 이는 세운상가가 ‘참여’와 ‘협업’이라는 도시재생의 콘셉트를 충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주민을 내모는 대신 이들 중 일부를 ‘기술장인 마이스터’로 선정해 공존을 모색했다. 상가를 허물지 않고도 신산업 중심의 창업공간을 마련했다. 주민자치기구인 ‘다시세운시민협의회’을 만들어 전반적인 운영도 맡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과거 전자산업 메카였던 이 일대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적 거점이 될 것”이라면서 “서울 도심 보행축을 사방으로 연결하는 랜드마크를 만들고 그 활력을 세운상가 일대 주변지역까지 확산하겠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상가 안팎에선 박 시장이 기대했던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되레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당장 세입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한다. 세운상가에서 20년째 스피커 부품을 팔던 한 상인은 “원체 죽은 상권이었던 탓에 임대료가 저렴했던 건 사실이다”면서 “그렇다고 많게는 60%씩 오른 임대료를 보면 도시재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도시재생의 아이콘 서울시

시는 일찌감치 임대료 급등을 예견하고 2015년 2월부터 소유자와 세입자 간의 상생협약을 유도했다. 재개장과 동시에 협약을 맺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모든 건물주가 협약에 참가한 게 아닐 뿐더러 상생협약에 강제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입점업체 450여개 중 90% 이상이 세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인 대부분이 등떠밀릴 걸 걱정하는 건 기우杞憂가 아니다. 

세운상가의 재생 방향을 두고도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세운상가 재생의 큰 테마 중 하나는 ‘보행 재생’이다. 서울 남북을 가로지르는 공중 보행로를 이어 관광객을 유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는 서울시가 소유권을 보유한 보행로를 ‘다시세운보행교’로 탈바꿈하면서 현실화했다. 

문제는 이 보행로가 관광객을 유인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현창용 건축사무소 H2L 대표는 “세운상가가 몰락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던 건 서울의 녹지축을 남북으로 이을 수 있는 ‘녹색 공중보행로’란 청사진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이번 재생에선 외관 보수와 환경 개선 수준에 그치면서 녹색 공중보행로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 이전 하루 평균 2000여명에 불과한 방문객을 1만3000명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개장 1년이 다 됐음에도 시는 아직 방문객 통계도 제대로 못 내는 실정이다. 개장 1년 만에 방문객 1000만명을 돌파한 걸 대대적으로 홍보한 ‘서울로7017’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세운상가는 상생협약을 맺었음에도 임대료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세운상가는 상생협약을 맺었음에도 임대료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도시재생 컨설팅 업체인 빅바이스몰 김연금 대표는 세운상가의 도시재생이 기대치를 밑도는 이유를 이렇게 추정했다. 김 대표는 여러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최근 도시개발 계획의 트렌드는 주민 참여다. 하지만 실제로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선 주민 참여를 대규모 도시개발 계획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때도 있다. 그 때문인지 정치권, 부동산 개발업자 등 땅에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권력 사이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다. 이게 우리나라 도시재생 현장의 한계다.”

이 지적은 세운상가 주민협의체 활동에 참여했던 한 도시계획 전문가의 설명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에서 도시재생을 잘 모르는 주민들은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면서 “애초에 서울시가 큰 틀에서 방향을 잡아둔 터라 주민들의 참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고 말했다.

강제성 없는 상생협약의 덫 

‘동네 살리기’ ‘삶의 질’ ‘협력적 거버넌스’ ‘사회적 경제’ 등 도시재생에 달리는 간판은 언뜻 병든 도시를 치유할 만병통치약 같다. 하지만 결과물은 과거 개발사업의 치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단 세운상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50조원이 투입되는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세운상가 도시재생 과정과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는 “매년 100곳씩 총 500곳을 재생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다음 플랜’이 무엇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8월 말 1차 도시재생 지역을 선정할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토부 평가항목 중 가장 배점이 높은 게 사업 실현 가능성을 포함한 사업계획의 타당성이라서다.

성장 잠재력이 큼에도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곳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름은 그럴듯한 도시재생은 어쩌면 기로에 서있을지 모른다. 세운상가의 불편한 재생은 산뜻하지 않은 징후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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