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창간 6주년에 부쳐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비판이 쏟아진다. 경제정책의 방향이 틀렸다면 바꾸는 것도 용기다.[사진=연합뉴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비판이 쏟아진다. 방향이 틀렸다면 바꾸는 것도 용기다.[사진=연합뉴스]

폭염이 몰아치는 요즘, 한국전쟁 당시 6000명에 가까운 연합군이 희생(사망 실종자)된 ‘장진호 전투’를 떠올리면 더위타령도 사치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맥아더 전쟁 지휘부의 방심과 오판으로 서부전선이 맥없이 무너지는 바람에 동부전선의 미 1해병사단이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돼 전멸을 앞두고 있었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한은 죽음을 부르는 흑사병과 같았다. 이때 뛰어난 야전 지휘관인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의 리더십으로 미 해병은 후퇴하고도 이기는 전공을 세운다. 올리버 스미스 소장은 “우리는 후퇴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며 부하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국가나 기업의 운명은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엇갈린다. 때론 적극적 공격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한화그룹은 10년 전 위기상황에서 김승연 회장의 결단에 힘입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한화는 2008년 10월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 주식을 6조3002억원에 사기로 하고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지급했다. 공교롭게도 계약 직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터지면서 자금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선시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그룹이 위기에 빠지고, 포기하면 3000억원이 넘는 이행보증금을 허공에 날리는 진퇴양난이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카리스마가 강한 김승연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를 직접 지휘했기 때문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강행할 것으로 봤다. 이때 김승연 회장은 과감히 대우조선 타월을 던졌다. 대신 회사의 저력을 새로운 성장산업에 집중 투입해 지난 10년간 제2의 창업을 이뤄냈다. 산업은행과 7년간 소송 끝에 승소해 계약금의 절반 가까이 받아냈다.

새로운 시대의 고품격 정론지를 지향하는 경제매거진 더스쿠프가 창간 6돌을 맞았다. 더스쿠프가 세상과 호흡하기 시작한 2012년은 국제금융위기라는 삼각파도를 헤치며 힘겹게 항해하던 이명박 정권의 사실상 마지막 해였다. 그해 연말에는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가 당선됐다.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저성장 국면에 빠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팽배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었다. 세계경제에 비해 한국경제는 그런대로 무난한 항해를 했고, 국가신용등급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올해 세계경제는 3.9% 성장(IMF)이 예상되는데 한국은 그보다 1%포인트나 낮은 2.9%에 그칠 전망이다. 미국ㆍ일본은 침체를 딛고 다시 상승가도를 달리는데, 한국만 게걸음을 하는 형국이다. 새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20조원을 투입했지만 백약무효다.

정부는 편향된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실패를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치밀한 현장 분석 없이 밀어붙인 후유증이다. 불공정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대기업 혼내려다 엉뚱하게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코너에 몰아넣고, 강남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며 지방부동산을 침체에 빠뜨렸다. 부자를 겨냥한 반시장적 정책으로 오히려 중산층과 서민이 도탄에 빠졌다.

리더의 책무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데서 출발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자존심은 일시적인 굴욕을 감수하고, 대의를 위해 과감히 자신을 던지는 거다. 소득주도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간판만 바꾸지 말고,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포기와 철수는 새 시대를 위한 밀알과 같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 거름이 돼 비로소 희망이 싹튼다. 1950년 12월 민족사의 비극이자 희망의 싹인 흥남철수 작전이 벌어진다. 이때 1만 4000여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로 향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가 탑승했다고 한다. 흥남에서의 ‘영광의 탈출’이 있었기에 한반도 남쪽 끝 거제도에서 장래 대통령이 된 문재인 옥동자가 태어났다.

더스쿠프가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고 성장한 지난 6년은 북한 핵 위협과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이 벌어졌던 고난의 역사인 동시에 새로운 민주주의의 희망을 잉태하는 소중한 세월이기도 했다. 창간 6주년을 맞아 겸허한 자기반성과 함께 고개 숙여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