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ㆍ양육 관점의 경제학적 오류

산업화 이전, 출산과 양육은 가족들에게 ‘투자재’였다. 자식 한명을 잘 키우면 농부 한명을 더 얻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출산과 양육은 가족들에게 소비재에 가깝다. 돈은 많이 들지만 돌아오는 건 많지 않아서다. 반면 정부 입장에선 공공재나 다름 없다. 출산율이 늘어야 국가행정을 담당할 인력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이런 맥락이라면 정부가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저출산 대책의 경제학적 오류를 짚어봤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출산과 양육의 소비재적 특성을 해소하는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출산과 양육의 소비재적 특성을 해소하는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매년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2017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15~49세 사이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수)은 1.05명이었다. 역대 최저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였고, 전세계 224개국 중에는 220위를 기록했다. 초저출산 현상은 연도별 출생아 통계로도 확인된다. 970년 100만여명이던 연간 출생아 수는 매년 줄어 2017년에는 최초로 40만명 이하(약 35만8000명)로 떨어졌다. 

정부는 2006년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투입된 저출산 정책에 쓰인 예산은 131조원에 이른다. 이 예산엔 보육예산이 섞여 있어 순수 저출산 대책 예산은 이보다는 적다. 핵심은 10년 넘게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 저출산 대책이 먹히지 않은 이유는 대체 뭘까. 답은 간단하다. 무엇보다 그 대책들이 시대와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남녀들의 의식구조나 욕구 변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출산과 양육의 본질적 기능을 성찰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엔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대가족 사회였다. 당시 출산은 공동체의 노동력이자, 부모에게는 노후 보장을 위해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각 가정의 관점에서 보면 전통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은 일종의 ‘투자재’로서 부모에게 일정한 반대급부가 보장되는 생산 행위로 간주할 수 있었다. 당연히 출산과 양육에 따른 이익의 상당부분이 개별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이었고, 그 비용 역시 각 가정이 부담하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 속에서 핵가족 사회가 확산되면서 출산과 양육을 향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출산과 양육은 각 가정의 투자재나 생산재가 아니라,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는 ‘소비재’가 됐다. 출산과 양육에 따른 이익은 가족에게만 돌아간 게 아니라 오히려 이익의 상당 부분이 국가나 사회로 귀속됐기 때문이다. 

출산과 양육의 수혜자는 국가

예를 들어보자. 국가가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경제, 국방ㆍ치안 등 핵심 분야에서 세대간 역할 교체가 원만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개별 가정으로부터 적정한 수준의 인력을 제공받을 수밖에 없다. 출산과 양육이 국가로서의 존립과 기능 유지를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라는 얘기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핵가족 사회에서 이제 출산과 양육은 그 효용이 대부분 국가나 사회로 돌아가는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반면 가족들에게 출산과 양육은 비용만 많이 들고 돌아오는 혜택은 작은 일종의 ‘사치재(luxury goods)’와 같은 특성을 보인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은 가급적 출산을 줄이거나 단념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사치재를 함부로 구입할 경우 가계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선결조건은 출산과 양육의 사치재적 특성을 해소해 ‘정상재’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개별 가정이 출산과 양육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보상해 주는 가족정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오늘날과 같은 초저출산 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은 그 자체로 국가나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출산과 양육만 해도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을 위한 재정이 매우 빈약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정부는 가족정책의 일환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72%를 지출했다. 같은 시기 영국이나 덴마크가 각각 4%, 스웨덴이 3.6%를 지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낮은 수치다.  OECD 평균 2.2%와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초저출산 사태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가족정책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빈약한 이유는 뭘까. 이 질문의 답은 ‘정치공학’에서 찾아봐야 한다. 정치공학 관점에서 정치인들이 가족정책의 예산을 늘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정책에 관한 자신들의 노력이 득표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어서다. 더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가족정책과 같은 장기적 정책목표는 선거의 승리나 집권 등과 같은 단기적 정책목표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가족정책 의사결정 구조 바꿔야

이렇게 단기적 차원의 ‘정치적 합리성’과 장기적 차원의 ‘정책적 합리성’ 사이에 시간적인 괴리가 존재한다면 정치적 의사결정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다수결의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의 방식이나 절차 자체가 민주화돼야 한다는 얘기다. 

 

출산과 육아 그 자체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출산과 육아 그 자체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저출산 대책의 시행 방법도 더 깔끔하게 가다듬을 필요성이 있다. 일례로 출산장려정책은 국가가 국민의 사적 생활공간인 개별 가정을 침범해 출산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의 저출산 대책은 인간의 본능인 자녀의 출산욕구를 제약하는 사회ㆍ경제적 환경요인을 제거해주는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사회적 편견과 정책적 배려 부족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미혼모나 한부모 가정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나아가 각종 사유로 인해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극복책,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저출산의 문제부터 처방까지 모조리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더 늦었다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마저 놓칠지 모른다.
글 :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cwjwl@hanmail.net 
정리: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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