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가 겪은 황당한 규제 사례

제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규제들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해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일선 공무원들이 달라지지 않아서다. 여기 현직 공무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현재 한 점포에 사진관과 커피전문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 최종민(35ㆍ가명)씨가 직접 겪은 일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황당한 규제의 예를 취재했다. 

대기업엔 적용되지 않는 규제가 소상공인에겐 가혹할 만큼 엄격하게 적용된다.[사진=연합뉴스]
대기업엔 적용되지 않는 규제가 소상공인에겐 가혹할 만큼 엄격하게 적용된다.[사진=연합뉴스]

스튜디오에 소속된 사진작가였던 최종민씨는 2014년 일을 그만뒀다. 카메라 제조기술은 날로 좋아진 반면 임금은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할 줄 아는 건 사진을 찍는 것밖에 없었던 최씨는 ‘사진도 찍어주는 커피전문점’을 콘셉트로 2015년 사진관 겸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문을 연지 2년이 흐른 지금, 매출은 쏠쏠하다. 대부분 음료 매출이 아닌 사진관 매출이다. 그는 “예전에 영업허가를 못 받았으면 어땠을까”라면서 말을 이었다. “‘사진도 찍어주는 커피전문점’을 창업하려 했을 때 구청 공무원이 황당한 규제 조항을 들이밀면서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 했어요. 그 바람에 고생 깨나 했었죠.”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 구청에서 왜 허가를 내주지 않았나?
“당시 식품위생법(시행규칙) 식품접객업 시설 기준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었다. ‘영업장은 독립된 건물이거나 식품접객업의 영업허가 또는 영업신고를 마친 업종 외의 용도로 사용되는 시설과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은 이 조항을 문제 삼았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해당 조항의 취지는 위생공간과 비위생공간을 분리하라는 거였다. 여기서 담당 공무원은 ‘분리’를 ‘튼튼한 가벽을 치고 입구를 따로 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를테면 사진관과 커피전문점의 입구를 별도로 내야 허가를 내준다는 얘기나 다름 없었다. 난 이색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지, 두 개의 점포를 운영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러면 콘셉트랑 안 맞다고 했더니 그럼 허가를 못 내준다고 하더라.”


✚ 어떻게 해결했나?

“처음엔 그냥 돌아섰다. 평범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라. 열에아홉은 불법이자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줄 안다. 평범한 사람 중에 누가 법에 거스르려 하겠는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법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친구에게 신세 한탄을 했는데, 그 친구가 ‘법 해석을 너무 말도 안 되게 한 것 같다’면서 자기가 얘길 해보겠다고 하더라.”
 

✚ 법을 전공한 사람이 나서주니 좀 든든했겠다.
“그렇다. 같이 가서 난 옆에만 있었다. 친구가 갔을 때 담당 구청 공무원은 굉장히 두꺼운 식품위생법 관련 서적을 갖고와 보여주면서 내게 했던 말을 똑같이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담당 공무원에게 ‘법이라는 게 해석하기 나름이고 당신네도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아닌데 너무 과하게 해석하는 것 아니냐’면서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가벽을 치고 출입구까지 따로 내는 건 분리가 아니라 독립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는 ‘아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가벽 없다고 영업불허한 지자체

✚ 뭔가 분위기가 좀 바뀌었나?
“그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담당 공무원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있더라. 그러다가 과장님을 만나보라 하더라. 근데 과장을 만나보니 처음 9급 공무원이 했던 것처럼 가벽을 치고 출입구 따로 내라는 말을 똑같이 하더라. 이번에도 친구는 같은 논리로 대꾸를 했다. 역시 과장도 생각을 다시 하는 것 같았다. 이때 친구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꺼냈다.”

✚ 결정적인 한마디는 뭐였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광화문 교보문고 영업도 중단시켜라. 거긴 입구는 하나인데, 가벽도 없이 책도 팔고, 문구도 팔고, 커피도 팔고, 심지어 음식도 판다. 대기업에서 하는 건 다 하게 놔두고, 소상공인에게만 칼 같은 잣대를 들이대서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랬더니 과장 입에서 ‘그럼 하세요’라는 말이 나왔다.”

✚ 그들이 인정할 만 했겠다.
“두명의 공무원을 만나는 데 딱 15분 걸렸다. 혼자 갔을 때 30분 넘게 붙잡고 사정을 해도 안 되던 게 그렇게 풀리더라.”

✚ 황당했겠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 ‘법을 배운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공무원들의 행동이 이렇게 달라진다면 못 배운 사람은 손해를 보겠구나’하는 억울함이 밀려들어왔다. 더불어 ‘대기업에는 법을 느슨하게 적용하면서 소상공인에겐 정말 엄격하구나’하는 생각,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더 있을 텐데 그들도 어려움이 많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 공무원 입장에선 기존과 다르게 뭔가 새로운 걸 한다고 하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민원인들은 불법으로 뭔가 하겠다는 게 아니다. 최대한 합법적으로 뭔가 하려고 영업허가를 받으러 가는 거다. 그러면 최소한 안 된다고 하기 전에 할 수 있게 해줄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나.” 

✚ 요즘엔 각 지자체에 법률지원센터들도 있다. 도움을 받아볼 생각은 안 했나.
“당시엔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알고 찾아갔어도 별 도움은 안 됐을 거라 본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영업을 하면서 임대차보호법 관련해서 무료법률 자문을 받으러 갔는데, 법률 자문을 해주는 변호사가 법이 개정돼 권리금보호 규정이 생긴 것도 모르더라. 나보다도 더 모르는 변호사에게 무슨 자문을 받겠는가. 결국 원론적인 얘기만 하는 그에게서 ‘해결방법이 없다’는 말만 듣고 나왔다.”

✚ 누군가 옆에서 법 해석만 도와줘도 상황은 좀 나아질 것 같아 보이는데.
“그러면 좀 나아질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각 지자체마다 사례들을 공유하고 똑같은 규제를 반복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 목소리 좀 들어줬으면…

✚ 그건 무슨 말인가.
“내가 이 점포를 차린 이후에 자신들도 복합 커피전문점을 차리려 하는데 지자체에서 허가를 안 내주니 어떻게 허가를 받았는지 조언 좀 해달라는 전화를 꽤 받았다. 마치 ‘도장 깨기’처럼 지자체별로 이런 과정을 다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아마 제주도에 가면 도청에서 이 사업은 못한다면서 또 막을 거다. 지금에야 알고 당하는 거니 반박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못하는 거다. 제발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을 다니면서 현장 목소리를 좀 들었으면 좋겠다.”

✚ 혹시 허가가 난 후 구청 담당 공무원이 영업장에 와 본 적 있나.
“단 한번도 없다. 내 생각에도 뭔가 미안하다든지, 아니면 와서 뭐 다른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물어본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공간 분리를 잘 해놓고 있는지 점검이라도 나와 볼 법한데 그조차도 없다. 점검 규정이 없으니 점검할 것도 없겠지만, 허가 내줄 땐 그리 까다롭게 굴다가도 막상, 허가 가 나고 나면 신경도 안 쓴다는 얘기다. 그래놓고 잘못된 규제 사례를 자신들이 풀었노라면서 공적으로 치부하지 않겠나. 더 웃긴 건 이런 규제혁신이 각 지자체에 반영이 안 된다는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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