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덫❷] 정부·금배지·철밥통, 규제혁파 실패 ‘공동정범’
[규제의 덫❷] 정부·금배지·철밥통, 규제혁파 실패 ‘공동정범’
  • 김정덕 기자
  • 호수 300
  • 승인 2018.07.31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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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부진한 이유

정부는 툭하면 규제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건다. 문제는 ‘규제혁파’라는 야심찬 슬로건은 번번이 ‘말의 성찬盛饌’에 그친다는 점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규제개혁을 그렇게 호소해도 변한 게 별로 없으니, 할말 다했다. 혹자는 ‘늘공(직업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꼬집으면서 철밥통의 변화를 촉구한다. 규제개혁이 번번이 가로막히는 이유는 늘공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역대 정부와 국회도 ‘공동정범共同正犯’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규제개혁이 부진한 이유를 짚어봤다. 

푸드트럭은 박근혜 정부 시절 규제개혁의 아이콘이었지만, 여전히 관련 산업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푸드트럭은 박근혜 정부 시절 규제개혁의 아이콘이었지만, 여전히 관련 산업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아들은 당뇨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손가락을 찔러 피를 뽑고 혈당을 확인해야 했다. 아들이 안쓰러웠던 어머니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24시간 연속 측정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발견했고, 이를 해외직구로 들여왔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원격으로 혈당을 확인하는 앱도 만들었다. 

그러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청했다. 어머니는 해당 의료기기를 구매대행 해주고, 앱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들은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그녀는 쇠고랑을 찰 뻔했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 취급자만이 의료기기를 제조ㆍ수입ㆍ수리ㆍ판매ㆍ임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료기기법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지난 7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 발표 행사에서 “도대체 누굴 위한 규제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는 바로 그 사연이다. 대통령의 안타까움은 ‘국민이 불편함이 없게끔 만들지도 않았으면서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만을 앞세운’ 정부를 향한 불만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약자를 차별하는 행위나 제도를 막는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행 제도를 뜯어보면 형평에 어긋나거나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혹은 소수의 이해만을 고려해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규제가 한둘이 아니다. 실효성이 없는 규제도 많다. 역대 정부가 나쁜 규제를 없애겠다고 나서지만 성과가 저조하다는 거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시절 규제혁파의 아이콘이었던 푸드트럭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이동영업이 불가능하고, 영업할 수 있는 장소는 제한돼 있다. 제한된 장소에 푸드트럭이 몰리면서 입점료와 수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해 국무조정실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국에서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푸드트럭은 448대. 그 가운데 절반 이상(268대)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성과가 저조한 이유는 뭘까. 첫째,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혈당측정기 수입불가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허가받은 의료기기취급자’의 시각만을 고려하다 보니 일반 국민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해외 온라인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저도수 렌즈와 콘택트렌즈를 국내 온라인에서 못 파는 건 안경사와 안과의사들의 이해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찌됐든 렌즈가 온라인에서 팔리지 않아 가격경쟁이 없으니 안경 낀 국민은 손해다. 

규제에 발목 잡힌 푸드트럭

전력 판매를 전기사업자에게만 허용하고 태양광 설치 가정의 잉여전기 판매를 금지한 것은 가정용 태양광 설비의 확산을 가로 막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가 온라인으로 인증만 하면 안전하고 편리하게 부동산을 거래할 수 있는 ‘부동산 전자계약시스템’을 혈세를 투입해 만들어놓고도 이를 공인중개사협회에만 독점 사용하도록 한 것도 이해관계로 인한 규제다. 정작 ‘부동산 전자계약시스템’에 자금을 댄 국민은 편리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득이 공개되고, 밥그릇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공인중개사협회가 당초 시스템 구축을 반대했다는 걸 감안하면 시스템 사용 규제 대상이 적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둘째 이유는 공공기관이나 공무원들의 자의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법령 해석과 적용,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 탁상행정, 권위적 행정이다. 2016년 중소기업들이 모여 있는 부산 녹산국가산업단지 내에 기업들이 공동직장 어린이집을 지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도 “국공유지에 설치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간 7700만원의 사용료를 내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사용료 부과는 재량사항임에도 사용료 부과를 통한 수입증대와 공동직장 어린이집 운영을 통한 무형의 성과를 저울질하지 않고 사용료 부과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기용품 구매대행업자에게 해당 제품의 안전인증 의무를 부과했다가 구매대행업자가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다음에야 의무규정을 완화한 것은 권위적이고 행정편의적인 규제의 일단이다. 

공공사업 입찰 시 빈번하게 일어나는 공공기관의 갑질 규제도 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입찰업체가 낸 제안서를 반환하지 않고, 제안서의 소유권도 자신들이 갖는다는 서약을 받는다. 제안서 작성에 들어가는 일체의 비용도 입찰업체가 부담하는데, 탈락업체로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제안 노하우만 제공하는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 발표 행사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도대체 누굴 위한 규제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 발표 행사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도대체 누굴 위한 규제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규제개혁 성과가 부진한 셋째 이유는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규제 법률을 양산해서다. 대구 국가산업단지 입주를 위해 1000억원을 투자한 쿠팡이 ‘전자상거래 소매중개업’으로 분류돼 3년이 넘도록 그곳에 둥지를 틀지 못한 것은 대표적 예다.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한 건 기준이 모호해서다. 현행 산업집적법에 따르면 전자상거래업은 입주 허용 업종이 아니다. 반면 운송업은 입주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ㆍ여론조사업ㆍ온라인교육업ㆍ통역서비스업도 입주가 허용되지만 법률서비스업은 불가不可다. 광고물제작업과 광고기획업 역시 전자는 허가, 후자는 불가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신산업 유입에 따른 산업단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입주를 허용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입주를 제한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용기준이 아니라 제한기준만 두면 된다는 거다. 

2014년 제정된 선행학습금지법도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 법률로 꼽힌다. 이 법에 따라 교육부는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포함했다. 문제는 유아학원은 규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경제적 사정에 따른 교육 불평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반발에 부닥쳤고, 유치원 방과 후 영어금지는 전면 보류됐다.

규제 없애면 국회가 또 신설

이처럼 규제개혁의 성과가 신통치 않은 원인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가 밀고 나가겠다는 규제개혁의 방법론이 보인다. 물론 일선 공무원들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는 정부의 역할, 규제 입법의 파급효과를 검토해야 할 국회의 역할을 배제하고선 규제 개혁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 푸드트럭 운영업자의 주장도 다르지 않다. “기존 상권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조차 적극 나서지 않는데 무슨 규제 개혁이 되겠는가. 게다가 움직이는 트럭에선 여전히 음식제조가 불법이다. 식품위생법을 손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부 공무원들이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아무리 정부가 ‘이제 맘 놓고 장사해라’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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