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낙관론자의 기대와 좌절로 본 한국경제
생산-소비-투자지표 꽁꽁 얼어붙어 
G2 무역전쟁 격화로 수출도 위험 
소득주도 성장론 비판 거세지만
​​​​​​​親기업 정책의 효과도 입증 안 돼 
이념․정파 떠나 불황탈출 혜안 모색해야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생산·소비·투자지표 모두 악화일로를 걸었다. [일러스트=김지연 yeonjirla7743@naver.com]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생산·소비·투자지표 모두 악화일로를 걸었다. [일러스트=김지연 yeonjirla7743@naver.com]

경제지표가 어둡다. 그 지표를 구성하는 밑단의 통계들도 농도가 짙다. 일부에선 “그럼에도 괜찮다”며 낙관론을 설파하지만 현재 지표만 떼놓고 보면 “그럼에도 괜찮지 않다”는 주장이 더 합리적이다. 문제는 한국경제를 휘감은 어둠을 어떻게 걷어내느냐인데, 상황이 복잡하다. 

한쪽에선 “소득주도 성장론의 허구가 드러났으니 방향을 바꾸라”고 거칠게 몰아세운다. 다른 한쪽에선 “시행한지 1년 밖에 안 된 정책을 접으라는 건 섣부른 주장 아니냐”며 맞받아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어느 낙관론자의 기대와 좌절을 통해 한국경제의 냉엄한 현실을 꼬집어봤다. 

# 낙관적 가정법➊ 공장만 돌아가면…

올해 5월 제조업 생산자 재고지수(이하 한국은행)는 112.9를 찍었다. 2015년을 100으로 봤을 때 12.9포인트 높다. 4월 113.4까지 치솟았다가 약간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2010~2017년 평균 94.2)이다. 재고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한 이유는 둘 중 하나다. “… 수요 급증을 기대하고 제품을 쟁여놨거나, 너무 안 팔린 탓에 창고에 쌓여있거나 ….”

둘을 가르는 기준은 공장가동률인데 높으면 전자, 낮으면 후자다. 그렇다면 공장은 제대로 돌고 있을까. 그래, 분명히 괜찮을 거다. 공장은 팡팡 돌 게 뻔하고, 재고지수 따윈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87.9%·국세청)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87.9%·국세청)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 낙관적 가정법➋ 지갑만 열리면…

아쉽다. 5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3.9%에 그쳤다. 1월 70.6%에서 3.3%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달갑지만은 않다. 1998~ 2017년 제조업 평균 가동률 수치(76.7%)보다 2.8%포인트나 낮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리먼 사태(2008년), 유로존 재정위기(2011년) 등 ‘빅 이벤트’가 말썽을 피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가동률에 반색하는 게 더 이상하다. 그래, 그럼에도 괜찮을 거다. 소비자가 지갑만 열면, 공장이 돌아가 재고지수가 떨어질 테니까…. 과연 그럴까. 

# 낙관적 가정법➌ 수출만 증가하면…

아쉽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1.0으로 전월 대비 4.5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문제는 소비자심리지수의 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지수를 구성하는 6개 소비자동향지수가 모두 고꾸라진 탓이다. 

가계의 재정상황 인식을 보여주는 현재생활형편지수와 생활형편전망지수는 각각 3포인트, 2포인트(이하 전월 대비) 빠졌다. 나머지 4개 지수인 가계수입전망(2포인트·전월 대비), 소비지출전망(2포인트), 현재경기판단(7포인트), 향후경기전망(9포인트)도 떨어졌다. 그래, 그럼에도 괜찮을 거다. 우리에겐 기댈 언덕이 있다. 수출만 받쳐주면 시장에 활력이 감돌 게 분명하다. 과연 그럴까. 

 

G2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사진=뉴시스]
G2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사진=뉴시스]

# 낙관적 가정법➍ 투자만 더 한다면…

아쉽다. 국내 수출은 올 1월의 산뜻한 출발(22.3% 증가·전년 동기 대비․한국은행)을 이어가지 못했다. 2월 3.3%, 3월 6.1%로 증가폭이 줄더니, 4월엔 마이너스(-1.5%)로 떨어졌다. 18개월 만의 ‘음수陰數’였다. 기저효과 덕분인지 5월 반짝 증가율(13.2%)을 기록했지만 하락세(6월 -0.1%)를 피하지 못했다. 

문제는 어쩌면 지금부터다. 미국·중국(G2) 무역전쟁, 유럽연합(EU) 보복관세 등 한국의 수출을 위협하는 독한 변수가 수두룩해서다. 반도체의 호황기가 ‘황혼黃昏’에 접어들고 있다는 전망도 리스크다. 

그래, 그럼에도 괜찮을 거다.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럴 땐 미래를 위한 포석만 깔면 그만이다. “불황기에 투자를 안 하면 망한다(앤드루 그로브 인텔 전 회장)”는 말도 있지 않은가. 투자만 제대로 한다면 불황 따위는 금세 극복할 수 있을 거다. 과연 그럴까. 

# 낙관적 가정법➎ 이익의 질 살펴보니…

아쉽다. 한국경제의 투자는 감소세다. 우리 기업의 설비투자는 1분기 3.4%에서 2분기 -6.6%로 뚝 떨어졌다. 2016년 1분기(-7.1%) 이후 2년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들이 자금을 금고에 쟁여놓고, 실탄(현금)을 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투자 여력餘力이 부족해진 탓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300대 기업(매출 순위)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기업의 ‘이익의 질質’은 2014년 68.7%에서 2017년 73.3%로 악화했다[※ 참고: 이익의 질은 수치가 낮을수록 양호하다는 뜻이다.] 이익의 질이 추락했다는 건 기업에 유입된 현금이 줄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투자 여력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래, 그럼에도 … 괜찮지가 않다. 숱한 경제지표를 아무리 낙관적으로 해석해도, 한국경제는 분명 위기다. 냉정한 경제지표는 ‘무서운 불황’을 가리키고 있다. 

 

# 무의미한 갑론을박과 불황 

이제 어찌해야 할까. 한쪽에선 “문재인 정부의 경제 콘셉트 ‘소득주도 성장론’의 후유증”이라면서 날선 비판을 쏟아낸다. 다른 한쪽에선 “소득주도 성장론이 열매를 맺기엔 시장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거칠게 맞받아친다. 아쉽게도 양쪽 주장은 약점이 뚜렷하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비판하는 쪽은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고집했던 보수정권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지니계수가 왜 그 모양이었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 참고: 이명박 정부(2008〜2012년)의 GDP 성장률은 3.2%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의 성장률은 4년(2013〜2016년) 평균 2.9%로, 3%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두 정부의 집권 기간에 소득 양극화가 해소된 것도 아니다. 보수정권은 ‘소득의 낙수효과(고소득층 소득 증대→소비 및 투자 확대→저소득층 소득 증대)’를 강조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이는 소득분배의 불균형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명박 정부(0.315)와 박근혜 정부(0.309)의 집권 기간 평균 지니계수(통계청)는 참여정부(0.299) 때보다 나빴다. 소득의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니계수는 0부터 1까지의 숫자로 표시된다. 1에 가까울수록 부유층의 소득점유율이 높다는 뜻이다.]

반면, 소득주도 성장론을 밀어붙이는 쪽은 “국민을 상대로 섣부른 실험을 계속 하고 있다” “소득에 초점을 맞춘 성장정책이 취약계층의 살림살이와 고용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는 ‘흐름’이다. 경제의 순환을 정권별로, 이념별로 끊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직전 정부의 성과와 실패가 다음 정부로 이어지는 건 경제의 섭리攝理다. 경제주체들이 정파와 이념을 떠나 불황을 탈출할 혜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더 늦으면 골든타임을 놓친다. 불황이란 고약한 녀석은 이미 우리 경제 앞에 서있다.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강서구·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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