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경제문제를 진영 논리로 재단 하지 말자
[양재찬의 프리즘] 경제문제를 진영 논리로 재단 하지 말자
  • 양재찬 대기자
  • 호수 301
  • 승인 2018.08.13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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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등 대기업들의 투자ㆍ고용 계획 발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총수들을 만나 투자 등을 요청하는 것을 두고 ‘투자 구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대기업의 투자계획 발표는 국내 투자를 살려주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사진=뉴시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총수들을 만나 투자 등을 요청하는 것을 두고 ‘투자 구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대기업의 투자계획 발표는 국내 투자를 살려주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사진=뉴시스]

삼성그룹이 2020년까지 3년 동안 1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투자와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당부한 지 한달,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 이 부회장을 만난 지 이틀 만의 화답이다. 

이로써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 SK, LG, 신세계 등 5대 그룹이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규모는 총 311조원이 됐다. GDP(약 180 0조원)의 17.3%에 해당하는 큰 규모다. 

문 대통령과 김 부총리가 재벌 총수들을 만나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요청하는 것을 두고 ‘투자 구걸’ ‘팔목 비틀기’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며 논란이 일었다. 국정농단 사태로 재판 중인 총수를 만나는 것 자체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ㆍ고용 독려나, 여기에 답하는 형식 모두 자연스럽지 않은 낡은 방식이긴 하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의 잇따른 투자계획 발표는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이 0%대를 맴도는 비상 상황에서 국내 투자를 살려내는 마중물에 대한 기대를 낳게 한다. 기업의 투자 결정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다.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장기 포석에 따라 현재 상황은 물론 미래의 성장과 가치 제고를 위해 심사숙고해 결단할 사안이다. 정치권이 기업에 강요해서도, 집권세력의 요청에 기업이 무리하게 결정해서도 안 된다. 삼성 등 5대 그룹의 투자ㆍ고용 계획 발표 이전에 정부의 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황 상 정권에 약점이 잡히거나 권력의 강요에 못 이겨 내린 결정은 아닌 것으로 본다.

삼성의 AI, 바이오, 전장부품 투자 계획에서 보듯 신산업 투자 확대는 해당 기업들에 절실한 과제다. 투자 및 일자리 제공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기업들은 막대한 유보금에도 투자와 고용 확대를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5대 그룹은 투자ㆍ고용 계획을 이행함으로써 사회적 반감과 불신을 씻고 중소ㆍ벤처기업과의 상생의 길도 증진하길 기대한다.

이에 맞춰 정부는 지지부진한 규제개혁의 속도를 높여 투자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국회도 정부가 제안한 경제활성화 관련법과 규제개혁안에 대한 심의를 서둘러야 마땅하다. 마침 문 대통령이 규제혁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의료기기 분야 규제완화에 이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지분 소유 규제를 푸는 ‘은산 분리’ 규제완화를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ㆍ빅데이터ㆍ드론ㆍ자율차 등 첨단산업 분야로 규제개혁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속도감 있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원격진료의 단계적 허용 방안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이 의료 민영화로 이어진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인터넷은행 규제혁신 현장에 초대받은 민주당 의원 일부가 반대 표시로 불참했다. 대통령과 시민단체 출신이 대거 포진한 청와대 참모진 간, 대통령과 여당 간 손발이 맞지 않아 보인다. 

‘규제개혁=대기업 배불리기’라는 경직된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분야의 규제를 완화하면 현실적으로 대기업도 혜택을 보겠지만, 독과점 등 폐해는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제도적 장치로 다스릴 일이다. 대기업에 특혜가 돌아갈 뿐이라고 예단해 규제옥쇄를 틀어쥐면 국내에선 관련 산업이 발아하지도 못한 채 외국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입해 써야 한다. 

경제 현상에 진보와 보수 색깔을 입히고, 자의적인 ‘정의’ 잣대를 들이대며 지나치게 진영 논리로 재단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김동연 부총리의 삼성전자 평택공장 방문을 앞두고 벌어진 ‘투자 구걸’ 논란의 진원지도 청와대였다. 숱한 분야의 기술개발과 상품화 등 기업의 경제활동을 벤처와 중소기업만으로 채울 수는 없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재벌은 현실이다. 이들에게 특혜를 줘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옥죄면 그동안 쌓아온 산업 생태계와 경제구조에 금이 간다. 신생기업인 스타트업부터 벤처ㆍ중소기업ㆍ중견기업ㆍ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주체로서 해야 할 일과 몫이 있다. 정부는 여러 단계와 규모의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여름휴가 복귀 첫날 ‘경제 활력을 찾기 위한 실사구시적 실천’을 주문한 문 대통령의 뜻과도 부합한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FTA를 밀어붙인 노무현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상기하고 실천하라. 실사구시ㆍ실용주의가 경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이다. 국정의 실용화, 취임 이후 최저치로 하락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회복하는 길도 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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