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윤증과 조식, 그리고 김동연
[윤영걸의 有口有言] 윤증과 조식, 그리고 김동연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301
  • 승인 2018.08.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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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행동 제때 하는 게 진짜 용기
김동연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 참모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김동연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 참모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조선 후기 대학자였던 윤증(명재ㆍ1629 ~1714년)은 임금이 내리는 정승 벼슬을 번번이 거절했다. 숙종의 거듭된 강권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송시열(우암)의 세도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고, 서인과 남인의 원한이 해소되지 않으면 안 되고, 친인척의 발호를 막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내 역량으로는 세가지 벽을 넘을 수 없으므로 벼슬에 나갈 수 없다.”

명종 때 인물 조식(남명ㆍ1501~1572년)은 임금이 대학자 이황(퇴계)까지 보내 벼슬을 종용했으나 일절 응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단성현(경남 산청) 현감 벼슬을 내렸으나 이마저 사양한다. 대신 왕의 친인척 전횡 등 문란한 국정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조식과 윤증의 벼슬 거부는 단순한 체제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애국이었다. 두 사람은 역사에 학처럼 고고한 이름을 남겼다.

단도직입적으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하라고 권하고 싶다. 뜻을 제대로 펼 수 없는 처지는 자신에게나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치 보며 시간을 끌지 말고, 윤증이나 조식처럼 할 말을 당당히 하고 자신의 길을 의연하게 가라는 얘기다.

우선 김 부총리로 대변되는 경제 관료와 운동권 시민단체 출신 청와대 참모와의 갈등이 너무 노골적이다. 김 부총리의 삼성전자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 참모가 ‘투자구걸’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지자, 김 부총리가 반박 입장문까지 발표할 정도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지난 5월에는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김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 참모간 갈등이 벌어졌다. 양측은 소득주도 성장을 놓고 한차례 거세게 부딪쳤다. 지난 5월 대통령이 소집한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에서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을 언급했고, 청와대 정책실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대립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있다.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좋은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지금 한국은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모두가 한국의 미래를 어둡다고 말하니 불길한 전망이 현실화되는 기시감에 빠져있다. 

전직 경제장관 10명 중 9명이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만큼 이제라도 경제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노선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포용적 성장을 내세우고, 규제완화를 강조하지만 반기업정서는 후퇴할 기미가 없다. 적폐청산 차원에서 경제를 다루니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세계는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경제운용을 투톱으로 운용한다는 발상은 헛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내각 중심의 정부라면 경제부총리가 원톱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의중은 아직 모호하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쯤 되면 누군가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김 부총리는 삼성전자를 찾아 “일자리 20만개 땐 광화문서 춤출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일을 해낼 수 있는 배짱과 추진력이 그에겐 부족하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동거와 불편한 이중주는 경제에 독약이다. 김 부총리가 그만둬야 문재인 대통령의 확실한 경제철학을 알 수 있게 된다. 

소득주도 성장을 신봉하고 기업을 경원시하는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소신껏 정책을 펼치든지 아니면 “투자구걸이 무슨 문제냐”고 목소리를 내는 강골 경제부총리가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김 부총리는 애당초 잘나가는 엘리트 경제 관료가 아니라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튀지 않고 남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성향이 그의 발탁 배경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어차피 경제부총리로서의 그의 수명은 길지 않을 것 같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의 사의辭意는 대통령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지도자의 선택폭을 넓혀주는 충정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탈무드에는 지나치게 쓰면 안 되는 3가지가 있다고 소개돼 있다. 빵의 이스트, 소금, 그리고 망설임이다. 김동연의 실험은 이제 끝났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마지막으로 그만두는 용기라도 내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용기는 필요한 행동을 적시에 하는 거다(영화 ‘매혹 당한 사람들’에서 니콜 키드먼의 말).”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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