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규제 완화 걸림돌 한두개 아니야
규제완화 대상, 특례법의 시한 등 쟁점 수두룩
특정 기업에만 혜택주는 묘한 상황 발생할 수도

문재인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나섰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나섰다.[사진=뉴시스]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 은산분리 규제의 완화 가능성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회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규제 완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정교한 법안을 마련할 수 있느냐다. 자칫 잘못하면 특혜 논란만 일으킬 수 있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은산분리 완화 논란을 짚어봤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가 금융혁신 과제로 은산분리 규제 완화법 처리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이슈에 불을 붙인 건 문재인 대통령이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복귀 이후 첫 외부 일정에서 은산분리 원칙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발목을 번번이 잡아온 은산분리 규제는 쉽게 말해 은행과 산업을 분리하자는 것이다. 이 규제에 따라 산업자본은 (인터넷전문)은행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의결권 있는 주식 4%·의결권 없는 주식 포함하면 10%)을 보유할 수 없었다. 쓸모 없는 규제가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를 막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이 때문인지 문 대통령은 ‘붉은 깃발’이라는 메타포까지 쓰면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정치권은 발빠르게 화답했다.[※ 참고 : 붉은 깃발은 1865년 영국에서 마차 사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붉은 깃발을 흔들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마차 수준으로 제한한 도로교통법으로 시대착오적 규제를 의미한다. 이 법의 영향으로 영국은 최초로 자동차를 상용화하고도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독일과 미국 등에게 빼앗겼다.] 여야는 지난 9일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주는 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산업자본의 지분보유 한도는 지금의 4%에서 34%로 높이는 것으로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은산분리 완화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여전하다. “규제를 완화하면 인터넷전문은행이 재벌과 거대자본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기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실제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선 논의해야 할 쟁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규제 완화 대상을 ‘모든 산업자본’으로 넓히느냐는 민감한 문제다. 자산 10조원이 넘는 총수가 있는 재벌은 상호출자제한법에 걸려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인터넷전문은행에 투자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산업자본’의 규제를 완화하면 삼성·LG 등 재벌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뛰어들 공산이 생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더구나 이는 문 대통령이 강조한 은산분리의 대원칙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총수가 있는 자산 10조 이상의 재벌을 규제 완화 대상에서 빼버리는 것도 쉽지 않다. 투자여력이 많은 재벌이 빠지면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를 꾀하는 게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자산 10조 이상’이라는 애매한 기준에 걸려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기업이 생길 우려도 많다. 카카오뱅크와 합산 시 자산 규모가 9조8000억원인 카카오의 경우, 자산이 2000억원만 늘면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에 오르지 못한다. 카카오는 총수가 있는 재벌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네이버·SK텔레콤 등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이 예상되는 기업의 시장 진출 가능성도 막힐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벌이지만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예외 조항이 특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재벌이 ICT 기업을 앞세워 은행업에 진출하는 걸 막을 수도 없게 된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카카오뱅크의 카카오 편입 후 총자산 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할 수 가능성이 제기되자 재벌이라도 ICT 기업은 예외로 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단적으로 삼성이 ICT 기업인 삼성SDS를 내세워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정 기업은 되고, 어떤 기업은 안 된다는 이상한 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특혜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은산분리 특례법을 한시법으로 할 건지 아니면 상시법 형태로 제정할 건지도 문제다. 현재 가장 유력한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은산분리 법안은 정재호(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운영에 대한 특례법안’이다. 이 발의안은 비금융주력자의 주식보유 한도 특례를 2019년 12월 31일까지 정부가 인가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적용하는 한시법이다.

이 법안이 그대로 적용되면 2019년 이후에는 산업자본을 주력으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더 이상 탄생할 수 없게 된다. 당연히 현재 수면 위로 떠오른 인터넷전문은행 후보군을 위한 규제 완화가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시법 형태로 제정하는 것도 리스크는 있다. 국내 기업보다 경쟁력 높은 중국의 알리바바나 텐센트 등 외국계 인터넷전문은행의 국내 진출을 막을 수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난립해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1980년대 후반 생명보험사 신설을 무더기로 허가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며 “이런 일이 인터넷전문은행에서도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냐”고 말했다. 그는 “외국계 기업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을 견제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규제의 한 축이 무너지면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는 게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격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격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넘어야 할 산은 한두개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특정기업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2016년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은산분리 완화는 대기업 사금고화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정보통신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고객 예금으로 대기업을 지원할 가능성을 키워 경제력 집중을 부추길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우려는 지금도 여전하다. 정부의 말처럼 은산분리의 대원칙은 지키면서 핀테크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 가능할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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