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지원금 안 먹힌 이유

역대 정부는 늘 ‘중소기업 육성’을 외쳤다. 막대한 예산을 중소기업을 위해 쏟아부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치를 밑돈다. 중소기업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힘들다”면서 아우성을 친다. 대기업에 발목이 묶인 이상한 사업 구조도 여전하다. 우린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두꺼비도 없는 ‘중소기업’에 재원만 쏟아붓는 게 능사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중소기업 지원금이 안 먹힌 이유를 취재했다. 

그동안의 중소기업 지원책은 별 효과 없이 돈만 축내고 끝났다. 사진은 모뉴엘 사태 당시 서울본부세관의 모뉴엘 허위수출 증거자료.[사진=연합뉴스]
그동안의 중소기업 지원책은 별 효과 없이 돈만 축내고 끝났다. 사진은 모뉴엘 사태 당시 서울본부세관의 모뉴엘 허위수출 증거자료.[사진=연합뉴스]

1997년 한국경제를 휘감은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인 듯하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정부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혹은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목소리는 더 커졌다. 2008년 이전 10년간 10조원 안팎에 머물러 있던 중소기업 지원 예산이 1.5배가량 확 늘어난 것도 이 즈음이다.

현 정부도 역대 정부와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말하자면 20년이 넘도록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해왔다는 얘기다. 

2017년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 사업에 쓴 돈만 해도 융자 지원을 포함해 총 16조6000억원이다. 18개 중앙부처와 17개 지방자치단체가 펼친 중소기업 육성 사업 개수는 1347개에 달한다. 사업 1개당 약 123억원이 투입된 셈이다. 융자에 투입된 예산을 뺀 순수 지원 예산만 따져도 사업 1개당 평균 60억원의 돈을 썼다. 

비용 투입 대비 성과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썩 좋지 않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중소기업 경쟁력 체감지수는 2015년보다 훨씬 떨어졌다. 스스로 상위 5%에 속한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8.2%에서 6.8%로, 상위 10~30%에 속한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36.0%에서 33.9%로 감소했다. 상위 5~10%에 속한다는 곳만 14.7%에서 15.4%로 소폭 늘었을 뿐이다.

같은 기간 ‘가장 의식하는 경쟁상대 기업’으로 국내 대기업을 꼽는 중소기업도 14.0%에서 10.8%로 크게 줄었다. 대기업과의 경쟁 환경이 더 나빠졌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일본이나 미국 기업을 경쟁상대로 여기던 중소기업도 각각 2.4%와 3.2%에서 1.8%와 3.0%로 떨어졌다. 주눅 든 중소기업의 현주소다. 

반면 국내 중소기업을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이들은 67.5%에서 71.9%로 늘었다.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다보니 좁은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기 바쁘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판매액 구성 중 수출 비중이 10% 정도로 낮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중소기업들은 실제 경쟁력도 떨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사업체당 부가가치 창출 능력은 대기업의 9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1인당 부가가치 창출 능력도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기업과의 이런 격차는 매년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든 적이 거의 없다. 

 

이처럼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했음에도 중소기업을 키우고,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데 별 효과가 없었다. 2015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내놓은 연구결과도 이런 결론을 뒷받침한다. 당시 평가원은 “2004부터 2012년까지 정부 R&D 보조금과 생산성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 정부의 R&D 보조금이 1% 증가할 때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평균 0.008% 증가했다”면서도 “정부 R&D 보조금이 노동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조금의 영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 20여년간 엉뚱한 곳에 돈만 퍼부었다는 얘기다. 

문제가 뭘까. 사실 국내 중소기업 현황만 제대로 들여다봐도 답은 뻔히 나온다. 먼저 국내 중소기업은 대기업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거래처별 납품 비중은 대기업이 60.1%를 차지한다.

특히 수급기업의 거래 모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소기업이 87.1%, 중기업이 75.8%에 달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대기업 협력업체이고, 그 의존도 역시 매우 높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거래처 다변화나 해외시장 개척은 애초부터 힘겨운 일일지 모른다. 

중소기업 지원에 20여년 헛돈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의 ‘갑질’은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다. 지난해 중기중앙회가 중소 수급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탈취 실태 파악을 위한 심층조사’를 통해 위탁업체(주로 대기업)는 수급업체(주로 중소기업)로부터 기술 자료를 받은 후 내부적으로 활용하거나 다른 협력업체로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기중앙회는 “위탁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요구받은 경험이 있는 117개 수급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했지만, 심층조사 인터뷰에 응한 업체는 단 9곳에 불과했다”면서 “신고자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신고 후엔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잘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수급업체들이 토로하는 위탁업체와의 거래 시 애로사항에는 ‘수시발주와 부당한 대금결정(33.6%)’, ‘원자재 가격상승분 납품단가 미반영(42.2%)’, ‘일방적 납기 단축 요구(34.1%)’, ‘납품대금 결제기한 미준수(34.6%)’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기업의 갑질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갑질이 여전하다는 거다. 

국내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 협력업체다.[사진=뉴시스]
국내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 협력업체다.[사진=뉴시스]

중소기업들이 일한 만큼 돈을 벌지 못하니 중소기업은 인건비 죄기에 나선다. 대기업과의 월평균 임금 격차가 28만원(한국은행 자료)에 이르는 건 단순히 중소기업의 경영능력 탓만은 아니라는 거다. 행여 흑자를 보더라도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가 뒤따르니 돈을 벌어도 감추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그저 중소기업들이 나눠 먹고 입 닦는 정도로만 활용될 뿐이다. 당연히 중소기업의 도덕적 해이도 따라온다. 정부기관들이 선정한 강소기업들이 횡령이나 분식회계 등으로 논란을 빚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전제품 제조사였던 모뉴엘은 2011년 수출입은행이 선정한 강소기업이었지만, 대표이사의 3조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14년 말 최종 부도처리됐다. 수출입은행이 2013년 강소기업으로 선정한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디지텍시스템스는 분식회계로 2014년 상장 폐지됐다. 체중계 생산업체 카스는 지난 2013년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강소기업이었지만, 이듬해 대표이사의 횡령으로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다는 거다. 

생태계 조성 다시 고민해야

여기에 ‘피터팬 증후군’도 일조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나온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성장률은 0.008%에 불과했다. 2013년 성장률(0.012%)보다 더 떨어진 거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이 되면 많은 제재를 받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대기업에서 떨어지는 단물을 누리며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가 정신의 부재다. 정부가 ‘성장사다리’ 복원 정책들을 내놨지만 이 역시 별 효과는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 독일이나 일본, 미국의 강소기업을 벤치마킹하자면서 재원을 쏟아부어야만 할까. 아니다. 지난 20여년간의 정책이 먹히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고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사실 답도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생태계부터 만드는 것’이다.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을 뿐이다. 2012년 ‘경제민주화’는 그 연장선에서 등장했다. 대기업에 묶인 중소기업의 사슬들을 풀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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