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참 모습에 가까워지다

❶ 호모 아이텐트로푸스, 종이에 아크릴 물감‧콜라주, 76×56㎝, 1994 ❷ 바캉스를 위한 드로잉, 2002
❶ 호모 아이텐트로푸스, 종이에 아크릴 물감‧콜라주, 76×56㎝, 1994 ❷ 바캉스를 위한 드로잉, 2002

“나는 내 작품을 관객이 명료하게 이해해 주길 기대하지 않는다. 뒤죽박죽의 느낌, 애증의 양면성, 주저하거나 일관성 없는 것이 인간의 참모습에 가까우리라.” 요절한 천재 작가 박이소(1957~2004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순적 반응을 통해 사고를 넓히는 ‘경계의 미술’을 보여줬다.

작가이자 큐레이터ㆍ평론가로 활동한 박이소의 일생을 조명하는 ‘박이소: 기록과 기억’展이 12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4년 작가의 유족이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작품 및 도큐먼트ㆍ드로잉ㆍ비디오 등 아카이브 200여점을 선보인다.

박이소는 1982년 미국 유학을 떠나 작가로서 정체성을 찾고 서양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작업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졸업 후에는 브루클린 지역에서 실험적 대안 공간인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해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민자ㆍ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뉴욕의 미술 담론과 전시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한국 미술을 뉴욕에 소개하는 전시에도 참여해 두 미술계를 연결하고자 노력했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뉴욕에서 ‘박모朴某(박 아무개)’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그는 1995년 한국에 오면서부터는 ‘박이소朴異素’로 활동했다. 박이소는 ‘경계의 미술’로 당시 순수미술과 참여미술로 양분돼 있던 국내 미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무심한 듯 거리를 두면서도 미묘한 지점에서 문제의식을 강렬하게 내포하는 작품들은 크게 주목받았다. 특별한 세계관과 삶의 철학이 담긴 작품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을 다양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전시의 한축은 뉴욕과 서울로 이어지는 약 20년간의 대표 작품과 드로잉ㆍ아카이브 등으로 재구성한 연대기다. 다른 한축은 3단계 층으로 구성된다. 중심에 20년간의 작가노트들을 두고, 드로잉을 포함한 아카이브가 이를 둘러싸고, 마지막으로 실제 작품이 그 모두를 한번 더 감싼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작업노트 21권이다. 1984년부터 2004년 작고 직전까지 작업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뉴욕 유학 당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고민부터 후기 대표작인 ‘당신의 밝은 미래(2002년)’ 아이디어 스케치까지 엿볼 수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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