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深海 프로젝트 전시행정 논란

▲ 해양플랜트 기술개발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약 822억원이다.
올해 7월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이 수백억원을 투입하는 ‘심해자원 생산용 해양플랜트 분야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미래산업선도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전략기획단)은 2010년 11월 한국을 세계 5대 기술 강국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산업기술혁신 비전 2020’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2011년 7월 IT융복합 기기용 시스템반도체, 차세대 전기차 그린수송시스템 개발 등 5개 과제를 선정했다.

전략기획단은 이 과제에 2013년까지 총 6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미래 먹을거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업 범위 설정에 ‘선택’과 ‘집중’ 필요

올해 7월 11일 2차로 투명 플렉서블 디스플레이•해양플랜트•인쇄전자 3가지 과제를 선정했다. 이 과제에는 2018년까지 200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R&D)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 중 ‘심해자원 생산용 해양플랜트 분야 기술개발’에 지원되는 예산이 가장 많다. 약 822억원이다.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붓는 만큼 목표도 거창하다.
‘3000m급 친환경 심해 해양플랜트의 엔지니어링(해저•해상 통합)•핵심 기자재•설치기술 개발’과 ‘심해자원 발굴•분리•이송•전처리•저장•하역이 가능한 친환경•지능형 해양플랜트 토탈솔루션 국산화를 통해 2020년까지 심해자원 생산용 해양플랜트 선도 국가 도약’이 전략기획단의 최종 목표다.

 
해양플랜트는 해저에 묻힌 석유•가스를 채굴하는 작업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처음엔 수심 100~200m의 얕은 바다에서부터 채굴을 시작했지만 점점 더 깊은 바다(심해)로 들어가고 있다. 석유와 가스 사용량이 늘고 있어서다.

심해로 들어갈수록 단가가 오르고 부가가치도 늘어난다. 당연히 시장도 넓어진다. 하지만 심해 해양플랜트 분야는 최고의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몇 메이저 업체들만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전략기획단의 목표는 국내 기업의 기술력을 메이저 업체 수준으로 끌어 올려 갈수록 커지는 심해 해양플랜트 시장을 잡겠다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상당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략기획단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2025년 매출 102조원, 수출 100조원, 고용 11만5000명, 설비투자 24조6000억원이 유발된다.

조선업계가 불황인 요즘, 정부가 나서 해양플랜트 기술개발을 돕는다면 기업으로선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해양플랜트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기업의 숨통을 터주기 때문이다.

LNG선 시장 진입이 좋은 예다. 1991년 한국가스공사가 국내 최초로 LNG선을 발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부 지원이었다.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 세계시장의 8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정부가 기술개발을 지원한다면 기술력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략기획단도 LNG선의 성공 사례를 들며 해양플랜트 분야에서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해양플랜트 전문가들은 이런 목표를 두고 “전시행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엔지니어링만 잘 해도 대박

해양플랜트 전문가들은 “해양플랜트 기술의 수준 차이를 무시한 채 10년 내에 너무 많은 사업을 하려 한다”며 “조선과 해양플랜트는 기술력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략기획단이 해양플랜트 기술개발의 범위부터 잘못 설정했다는 것이다.

전략기획단의 해양플랜트 기술개발 계획은 두 분야로 나뉜다.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 설비)와 같은 해상플랫폼 분야와 심해 해양플랜트(Subsea) 분야다.

기술개발 목표를 보면 해상플랫폼 분야는 ‘해상 부유식 플랫폼(Floating Type)과 이에 해당하는 엔지니어링, 핵심기자재와 설치기술 개발’에, 3000m급 심해 해양플랜트 분야는 “시스템 전체 개발과 이에 해당하는 엔지니어링, 생산•처리시스템과 설치기술 개발‘이다. 해상 부유식 플랫폼 전체와 심해 해양플랜트 전체를 아우르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의미다. 해양플랜트 기술개발 사업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친환경•지능형 해양플랜트 토탈솔루션의 국산화나 3000m급 심해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 개발 등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 심해 해양플랜트가 적용된 최고 수심은 1500m 수준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LNG는 이미 가지고 있던 조선기술을 (정부의 도움을 받아) 응용을 한 것이지만, 해양플랜트 특히 심해 해양플랜트 분야는 밑바탕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해상플랫폼을 수주해도 엔지니어링(설계) 기술이 없는 국내 기업은 수익창출에 고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범위를 좁히더라도 엔지니어링 기술만 확보하면 수익은 몇 배로 뛸 수 있다”며 “엔지니어링이 되면 기자재 구매를 전담하고, 통합 발주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심해 해양플랜트 분야에 좀 더 쉽게 진출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상용화다. 해양플랜트 시장은 실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저의 석유•가스를 채굴하는 단계인 심해 해양플랜트 분야는 특히 그렇다.

해양플랜트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심해 해양플랜트 분야는 단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관련 기업이 줄줄이 쓰러질 수 있어서다. 메이저 석유회사와의 협력 경험이 없는 업체에 심해 해양플랜트를 맡긴다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해양플랜트에서 메이저 기업과의 프로젝트 진행 실적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제로 2010년 멕시코만에서 작업을 하던 영국 석유회사 BP사의 원유시추시설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BP사는 이 사고로 피해를 본 어민과 업체에 78억 달러(약 8조8700억원)를 배상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액수일 뿐이다. 관련된 업체들이 입은 피해까지 포함하면 손해배상액의 2~3배가 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BP사나 되니까 버틴 거지 웬만한 기업 같았으면 도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국산화’나 ‘토털솔루션’을 거론하는 것은 난센스다.

전략기획단 관계자는 “기술개발 과정에 해외 해양플랜트 분야 선진연구기관을 참여시키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상용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부담을 정부가 안고 간다는 얘기다. 

 
위험부담 커도 대비책 없어

그래서 해양플랜트 전문가들은 중국 한나라 시대의 장수인 한신과 같은 기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신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정잡배의 가랑이를 지나간 이야기는 유명하다. 메이저업체의 ‘친구’가 돼 시장 확대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해양플랜트 전문가는 “‘국산화’를 외치며 시장에 정면 도전하기보다는 허울을 버리고 시장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야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정부가 진행하는 해양플랜트 기술개발 계획은 효율성을 따지지 않는 보여주기식 정책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사업단으로 선정된 기업의 한 관계자는 “현실 가능한 기술개발을 통해 이 사업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해나가는 게 사업단의 역할”이라며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정책을 문제 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직 판단을 내리기엔 이른 감이 있다. 사업의 취지 또한 훌륭하다. 다만 모든 사업은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은 바다가 아니라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업비용이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확실한 나침반이 필요할 때다. 

 
<Issue & Issue>
심해 해양플랜트 기대효과 산출근거는 어디에…

전략기획단은 ‘2025년 기대효과’로 “102조원의 매출과 100조원의 수출, 11만5000명의 고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산출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수치로 확인되는 것은 오일•가스 시장과 해양플랜트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그래프와 매년 시장을 얼마씩 점유하겠다는 내용이 전부다. 어떤 기술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어떻게 시장점유율을 높이게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전략은 이렇다.

“해양플랜트 시장이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해양플랜트와 연관된 산업을 발전시킨 역량이 있다. 정부 주도의 R&D와 실증기회 제공으로 LNG운반선 시장 진출에 성공한 경험도 있다. 통합발주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정부와 기업이 해양플랜트 기술을 개발한다. 해외 해양플랜트 분야의 선진연구기관을 참여시키고, LNG운반선 시장진입에서처럼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경험치를 확보한다. 해양플랜트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 타 업체와 차별화한다. 2020년에 해양플랜트 선도국가로 도약한다.”

결국 ‘2025년 기대효과’의 산출근거는 시장이 넓어지고 있으니 뛰어 들기만 하면 점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략 산출된 기대효과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전략기획단 관계자는 “목표를 크게 잡은 대략적인 산출일 뿐”이라며 “처음부터 큰 효과를 보는 사업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풀려진 기대효과에 맞춰 해양플랜트 분야는 3개 사업단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받았다.

<용어설명>
* 해양플랜트 : 해양에서의 석유•가스 채굴은 바닷속 표면을 뚫고 석유나 가스를 '채취'해 수면 위의 해상플랫폼(고정식•부유식)에 '전송'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채취와 전송에 해당하는 모든 설비와 작업을 통칭해 심해 해양플랜트(Subsea)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해상플랫폼 위에서 저장•하역•정제•운송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양플랜트다. 그리고 바다에서 석유•가스를 개발해내는 모든 활동과 시설을 통칭해 해양플랜트라고 한다.

* 수심의 구분 : 100~200m의 비교적 얕은 수심의 바다를 천해라고 한다. 200m 이상의 수심이면 심해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200~1000m는 중심해, 1000~3000m는 점심해수층, 3000~6000m는 심해저, 6000~11000m는 초심해저로 구분한다. 현재 1000~1500m 사이의 점심해수층에서 해양플랜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해양플랜트 토탈솔루션 : 과거에는 발주자가 각각의 기자재를 개별 기업으로부터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 기업마다 전문 분야가 있어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괄구매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 : 해양플랜트에 관련된 생산설비나 구조물을 만들거나 설계 혹은 제조과정 자체를 창조하는 응용기술을 통칭한다. 설비의 정상적인 운전이나 건축, 개선을 위한 설계와 계획을 모두 아우른다. 통합발주가 늘어나면서 해양플랜트 엔지니어링에서는 기자재 구매, 시공과 건설, 금융 조달, 프로젝트 위험관리까지 담당하고 있다.

*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 해양플랜트나 드릴십에서 뽑아낸 원유를 정제하고 이를 저장해서 운송선 등에 이송하거나 하역할 수 있는 특수선박이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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