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ㆍ소상공인 세무조사 면제 논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세무조사 면제 대책은 전형적인 미봉책이다. 이들을 상습적 탈루집단으로 오인케 할 뿐만 아니라 법의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사진=뉴시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세무조사 면제 대책은 전형적인 미봉책이다. 이들을 상습적 탈루집단으로 오인케 할 뿐만 아니라 법의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대책으로 세무조사 면제카드까지 꺼내들었다. 국세청은 16일 전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87.0%인 569만명에 대해 내년 말까지 세무조사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사업자가 제출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신고내용 등에 대한 확인(사후 검증)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세청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세무검증 걱정 없이 사업에만 전념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자연재해나 조선 경기 침체로 인해 특정 지역의 세금납부나 세무조사 등을 유예한 적은 있지만 이번 같은 전국적인 세무조사 면제 조치는 처음이다.

세무조사 면제는 범정부 차원에서 마련 중인 자영업자 지원종합대책의 하나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주축인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 결정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불복을 선언한 데 이어 29일 항의집회를 열기로 하자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마련한 정치적 결정이다. 자영업자 지원 대책으론 이밖에도 편의점 근접입점 규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임대료 부담 완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

세무조사란 납세의무자가 신고한 내용에 오류 또는 탈루가 있을 때 세무당국이 이를 확인하는 성실납세 유도장치다. 세법에 따라 질문이나 심문을 하고, 장부와 서류ㆍ기타 물건을 검사ㆍ조사ㆍ검색 또는 확인하는 일체의 행위를 일컫는다. 사업하는 이들에게서 ‘저승사자’로 불리지만, 소득이나 이익을 숨김없이 신고하고 정해진 세금을 납부하는 대다수 보통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세무조사가 딴 사람 이야기이긴 대다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도 마찬가지다. 편의점은 물론 어지간한 음식점까지 대부분 고객들이 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을 내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받아가는 현실에서 매출을 숨기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세무조사 면제 대책은 당장 소상공인연합회로부터 반발을 샀다. “우리더러 세금을 탈루하며 알아서 종업원들 임금 주라는 말이냐”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소상공인들이 탈세집단으로 비칠까봐 우려된다”는 반응이다.

이번 조치의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국세청이 발표한 세무조사 면제 기준에 따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가운데 매해 실제 세무조사를 받는 경우는 1000명 정도다. 연간 1만여 법인과 기업, 개인들이 세무조사를 받는데 그 대부분이 대기업이나 고소득 전문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569만명에게 세무조사를 면제ㆍ유예한다는 발표는 지나친 생색내기다. 

법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세무조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소지도 있다. 이번 조치는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해온 대다수 사람들에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불성실하게 납부해온 이들, 고의적으로 탈루해온 이들에게 특혜가 주어짐으로써 ‘계속 그렇게 하라’고 부채질할 수 있다. 이미 세무조사를 받은 이들은 재수가 없어 당했다며 정부 정책을 불신할 테고. 

특정 업종이 어렵다며 세무조사 면제를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까지 세무조사와 신고내용 검증을 면제하는 한시적 조치라지만, 그 이후엔 어쩔 텐가. 이래저래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 땜질처방이란 지적을 받을 만하다. 

정부는 이미 일자리안정자금, 청년고용장려금 등 최저임금 지원대책을 내놨지만, 국민 세금인 재정으로 민간 임금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또 연간 수조원의 예산을 추가 편성해야 하는 만큼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정부정책이 소득주도 성장, 그 대표주자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갇혀 자꾸 무리수를 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업종별ㆍ지역별 차등화를 진지하게 검토하자. 최저임금을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두지 말고 노사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효과 분석 시스템을 갖추자. 이를 위해 소상공인은 물론 중소기업인, 경비원, 미화원, 시간제 알바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불러 국민토론회를 열고 의견을 듣자.  

7월 취업자 증가폭이 고작 5000명에 그쳤다. 자동차ㆍ조선업 구조조정에 따른 감원이 큰 요인이지만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영세 자영업체와 중소기업에서 일자리가 줄어든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소득주도 성장이든, 포용적 성장이든 일자리 없인 불가능하다. 국민은 임시방편 땜질이 아닌 규제개혁과 신성장동력 발굴, 혁신성장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근원적 처방의 실천을  고대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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