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논란의 허상
“국민연금 고갈 공포는 과장됐다” 

“기금고갈이 우려된다.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수급 연령을 높여야 한다.” 국가에 기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국민들은 동요한다. 더 내고 늦게 받으라니, 당연하다. 문제는 기금이 고갈되면 우리는 정말 연금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느냐다. 그렇지 않다. 대다수 선진국은 기금을 적립하지 않고도 국민들에게 연금을 준다. 국민연금 고갈론에서 기인한 공포는 과장됐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대통령에게 4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질문을 정리했다. 이정우 인제대 교수가 혜안을 줬다.   

국민연금제도를 불신하는 국민을 설득하려면 정부가 그동안 취해온 모순된 입장부터 정리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제도를 불신하는 국민을 설득하려면 정부가 그동안 취해온 모순된 입장부터 정리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제도발전ㆍ재정추계ㆍ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4차 재정재계산 최종안을 공개했다. 재정재계산은 2088년까지 70년치의 국민연금 재정전망을 통해 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이다.

이번 최종안에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2%포인트~4.5%포인트 올리고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자 국민연금제도를 향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불만과 불신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등으로까지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안이 아닌 만큼 추후 정부안이 확정될 때까지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면서 “국민연금은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원칙으로 논의하되,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보험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문 대통령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제스처를 취했지만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사실 이번 개선안이 특별한 건 아니다. 수차례 나왔던 기존 개선안들과 다를 게 별로 없다. 개선안의 전제는 ‘기금고갈’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될 가능성이 있으니, 더 내고 늦게 받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개선안에 따르면 보험료를 현행 9.0%에서 1.8%포인트~4%포인트를 더 올린다. 국민연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나이도 60세에서 65세로 올린다. 기금을 더 걷어 ‘고갈 가능성’을 막자는 취지가 읽힌다. 

반대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수령연령)는 2033년까지 65세로 인상하고, 이후 추가적으로 최고 68세까지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연금지급 시기를 최대한 늦춰 고갈 가능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의무기간을 더 늘리고, 납부액의 수준도 높인다. 반대로 연금 지급 시기는 늦춘다.” 국민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여기엔 논리적 결함이 있다. 정부는 기금 고갈론에 대비해 국민연금 개선안을 만들면서도 기금고갈은 별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부의 입장을 요약해보자. “국민연금은 국가가 책임을 지고 운영하는 제도이므로,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는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공허한 자신감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선안에 ‘국가의 지급보증’을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을 향한 국민의 불신도 상당부분 해결될지 모른다. 

또 다른 정부 주장에서도 ‘고갈 리스크’는 읽히지 않는다. “설령 기금고갈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을 가지고 있다. 기금이 고갈돼 국가가 매년 전체 국민들로부터 보험료를 걷어서 바로 그해의 노인들에게 전액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국민연금은 별도로 적립기금이 없는 상태에서도 운영이 가능하다.” 

이 방안은 상상 속 플랜이 아니다. 오늘날 대다수 선진국 국민연금제도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기본원리는 나라살림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그해 걷어 그해 사용(고유기능)하는 국가 일반회계와 똑같다. 그래서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국가는 별다른 기금적립이 없이 나라살림을 지켜낼 수 있다. 

대체 뭘까. 국민연금은 납부액을 올리고 수령시기를 늦춰야 할 정도로 위기일까. 아니면 지금 상태로 유지하더라도 얼마든지 연금을 받으면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자, 이런 질문을 토대로 정부에 우리가 물어봐야 할 게 있다. 


첫째, 정부 발표대로 기금고갈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뒤의 일인데도, 당장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것인가. 둘째, 정부는 기금이 고갈돼도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왜 기금고갈을 우려해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가. 
 

독일은 현재 기금을 두지 않은 상태로 국민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금고갈을 걱정하는 국민은 없다.[사진=연합뉴스]
독일은 현재 기금을 두지 않은 상태로 국민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금고갈을 걱정하는 국민은 없다.[사진=연합뉴스]

셋째, 애초엔 적립기금을 뒀지만 이제는 적립기금을 두지 않고 국민연금제도를 운영하는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기금이 고갈된 상태인가, 아니면 기금없이 운영하는 제도로 바뀐 것인가. 

넷째, 기금을 적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평생 기금고갈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국민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은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더 많은 이들이 국민연금에 가입해 불안에 떨어야 할 이유는 대체 뭔가.

어떤가. 이 질문이 시사하는 건 간단하다. 국민연금의 납부액을 올리고, 수령기간을 늦추자는 ‘기금고갈론자’의 주장이 팩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금이 고갈돼도 우리는 얼마든지 연금을 받을 수 있고, 기금을 운영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국민연금 고갈론은 ‘공포’를 확산시키고 부가가치 없는 논박만 일으켰다. 

물론 일부에선 “기금이 고갈된 후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간과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질문이다. 기금을 운용하든 하지 않든 그것과는 별개로 보험료율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보험료율을 조정할 때 어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조정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뿐이다.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정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민연금 리스크’를 국민에게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정부의 큰 실책이다.
글 :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 교수 socwjwl@hanmail.net
정리 : 김정덕 기자 juckys@tn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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