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제도의 맹점

“BMW 화재사건의 원인은 한국 운전자의 습관에 있다.” BMW 측이 망언을 했지만 BMW 소유주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집단소송제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이다. 어쩌면 소비자가 강력하게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허술한 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비자 보호제도가 완벽하다면 민원을 제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와 변호사닷컴이 소비자 보호제도와 소비자 갑질의 상관관계를 짚어봤다. 박재정 IBS법률사무소 변호사가 혜안을 줬다. 

소비자 갑질을 소비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 갑질을 소비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 ‘갑질’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의 불만이야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폭행을 하고 욕설을 내뱉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어쩌면 소비자들이 폭행이나 막말을 해도 매장이나 회사측에서는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참으라’고만 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제도가 미흡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행법과 제도 안에서 소비자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구매한 상품에 문제가 있다면 소비자는 해당 기업 고객센터를 찾아 문제를 제기하고,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할 수 있다. 최근 기업들도 일정기간 내에 상품의 포장이나 가격표를 뜯지 않고 가져가면 대부분 환불을 해준다. 

그런데 이는 법에 의한 소비자 보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해당 기업의 내부정책에 따른 거다. 기업이 환불을 거부한다면 어떨까. 상품을 카드로 결제했다면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화 등을 공급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청약철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약철회 행사기간이 매우 짧고, 제품의 포장을 훼손하거나 제품을 이미 사용한 경우 청약철회 하기가 힘들다. 청약철회를 인정받더라도 피해보상까지 받기는 어렵다. 피해보상까지 받으려면 정식 피해구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소비자 피해구제 전문기관으로 한국소비자원을 두고 있다. 먼저 소비자가 전화나 인터넷 또는 소비자원을 방문해 상담을 신청하면 상담을 진행하고, 상담만으로 원만한 해결이 안 되면 피해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 소비자원은 피해구제가 접수되면 사실조사, 시험검사,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당사자 간 합의를 권고한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분쟁조정 절차를 신청할 수도 있다. 

제법 공정하고 강제력도 있어서 이런 소비자 피해구제 절차를 통해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기업이 소비자원의 합의나 분쟁조정을 수락하지 않으면 결국엔 법원 소송을 제기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피해액이 소액에 그쳐 소송의 실효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민사소송에서는 소비자가 실질적인 피해사실이나 피해금액을 모든 근거 자료로 직접 입증해야 한다. 소송은 소비자에게 큰 실효가 없고 부담만 큰 셈이다. 결국 기업이 모든 합의와 조정을 다 거부한다면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법과 제도를 통한 피해구제가 실효성이 없다 보니 큰 목소리와 주먹이 앞선다는 거다.

소비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집단소송제도 활성화, 입증책임의 전환, 소송비용지원제도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나 BMW 연속발화 사건 등 최근 소비자 보호와 기업의 책임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소비자 갑질 문제도 커지는 만큼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재정 IBS법률사무소 변호사 pjj@ibs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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