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의 거장을 만나다

❶청색, 1972, 캔버스에 유채, 70×69.7㎝
❶청색, 1972, 캔버스에 유채, 70×69.7㎝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의 작품은 깊고 간결해서 아름답다. 그는 ‘무심無心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전통 미학이 추구했던 수수하고 듬직한 ‘미덕’을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냈다. 스스로를 ‘천지문天地門’이라 명했던 윤형근은 하늘을 뜻하는 청색과 땅의 색인 암갈색을 섞어 ‘오묘한 검정’을 탄생시켰다. 그 거대하고 순수한 검정 앞에 관객은 ‘심연深淵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윤형근(1928~2007년)의 회고전이 12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미공개작을 포함한 작품 40여점, 드로잉 40여점, 아카이브 100여점 등 2007년 작가 사후 유족이 보관해온 작품 및 자료가 공개된다. 윤형근은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청년기에 보냈다. 1947년 서울대에 입학했으나 미 군정이 주도한 ‘국대안(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적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학창시절 시위 전력으로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1956년 전쟁 중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고,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유신 시절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을 받은 부정 입학생의 비리를 따지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기도 했다. 본격적인 작품 제작을 시작한 건 1973년 45세 때다.

❷청다색 · Umber-Blue, 1978, 마포에 유채,  270×141㎝ ❸드로잉, 1970, 종이에 유채, 32×25㎝
❷청다색 · Umber-Blue, 1978, 마포에 유채, 270×141㎝ ❸드로잉, 1970, 종이에 유채, 32×25㎝

전시는 총 4부로 구성했다. 1부에서는 작가의 작업 초기,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의 영향을 보여주는 1960년대의 드로잉과 작품들이 전시된다. 2부와 3부에서는 작가 특유의 색채인 청색과 암갈색이 섞인 ‘오묘한 검정’이 담긴 ‘청다색’ 연작부터 말년까지의 작품을 다룬다. 최초 공개되는 1980년 6월 제작 작품 ‘다색’은 피와 땀을 흘리며 묵묵히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헌사다.

4부는 윤형근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공간이다. 그가 좋아했던 목가구·도자기·토기 등 조선의 공예품들, 추사 김정희의 글씨, 김환기의 그림, 최종태의 조각 등 그의 아틀리에에 소장돼 있던 관련 작가 작품들과 유물을 그대로 옮겨 왔다. 그와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 사물들 그리고 윤형근 자신의 일기·노트·사진·드로잉 등도 공개된다. 김환기가 작고 15일 전 윤형근에게 남긴 엽서를 포함해 윤형근·김영숙 부부에게 보낸 편지도 함께 전시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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