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쇼크 이어 분배 참사까지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이는 국민을 희망고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이는 국민을 희망고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사진=뉴시스]

애써 그런 모습을 언론에 공개할 때부터 걱정스러웠다. 문재인 정부 경제라인의 투톱-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엇박자를 내지 않고 잘해낼지에 대한 의구심이 컸던 지난해 6월 21일, 장하성 실장이 서울 세종로 부총리 집무실을 찾았다.  

“경제정책은 부총리가 중심을 잡고 이끈다. 과거에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주요 경제정책을 결정했지만, 새 정부에선 부총리가 경제의 중심이라는 것을 국민께 알려드리기 위해 부총리 집무실로 왔다(장하성 실장).”

“거시지표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만 체감경기나 고용시장은 어려운 이중적인 상황이다. 경제팀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국민을 위해서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현안점검회의를 통해 일관되게 해나가야 한다. 경제팀이 한목소리 내고, 토의와 논쟁을 벌이며 방향을 정할 것이다(김동연 부총리).” 

상징적인 모습과 발언이라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경제운영에 한치의 빈틈도 없이 하겠다’는 공언과 달리 투톱은 사석과 회의에서 자주 부딪쳤다. ‘김동연 패싱(건너뛰기)’이 거론됐고, 김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어머니가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경제팀이 ‘원팀(one team)’은커녕 누가 실세인지를 놓고선 ‘장앤김이냐, 김앤장이냐’는 소리까지 듣는다. 이런 판에 일자리와 소득분배 상황이 악화됐다. 올 2월부터 취업자 증가폭이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인 10만명대로 급감했고, 1분기 빈곤층의 소득이 감소하면서 부유층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투톱은 충돌했다. 장 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없다고 강변했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이 영향을 미쳤다며 2020년 1만원 대선공약의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나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며 장 실장 손을 들어주었지만, 7월 취업자 증가폭(5000명)은 지난해의 60분의 1토막 났다. 2분기 빈곤층 근로소득도 계속 감소해 소득격차는 더 확대됐다.

이런 경제성적표로는 정책의 신뢰도, 국민 마음도 얻기 어렵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다. 국민의 실망과 허탈감은 취임 이후 최저치를 경신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로 연결됐다.

경제라인 투톱은 고용쇼크에 대한 처방에서도 엇박자를 냈다. 일요일인 19일 긴급 소집된 당정청 회의에서 김 부총리가 “정책 수정이 필요한지 검토하겠다”고 말한 반면, 장 실장은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22일 나온 자영업 지원 대책이나 내년 예산안 당정협의회에서 거론된 대책은 나랏돈 푸는 것 외 뾰족한 게 없다. 지난해와 올해 본예산과 추가경정예산 등을 합해 54조원을 일자리용으로 쓰면서도 고용참사가 이어지는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정책 기조의 수정은 물론 경제라인 투톱의 교체도 고려해야 마땅하다.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소득주도 성장이 효과를 거두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국민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그 기간이 지나면 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밑그림은 제시하지도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청사진 제시도 없이 무조건 기다려달라는 것은 국민을 희망고문하는 격이다. 1년 넘게 실행해보고도 성과가 없고 부작용이 더 많이 나타나면 정책을 수정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경제 문제에 진영 논리를 덧씌워 고집하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쩔 텐가.

장하성 실장은 “연말까지 가면 고용상황이 개선될 것”이라지만, 국민들로선 당장의 실업과 불황 자체가 큰 고통이다. 여당 일각에선 고용지표가 내년 상반기까진 좋아질 것이라고도 한다. 행여 전년 동기 대비 수치로 발표되는 고용통계 성격상 올 2월부터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에 내년에는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기저효과를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길 바란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라는 핵심 정책목표 달성에 실패하고도 원인 분석과 처방에 혼선을 빚는 경제팀으론 국민을 안심시킬 수도, 민생과 경제가 나아지리란 희망을 갖게 하기도 어렵다. 

경제팀 면모를 일신시키자. 외환위기를 짧은 기간에 극복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겸비하고 소신 있게 실사구시를 추구할 인물이 요구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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