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기조 바꾸면 경제 좋아질까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벽에 부닥쳤다. 고용 쇼크가 잇따르자 야권과 보수 경제학자들은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폐기하라”고 연일 압박한다. 이명박ㆍ박근혜 집권 시절처럼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전략을 펴라는 거다. 그렇다면 한가지 묻겠다. ‘비즈니스 프렌드리’가 옳다면 경제성장률은 왜 그 모양이었는가. 양극화는 왜 그리 심해졌나. 지금 필요한 건 정책을 가다듬는 것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소득주도성장 폐기론의 한계점을 살펴봤다. 
 

70여년 만에 수정된 경제 전략을 1년 만에 폐기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70여년 만에 수정된 경제 전략을 1년 만에 폐기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실패했다. 폐기해야 한다.” 일부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런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통계청이 ‘2018년 7월 고용동향’을 발표하면서 비난의 수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취업자 수는 고작 5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0년 1월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특히 25~34세의 실업자 수는 33만8000명, 실업률은 6.4%였다. 7월 기준으로만 보면 1999년(43만4000)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줄였으니 정책을 폐기하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정책의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정책을 수정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폐기하라”는 이들이 대안을 갖고 있느냐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이윤주도성장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애초 이윤주도성장론의 배경엔 ‘기업들이 돈(이윤)을 많이 벌어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고용을 늘리면 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이를 통해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그런 믿음을 갖고 오랜 기간 이윤주도성장 전략을 유지해왔다. 

개발독재 시절 정부가 정책적으로 산업과 기업을 키우는 데 집중한 반면 노동자의 인권이나 복지와 같은 문제들을 뒤로 미룬 것도, ‘낙수효과(Trickle-down)’를 노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곳간이 마른 정부가 해외자본을 끌어들인다는 명목 하에 친기업 정책들이 더 많이 쏟아진 것도 사실이다. 법인세 인하나 노동유연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윤주도성장 전략은 한계에 도달했다. 어느 순간부터 경제성장을 견인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홍경준 성균관대(사회복지학) 교수는 “금융이 주도하는 경제체제에서의 이윤주도성장 전략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 그로 인한 소득불평등 심화, 가계 소비지출 억제에 따른 내수시장 위축, 금융부문을 통해 더 큰 이윤획득 기회를 갖게 된 기업들의 신규투자와 실물투자 감소, 정부 세수 감소, 가계부채 증가 등와 맞물려 성장 자체를 정체시켰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윤주도성장 전략이 한국의 현실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통계로도 알 수 있다. 먼저 경제성장이 멈췄다. 경제성장을 호언장담하며 친기업 정책을 밀어붙인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경제성장률만 봐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2008~2012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3.2%에 머물렀고, 박근혜 정부의 GDP 성장률은 4년(2013~2016년) 평균 2.9%에 불과했다. 

잘못된 길로 다시 돌아가자니…

양극화는 심해졌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1980년 103만원에서 2015년 3074만원으로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GNI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 각각 14.0%에서 24.6%로 10.6%포인트 늘었지만, 가계소득 비중은 72.1%에서 62.0%로 되레 10.1%포인트 줄었다. 기업과 가계 간 소득양극화가 생겼다는 얘기다. 

 

분배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96년 66.1%였던 우리나라 노동소득분배율은 2000년대 후반까지 하락하다 조금씩 반등하고 있지만, 2016년 55.2%로 20년만에 10.9%포인트 하락했다. OECD 평균인 61.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소득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 역시 1998년 0.285(통계청 자료 기준)에서 2006년 0.306으로 오른 이후 줄곧 0.3대를 내려가지 않았다. 2016년엔 0.357(2015년 정교화작업 후)을 기록했다[※ 참고: 지니계수는 숫자 0~1로 표현되는데, 높을수록 소득불평등 수준이 높다는 얘기다.] 

가난한 가계가 소비를 할 리 없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2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수 비중은 78.4%에서 53.4%로 25.0%포인트나 떨어졌다. 돈은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발이 묶였다. 가계부채가 2002년 465조원에서 2018년 1분기 1468조원으로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추세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침체를 겪으면서 가팔라졌다. 결국 “낙수효과가 없어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고, 가계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8대 대선에서 복지공약을 들고 나온 배경도, 박근혜 정부 경제수장을 맡은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가계소득 증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사실 용어와 전술(방법)을 바꾼 것뿐이다. 바로 여기에 소득주도성장 전략 폐기론의 한계가 있다. 

물론 현 정부가 성과를 내기 위해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둘렀다는 비판은 피할 길이 없다. 여기저기서 공격받는 최저임금 인상만 봐도 그렇다. 당위성에 따라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는 했지만, 자영업자들에게 미칠 파장을 고려하는 데 소홀했다. 임대료, 카드수수료, 대기업과의 가맹계약, 시장의 불공정성 등 자영업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덜어줄 대안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헛발질이 있었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너무 낙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부족한 걸 채우고, 잘못하는 걸 개선해서 앞으로 나가야지 아예 뒤돌아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나오는 “소득주도성장 전략 폐기” 주장은 “이윤주도성장 전략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과 매한가지다. 소득주도성장 폐기론자들은 “고용을 늘리려 임금을 좀 내려도 되지 않느냐” 혹은 “대기업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세금도 낮춰줘야 한다”는 주장들을 펼치는데, 그건 바로 이윤주도성장 전략의 핵심 요소들이다.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장상환 경상대(경제학) 명예교수는 “이윤주도성장 전략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취해온 전략이지만, 수많은 선진국과 국제기구의 경제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이 전략으로 작금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면서 “이윤주도성장 전략이 원인 제공을 한 결과이기 때문인데, 그런 낡은 전략으로 과연 무슨 처방을 내릴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전략 폐기 아니라 전술 수정 필요

장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더 과감한 소득주도성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핵심은 소득분배 불평등을 해소로 수요를 일으키는 거다. 그 일환으로 이제 고작 최저임금을 올렸다. 이마저도 자영업자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준비가 부족해서다. 문제는 불공정한 시장 개선 등과 같은 중요한 각론은 시작도 안 했다는 거다. 이걸 실패라고 한다면 실패가 맞다. 그렇다면 ‘더 강하게 밀어붙이라’고 채찍질해야 하는 것 아닌가. 70여년을 이어온 기성질서를 바꾸고 새판을 짜는데, 고작 1년 만에 성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수치 하나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란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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