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투자 통한 기술개발 강조
최태원 SK 회장, 협력사와의 상생 내세워

위기설設이 국내 반도체 산업을 덮쳤다. 중국 굴기와 반도체 가격 하락, 외국 증권사 보고서 등 이곳저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당연히 국내 반도체 두 공룡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큰 타격을 받았다. 흥미로운 건 두 기업 수장의 위기탈출전략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이재용(50) 부회장은 ‘투자를 통한 기술개발’을 강조한 반면, 최태원(58) SK 회장은 ‘협력사와의 상생’을 내세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두 반도체 공룡의 서로 다른 선택을 취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술력 강화에 중점을 둔 반면, 최태원 SK 회장은 생태계의 균형을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술력 강화에 중점을 둔 반면, 최태원 SK 회장은 생태계의 균형을 강조했다.[사진=뉴시스]

8월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회동을 마치고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을 나선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도 화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40분여간 달려 도착한 곳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 있는 반도체연구소.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이 집약된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향후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의 핵심이 될 ‘EUV(극자외선)’ 개발라인을 둘러본 이 부회장은 DS(반도체ㆍ디스플레이) 부문 경영진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선 기술 초격차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화성을 찾아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건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반도체 위기설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위기설이 나오는 첫째 원인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堀起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굴기는 “중국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올해 말 32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가시화했다. 

여기에 외국 증권사 모건스탠리의 비관적 전망이 반도체 위기설에 불을 댕겼다. 모건스탠리의 조지프 무어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업황이 과열됐다”면서 반도체 기업에 가장 낮은 투자전망 등급인 ‘주의’를 줬고, 시장 안팎에 충격을 안겼다.

실제로 반도체 현물가격은 꾸준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DDR4 8GB 기준) 가격은 올해 초 9달러선에서 지난 20일 6.9달러까지 떨어졌고, 낸드플래시(64GB 기준)는 같은 기간 4달러대에서 3달러 초반까지 하락했다. 현물가격 하락은 고정거래가격(기업간 거래)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기업에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침묵하던 이 부회장이 ‘기술 초격차’라는 비교적 강한 뉘앙스의 발언을 내뱉은 이유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면서 강한 어조의 말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삼성전자가 과거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반도체 1위 자리에 올랐듯이, 다시 한번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패권을 지켜내겠다는 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투자금액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180조원 가운데 90조~100조원을 반도체에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또다른 반도체 공룡 SK하이닉스의 지난 3년간 반도체 투자금액이 23조원가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투자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확산되는 반도체 위기설

흥미로운 건 SK하이닉스의 행보다. 이 부회장이 화성사업장의 반도체연구소를 찾았던 지난 6일,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협력사들과 함께 상생의지를 다졌다. 이후에도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에선 협력사 구성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일부에선 반도체 위기설이 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마당에 태평한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쏟아졌지만 SK하이닉스의 생각은 달랐다. “협력사와의 상생ㆍ협력 없이는 SK하이닉스도 성장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여기엔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최태원(58) SK 회장의 경영철학이 깔려있다. “공유 인프라를 외부에 공유하면 보다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있고, 사회적 가치도 제고할 수 있다.(지난 1월 2일 신년사)”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미래의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국내 반도체 장비ㆍ소재 협력사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거다. 

최근 SK하이닉스가 협력사들의 경쟁력 강화와 반도체 생태계의 성장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공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SK하이닉스가 지난 13일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선정한 ▲지식공유 플랫폼 ▲기술협력 플랫폼 ▲전략적 협력사 육성 등이 대표적이다.

가령, 반도체 전문학습 기관을 구축해 무상 교육을 제공하거나, SK하이닉스의 최신 장비를 개방해 협력사들이 제품 효과를 측정ㆍ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제품 판매처를 확보하게끔 지원해주는 식이다. 여기에도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최 회장이 지론이 묻어 나온다. 

 

한편에선 최 회장의 SK하이닉스가 펴는 상생론에 고개를 갸웃한다. 반도체 위기설을 돌파하기 위해선 SK하이닉스의 기술ㆍ설비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더 많이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의 상생 전략도 자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한태희 성균관대(반도체시스템공학) 교수는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소자업체들이 호황을 맞아 공장을 증설하고 있는데, 공장만 늘린다고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원자재 수급도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고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협력사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건 기술적인 면 외에 이런 종합적인 면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반도체 공룡의 엇갈린 행보

SK하이닉스가 SK머티리얼즈와 SK실트론 등 반도체 소재기업을 인수하면서 수직계열화를 이룬 것도 같은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그렇다고 SK하이닉스가 투자를 게을리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사상 최대 투자금액인 8조원가량을 올 상반기 반도체 설비투자에 쏟아부었고, 하반기에도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반도체 위기설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 기우에 그칠지, 진짜 위기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미래를 가정하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기술 투자를 택한 이재용 부회장, 협력사와의 상생을 주장한 최태원 회장. 웃는 자는 누구일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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