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석의 Branding | 돈키호테 vs 삐에로쑈핑

불황의 시대다. 평범한 제품과 전략으론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어렵다.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는 난잡한 상품군과 혼란스러운 제품 진열로 불황을 돌파했다. 돈키호테 특유의 ‘불량함’에 매료된 일본인들이 지갑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신세계그룹의 ‘삐에로쑈핑’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삐에로쑈핑에선 불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량배를 따라하는 모범생’의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돈키호테와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쑈핑을 색다른 관점으로 비교해봤다. 정안석 인프라프 대표가 조언했다.  

신세계그룹이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쑈핑을 출점했다.[사진=뉴시스]
신세계그룹이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쑈핑을 출점했다.[사진=뉴시스]

‘소확행小確幸’이 대세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에 사람들은 주저 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소확행을 처음 제시한 건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의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등장했다. 하루키가 이 수필이 쓰던 때는 199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던 시기다.

하루키는 당시 위축된 일본 사회를 바라보며 힘들게 지냈다. 이를 토대로 남의 시선에 의존해 결정된 행복이 아닌 개인적인 감상에 기반한 소소한 행복을 강조했다. 하루키가 소확행으로 언급한 행위는 정말 소소하기 짝이 없다.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등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소확행이 인기를 끄는 배경 역시 갑갑한 사회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고도 피로사회인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워라벨’ ‘미투’ 등 난해한 사회현상과 마주하고 있다. 경제ㆍ문화ㆍ주거ㆍ복지 등 어느 영역에서도 이들은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다.

이 가운데 주변에서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작은 기쁨의 가치를 일깨우는 소확행은 청년들에게 한줄기 빛이다. 하루키의 표현대로라면 “눈을 뜨면 마주하는 불편한 현실상황을 나름 우아하고 지적인 개인의 경험적 행위를 통해 내적 즐거움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행위”라서다. 유행과 추세에 떠밀려서 가짜 행복을 추구하던 과거 행태와는 거리가 멀다.

소확행은 범위도 넓다. 어떤 행위든 내가 행복하다면 그게 소확행이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 ‘나’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 범위를 ‘소비’로 한정했다. 필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를 꼽고 싶다. 몇 년전, 일본으로 출장을 갔던 필자의 경험담이다. 낮에는 업무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늦은 저녁이 돼서야 호텔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절실했는데, 문을 연 매장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근처에 휘황찬란한 빛을 내는 잡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들어 그 매장에 발을 들인 게 돈키호테와의 첫 인연이었다.

소확행과 소비 문화

매장에 진입해 마주한 돈키호테의 모습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간단한 과자류부터 맥주, 조악한 느낌이 드는 소형가전, 키덜트를 위한 장난감, 염가 의류, 슬리퍼, 콘돔 등 연관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상품들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이마저도 뒤죽박죽 섞인 채 쌓였다. 인테리어도 1990년대 이전의 유통매장을 보는 듯,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체험에 재미를 느꼈고, 구경하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나있었다. 계산대엔 맥주, 안주용 불량식품, 과일맛 젤리, 피규어 등을 늘어놓았다. 필자의 구입 품목이었다.

그럼에도 1000엔 남짓한 계산서를 보면서, 왠지 모를 성취감이 몰려왔다.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도쿄에서 느낀 일종의 소확행이었다. 필자는 이후로도 업무가 끝날 때마다 버릇처럼 돈키호테를 들렀다. 일본에선 깨나 이름 있는 브랜드라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일본의 돈키호테는 생필품부터 전자제품, 식음료, 옷, 스포츠 용품, 명품 등 온갖 물품을 다 판다. 유통기한 임박제품, 땡처리 제품 등도 특별한 원칙 없이 들여와 위태롭게 쌓아놓는다. 이 혼란스러움이 돈키호테의 매장 전략이라고 한다.

물론 이 지나친 역발상이 독이 되긴 했다. 우리나라에선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하기 위해 일본을 넘나드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인기지만, 정작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과거 무보수 잔업 등으로 ‘블랙기업’으로 찍힌 데다, 낮은 상품 신뢰도로 외면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는 차근차근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8조원을 넘어섰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으로도 발을 넓혀가고 있다. 

돈키호테가 성장곡선을 그리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던 때와 일치한다. 돈키호테는 ‘제품과 서비스의 신뢰성’ ‘지속성’ ‘고객과의 유대감 형성’ 등 기존의 브랜딩이 추구하던 전략을 버렸다. 

대신 정글을 연상케 하는 복잡한 진열 방식과 염가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혼란스러운 시대인 만큼, 이런 저돌적인 역발상이 일본 사람들에겐 ‘소확행’으로 다가갔던 건 아닐까. 마치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처럼 말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제정신일 수 있겠소?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오!”

삐에로쑈핑의 어설픈 코스프레

최근 국내기업이 돈키호테를 적극 벤치마킹해 화제가 됐다. 신세계그룹의 삐에로쑈핑이다. 삐에로쑈핑 직원들 유니폼엔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란 익살스런 문구가 적혀 있다. 필자의 감상은 이렇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삐딱한 불량학생을 억지로 따라하는 모습이다.”

그간 신세계그룹의 정갈한 유통채널들을 보면 ‘착실한 모범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돈키호테의 불량함은 이보다 훨씬 원초적이다. 클릭 한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의 시대다. 신세계그룹의 입장에선 오프라인 매장의 다양한 쇼핑 경험을 늘리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겠지만, 억지로 꾸민 불량함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소확행’으로 느껴질지 의문이다. 물론 평가는 소비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joel@ingraff.com | 더스쿠프 브랜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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