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민 케인 ❸

영화 ‘시민 케인’은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에 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케인은 신문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보도한다. 대중의 여론도 자신의 이익과 입맛에 따라 조작하고, 미국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한다. 그리고 마침내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의 야망을 키운다.

영화 ‘시민 케인’은 ‘황색 언론’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 ‘시민 케인’은 ‘황색 언론’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유난히 눈이 많은 콜로라도의 산간마을에서 겨울이면 썰매놀이에 푹 빠져 지내던 소년 찰스 포스터 케인(Charles Foster Kane)은 우여곡절 끝에 뉴욕의 신문 재벌로 성장해 미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마왕’으로 자리잡는다.

그는 장원莊園 같은 자신의 저택을 세계를 정복했던 원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의 궁전 이름(청두)을 차용한 재너두(Xanadu)라고 명명하는 호기를 부린다. 그가 휘두르는 모든 권력의 원천은 그가 운영하는 신문 ‘뉴욕 인콰이어러(New York Inquirer)’가 휘두르는 필봉筆鋒이다.


영화 속에서 케인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서양 속담을 몸소 실현해 보인다. 서양 격언처럼 알려진 이 말의 원조는 사실 프랑스 루이 13세를 등에 업고 국정의 전권을 휘둘렀던 재상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이라고 한다. 글로써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이야말로 무력이나 폭력보다 훨씬 유효한 통치의 수단이다.

케인은 단지 ‘뉴욕 인콰이어러’라는 신문사 하나를 지배하지만 신문사가 고용한 기자와 칼럼니스트, 논설위원들 그리고 신문의 입맛에 맞는 소위 ‘전문가’들이 휘두르는 펜은 수천ㆍ수만의 병사들이 휘두르는 칼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들을 복종시키고 통제한다. 공장 하나 없이 쌓아 올린 케인의 엄청난 부 역시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조작해 내는 힘에서 나온다. 케인이 결코 1부당 2센트짜리 ‘신문쪼가리’ 팔아 재벌이 된 것은 아니다. ‘언론 재벌’이라는 용어만큼 두 단어가 어색한 조합은 없다.

케인은 신문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보도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케인은 신문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보도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시민 케인’은 ‘황색언론(Yellow Jo urnalism)’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다. 케인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신문 판매 부수部數를 늘린다. 부수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지배하고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몸소 미국 정치에 직접 뛰어들고, 대통령의 야망까지 키운다. 자신의 신문을 이용해 적들과 경쟁자까지 무차별 난타하고 매장시킨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회정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악마와도 거래한다. 사적인 원한까지 신문 보도를 통해 해결한다. 그 당시 미국의 운명을 가를 첨예한 국가적 문제인 ‘스페인과의 식민지 전쟁’까지 개인적이고 사익의 관점에서 온갖 선정적 기사와 불확실한 정보를 쏟아내며 전쟁을 부추긴다. 실제로 케인의 선동에 의해 국민들 마음이 전쟁으로 기울고 미국은 마침내 스페인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영화 속 케인은 당시 ‘뉴욕 저널(New Yo rk Journal)’을 운영했던 언론 재벌이었고 현재도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 재벌로 남아있는 ‘허스트 가문’을 키워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를 모델로 했다.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와 함께 미국 ‘황색언론’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황색언론’이라는 용어 자체도 퓰리처가 운영하던 ‘뉴욕 월드(New York World)’에 매일 게재됐던 노란 컬러까지 동원한 만화 ‘Yellow Kid’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1900년대 미국의 ‘황색언론’ 작태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사진=연합뉴스]
1900년대 미국의 ‘황색언론’ 작태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사진=연합뉴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해야 할지, 퓰리처가 개척한 황색언론을 모방해 더욱 발전시키고 만개시킨 인물이 바로 허스트다. 1941년 ‘시민 케인’이 개봉했을 때 도둑이 제 발 저렸는지 허스트 회장님은 자신이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매체들에 ‘시민 케인’에 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하게 명령했다고 알려졌다. 불후의 명작 ‘시민 케인’이 미국서 흥행에 고전하게 된 주원인이라고 한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프랭크 모트(Frank Mott)는 소위 말하는 ‘황색언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❶ ‘사소한’ 뉴스를 대문짝만 한 글씨로 헤드라인에 올린다. 
❷ 제대로 된 기사와 엉터리 기사를 한 면에 같이 뒤섞어 실어서 엉터리 기사도 진짜 기사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❸ 사진이나 이미지를 남용한다.
❹ ‘관계자’라거나 A씨, B씨 등 유령인물을 내세운 ‘가짜’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❺검증되지 않은 소위 ‘전문가’의 ‘말씀’들을 동원한다.
❻ 화려한 총천연색 일요판을 제작한다.
❼ 스포츠, 연예의 비중을 높인다.
❽ 대기업이나 사회 체제를 무조건 ‘까대기’한다.


오손 웰스 감독을 분노케 했던 1900년대 미국 ‘황색언론’의 작태지만, 201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신문과 언론의 모습들이다. 너무도 익숙해서 우울하다. 수많은 인터넷 언론까지 가세해 증권가 ‘찌라시’와 ‘언론’의 구분까지 모호해지는 요즘이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기도 한다. 독자 하기도 피곤하고 지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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