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섭다고 장 아니 담그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동킥보드를 이용한 새로운 공유경제 서비스가 탄생했다. 소비자들의 인기를 모으며 빠르게 성장한 만큼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주州 도시들은 규제와 관련법을 빠르게 정비하면서 전동킥보드 사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구더기(부작용)가 무서워 장조차 못 담그고 있는 한국의 전동킥보드와 대조적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킥보드를 육성한 샌프란시스코의 공유경제 솔루션을 취재했다. 

미국에서 전동킥보드가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동킥보드 공유사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사진=라임 제공]
미국에서 전동킥보드가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동킥보드 공유사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사진=라임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의 도시들은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세계 1064개 도시 중 ‘교통 체증이 심한 도시 톱10’에 로스앤젤레스(1위)와 샌프란시스코(4위)가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인링스 자료). 이런 캘리포니아에서 최근 ‘전동킥보드’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는 도로(제한속도 40㎞/h 이하) 가장자리와 자전거도로(법적으로 저속자동차로 분류)로 주행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자 저렴한 가격으로 전동킥보드를 빌려주는 ‘버드’ ‘라임’ 등 전동킥보드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했다. 요금은 기본요금 1달러에 1분마다 15센트(160원)가 추가로 붙는다. 근거리 이동에 한해선 버스(2700원)나 택시(3900원·1㎞당 1900원)보다 저렴하다.

흥미로운 점은 전동킥보드를 주차하는 별도의 공간이나 매장이 없다는 것이다. 도심 곳곳에 놓여 있는 전동킥보드를 찾아 전용앱으로 인증하면 탈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엔 전동킥보드를 아무데나 세워 두면 된다. 이른바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이용자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9월 산타모니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버드’는 10개월 만에 미국 22개 도시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올해에만 2억6500만 달러(2973억원)에 이르는 투자금도 유치했다. 버드는 창업한 지 1년 만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스타트업) 타이틀을 목에 걸었다.

캘리포니아 사로잡은 전동킥보드

하지만 사업이 폭발적으로 커지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가장 심각한 건 전동킥보드 방치문제였다. 관련 스타트업들이 경쟁적으로 전동킥보드 수를 늘리면서 시내에 방치되는 전동킥보드가 늘어났다. “전동킥보드에 걸려 넘어졌다” “도로 미관을 해친다” 등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민원이 제기됐다.

현행법과도 마찰을 빚었다. 캘리포니아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이용자는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공유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즉흥적으로 전동킥보드를 타는 이용자들이 급증한 탓이었다

일부 도시는 전동킥보드 공유사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7월 베벌리힐스에선 6개월간 전동킥보드 이용 자체를 금지하는 조례안이 통과했다. 로스앤젤레스는 공유 사업을 금지하는 조례안을 발의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6월 전동킥보드 업체들에 영업중단 명령이 떨어졌다. 샌프란시스코 교통국이 스타트업의 전동킥보드 300여대를 압류하기도 했다. 강력한 규제에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도 위기를 맞는 듯했다.

그렇다고 당국이 규제만 한 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3월에 허가제로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을 운영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영업중단 명령을 내린 건 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를 위한 임시 조치였다. 이호근 대덕대(자동차학) 교수는 “버드가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관련법이 발의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전동킥보드 공유사업의 효용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법안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은 법안 통과 후 2년간 시범 운영한다. 교통국에서 발급하는 허가증을 가진 사업자만 사업을 할 수 있다. 허가증 1장당 전동킥보드는 최대 500대를 넘을 수 없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전동킥보드 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의무사항도 추가했다.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을 하려면 도로 유지보수 비용(1만 달러·1122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대신 보도나 공공도로에 전동킥보드를 주차할 수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혜택을 제공할 의무도 생겼다. 이미 전동킥보드 업체들은 저소득층에 기본요금 1달러를 면제해주고 있는데, 이를 법제화한 것이다.

기존 규제도 손을 봤다. 2월 캘리포니아 의회는 최고 속도가 32㎞/h를 넘지 않는 전동킥보드에 한해 헬멧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공유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이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사례는 공유 사업이 가진 효용성을 인정하고 관련 법을 적극 정비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규제 완화의 모범적인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전동킥보드가 이슈를 몰고 다니는 곳은 캘리포니아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전동킥보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있다. 관련 시장도 성장세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지난해 전동킥보드·전동휠 등의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 규모가 7만5000대라고 밝혔다. 2022년에는 20만~3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자의 55.3%는 ‘통근·통학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을 하기에 시장의 수요가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서울 도심에서도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공유 서비스는커녕 전동킥보드를 제대로 타기도 어렵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는다. 무엇보다 전동킥보드는 국내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없다. 한국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와 함께 ‘원동기장치자전거(원동기)’로 분류돼 있어서다. 원동기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

국내에서 전동킥보드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 전동킥보드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사진=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전동킥보드를 타기 위해선 원동기 면허증을 따고 원동기 등록도 마쳐야 한다. 현재 번호판이 없이 달리는 전동킥보드는 모두 법을 어기고 있다는 소리다. 정경옥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도로교통법의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분류하는 기준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라면서 “기존 교통수단과 같은 법을 적용하니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선 자전거도로 못 달려

국내에서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을 준비하는 업체 관계자는 한국의 도로교통법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전동기킥보드 관련법은 이용자가 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뒤에야 정비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스타트업 입장에선 그만큼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뒤늦게 법이 고쳐지고 나면 이미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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