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민 케인 ❹

영화 ‘시민 케인’에서 주인공은 임종을 앞두고 ‘로즈버드(Rosebudㆍ장미꽃봉오리)’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사람들은 미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며 권세를 누리던 언론 재벌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 ‘로즈버드’의 의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언론과 기자들까지 로즈버드’의 추적에 나선다.

내가 그저 한 인간으로 마지막 숨 쉴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될지 가끔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내가 그저 한 인간으로 마지막 숨 쉴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될지 가끔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는 ‘뉴욕 인콰이어러’지의 케인 회장이 자신의 대저택 재너두(Xanadu)의 침실에서 임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개 죽음을 앞두고 나사렛의 예수가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다 이뤄졌도다(Tetelestai)”는 임종사臨終辭를 남긴 것처럼 자신의 일생을 한마디로 집약하거나 혹은 그러하기를 요구받기도 한다. 세계 최강 미국을 쥐락펴락하며 살아왔던 당대의 거물 케인 회장의 그럴듯하거나 중대한 임종사도 당연히 기대될 만하다.

케인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며 ‘로즈버드’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스노 글로브(Snow glo be)’가 모든 힘이 빠져나간 케인의 손에서 풀려나 바닥에 떨어져 깨진다. ‘스노 글로브’는 흔들면 눈 내리는 마을 전경이 나타나는 흔한 주먹만한 유리공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던 케인이 남긴 마지막 한마디 ‘로즈버드’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한다. 언론과 기자들까지  ‘로즈버드’의 추적에 나선다. 톰슨 기자가 케인 주변의 숱한 인물들을 추적하고 탐문했지만 실패한다. 결국 ‘로즈버드’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은 채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고 만다.

케인의 대저택 재너두의 모든 집기들이 품목별로 명세서에 정리된다. 쓸데없는 ‘쓰레기’로 분류된 고인의 물건은 화로 속으로 던져진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 앵글은 화로 속에 던져져 타고 있는 조악한 썰매 하나를 비춘다. 그 썰매에 ‘로즈버드’라는 상표가 선명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 ‘로즈버드’는 케인이 8살 때 난폭한 아버지를 피해 좋은 교육을 받고자 남의 집으로 보내질 때까지 콜로라도 산골 마을에서 즐겨 타던 눈썰매였다. 자기를 데려가기 위해 산골 마을로 찾아온 ‘대처’라는 인물을 후려갈기고 도망쳤던 눈썰매이기도 했다.

케인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며 ‘로즈버드’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케인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며 ‘로즈버드’ 한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실 케인이 ‘로즈버드’를 중얼거린 적은 한번 더 있었다. 케인은 두번째 아내 수잔을 오페라 가수로 키우고 싶어 한다. 음악에 재능 없는 수잔을 오페라 가수로 만들겠다는 케인의 욕심은 재능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욕심과 다르지 않다. 못 견뎌 하던 수잔은 케인을 버리고 도망친다. 톰슨 기자가 취재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수잔이 떠난 날 케인은 빈방에서 옷가지와 집기들을 던지고 부수며 분노와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 하다 문득 ‘로즈버드’를 중얼거리며 차분하게 가라앉았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예수의 임종사 ‘Tetelestai’도 그 해석이 분분하다. ‘모두 이뤘다’로 해석되기도 하고 ‘모두 이뤄졌다’는 수동태로 해석되기도 한다. 혹은 ‘모두 끝났다(The game is over)’는 패배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 불분명한 한마디에 대한 해석의 방향에 따라 기독교의 본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

케인의 마지막 한마디 ‘로즈버드’ 역시 해석하기 어렵다.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권세를 누리며 살았지만 자신의 일생 중에서 가장 소중했던 때는 눈썰매를 타고 즐겁게 놀았던 8살 시절뿐이었다는 회한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안타까움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자신을 데려가려던 대처라는 인물을 눈썰매 ‘로즈버드’로 후려쳤던 그 순간만이 자신의 의지대로 항거했을 뿐 그 이후로는 시류에 따라 살았다는 한탄일 수도 있겠다. 또는 수잔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로즈버드’를 중얼거리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처럼,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세상사를 모두 내려놓는 임종사였을 수도 있다. 세상 모두가 궁금해 하고 톰슨 기자가 그토록 집요하게 추적했던 케인의 본모습과 본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예수는 ‘다 이루어졌다도(Tetelestai)’는 임종사를 남겼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예수는 ‘다 이루어졌다도(Tetelestai)’는 임종사를 남겼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로즈버드’의 의미가 그 어느 것이 됐든, 한 시절 미국을 호령했던 케인도 그저 ‘한 인간’이었을 뿐이란 건 분명하다. 아마도 오손 웰스 감독이 케인을 그저 ‘시민 케인’으로 명명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대단한 인물’들이 우리와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 ‘금수저ㆍ흙수저’ 논란도 뜨겁고 ‘갑질’ 논란도 뜨겁다. 그 분들의 임종사는 과연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들 모두 평생 기를 쓰고 쌓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케인의 ‘로즈버드’처럼 행복했던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자락을 붙들고 눈감을지도 모르겠다. 중세 수도사들의 인사말이었다는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처럼 내가 그저 한 인간으로 마지막 숨을 쉴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될지 가끔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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