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IT·MIT 함유된 ‘벽지지키미’
GS건설 ○○자이 현장 등서 유통
벽지지키미 수입제조원, 실체 없어
판매업체 B사, 관련 허가 안 받아

유독물질이 함유된 도배풀 방부제가 아무런 고지도 없이 건설현장에서 사용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독물질이 함유된 도배풀 방부제가 아무런 고지도 없이 건설현장에서 사용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화학성 유독물질이 함유된 ‘도배풀 방부제’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유통됐다. 문제의 제품은 벽지 도배풀에 넣는 방부제 ‘벽지지키미’로, 2011년 가습기 사태를 일으킨 CMIT(1.12%)와  MIT(0.38%)가 함유돼 있다. 더 큰 문제점은 ‘벽지지키미’의 제조업체는 실체가 없고, 판매업체는 아무런 허가절차도 밟지 않았다는 점이다. GS건설 등 관련 업체들은 “벽지지키미를 본 적도, 사용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지만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유독물질 도배풀 방부제’의 진실을 단독 취재했다.

유독물질(CMIT·MIT)이 함유된 ‘도배풀 첨가제(방부제)’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버젓이 사용된 것으로 더스쿠프(The SCOOP) 취재결과 밝혀졌다. 이 제품의 유통이 확인된 곳은 GS건설 ○○자이 현장, ㈜한양 ○○수자인 현장 등이다. 문제의 제품은 도배풀 방부제 ‘벽지지키미(1통 용량 900mL)’로, 벽지에 바른 도배풀이 썩는 걸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겉으론 평범한 방부제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벽지지키미에는 화학성 유독물질 CMIT(1.12%)와 MIT(0.38%)가 함유돼 있다. CMIT·MIT는 1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2011년)’의 핵심 성분이다. 함유량 1.0%가 각각 넘으면 유독물질로 분류된다(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2012년 정부가 발간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사건 백서」에 담긴 CMIT·MIT의 유해성을 살펴보자. “두 물질은 급성독성이 상당히 높다. 특히 피부 및 안구 자극성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벽지지키미의 성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기록돼 있는 부작용도 비슷하다. “피부에 자극을 일으킴. 알레르기 반응, 화상을 일으킬 수 있음.” [※참고: MSDS는 화학물질의 성분, 안전·보건상의 취급주의 사항, 건강 유해성 등을 설명한 자료다.] 

GS건설 ○○자이 현장에 널려 있는 벽지지키미(사진 위). 그럼에도 GS건설은 “우리 현장에선 벽지지키미란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거짓 해명을 했다. GS건설 ○○자이에 차려진 도배풀방에서 도배풀을 만드는 모습(사진 아래). 뒤쪽에 사용된 벽지지키미가 보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GS건설 ○○자이 현장에 널려 있는 벽지지키미(사진 위). 그럼에도 GS건설은 “우리 현장에선 벽지지키미란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거짓 해명을 했다. GS건설 ○○자이에 차려진 도배풀방에서 도배풀을 만드는 모습(사진 아래). 뒤쪽에 사용된 벽지지키미가 보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물론 CMIT·MIT가 무조건 ‘유해반응’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일부 전문가는 “가습기처럼 스프레이 형태로 뿌리지 않는다면 두 물질의 유해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수용하더라도 벽지지키미에 숨은 문제는 숱하다. 

■ 유령 수입제조원 = 무엇보다 벽지지키미의 제조업체가 불분명하다. 벽지지키미의 겉면에 적혀 있는 ‘(수입)제조업체 A사’는 실체가 불투명한 데다 존속기업도 아니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의 한 관계자는 “A사는 오래 전에 폐업한 회사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벽지지키미의 ‘판매업체 B사’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B사는 화학업체로부터 받은 유독물질을 ‘소분小分(작게 나눔)’해 900mL 용량의 벽지지키미를 만든 곳이다. 화관법 상 ‘소분작업’을 하려면 영업·판매허가를 받아야 한다. B사는 어떤 허가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벽지지키미의 제조업체 A사는 유령기업, 판매업체 B사는 무허가기업이라는 얘기다.[※ 근거 :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이 윤호중 더불어민주당(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에게 2018년 9월 5일 제출한 자료.] 

■ 불법에 속임수까지 = 판매업체 B사는 벽지지키미에 반드시 표기해야 할 ‘법적 경고표시’도 누락했다. 유독물질이 함유된 제품은 화관법에 따라 용기나 포장에 ‘그림문자(유해성 내용)’ ‘신호어(위험·경고표시)’ ‘유해·위험문구’ 등을 의무적으로 넣어야 한다. 하지만 벽지지키미의 겉면엔 화관법이 정한 ‘경고표시’가 전혀 없다. 판매업체 B사는 되레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 검증’이라는 허위광고문구를 표기해 벽지지키미를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제품으로 둔갑시켰다. 

B사 측은 “그게 문제라면 문구를 바꾸면 되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은 2010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하 KCL)으로 명칭을 바꿨다. 8년 전 변경된 명칭을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광고문구’로 활용한 셈이다. 

명칭을 착각했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벽지지키미는 KCL의 시험과정을 거친 사실이 없다. KCL이 유독물질제품을 검증해주는 기관도 아니다. KCL 관계자는 “우리 연구원은 특정 제품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성적서 형태로 제공하는 기관”이라면서 “검증은 제품을 보증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리 연구원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 유해성의 무서운 전이 = 유령 제조업체, 무허가 판매업체 등에서 기인한 문제들은 ‘벽지시공업체 C사’의 안전 리스크로 전이轉移됐다. C사는 벽지지키미에 유독물질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도배 노동자들에게 ‘유해성’을 알리지 않았고,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다. ‘안전사각지대’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도배노동자는 화상을 입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현장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안전장치를 뒀다”면서 “유해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취급하는 사업자는 제품 용기에 위험성 정보를 표기해야 하고, 노동자에게 이를 교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아무런 고지를 받지 못한 건 주민(입주예정자)도 마찬가지다. ‘친환경 벽지를 사용했다’면서 홍보에 열을 올린 건설사는 있었지만 ‘유독물질이 함유된 도배풀 방부제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린 곳은 없었다.  

모 건설사의 현장에서 포착된 벽지지키미(사진 위). 유독물질을 함유한 도배풀 방부제가 생각보다 더 많이 유통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벽지지키미에는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 검증’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8년 전 명칭을 바꾼 이 연구원은 검증을 하는 곳이 아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모 건설사의 현장에서 포착된 벽지지키미(사진 위). 유독물질을 함유한 도배풀 방부제가 생각보다 더 많이 유통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벽지지키미에는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 검증’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8년 전 명칭을 바꾼 이 연구원은 검증을 하는 곳이 아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유독물질과 모럴해저드 = 무허가 유독물질 방부제 ‘벽지지키미’가 법망을 우롱했음에도 관련 업체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판매업체 B사는 “유독물질이 들어간 방부제 따윈 없다”면서 발뺌했다. 벽지시공업체 C사는 “벽지지키미라는 제품을 본 적도 없다”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GS건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C사가 사용한 건 ‘팡이○○’라는 안전한 제품이다”면서 “벽지지키미란 제품은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이 주장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는 GS건설 ○○자이 현장에 차려진 ‘도배풀방(벽지에 도배풀을 바르는 공간)’에서 벽지지키미가 사용된 정황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팡이○○’만 사용했다고 주장한다면, 누군가 자재수불장을 조작했거나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또 있다. 시공순위 5위(2018년 기준) GS건설의 모럴해저드다. 벽지지키미가 유통된 단지들의 평균 분양가는 3.3㎡(약 1평)당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건설사들은 자사 브랜드를 보란듯이 내걸었고, 입주예정자들은 그 이름값을 믿고 거액의 분양금을 냈다. 

더스쿠프가 윤호중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벽지지키미 관련 자료. 벽지지키미의 판매업체 B사는 어떤 허가절차도 받지 않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더스쿠프가 윤호중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벽지지키미 관련 자료. 벽지지키미의 판매업체 B사는 어떤 허가절차도 받지 않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럼에도 GS건설 측은 “벽지시공업체가 사용한 제품까지 시공사가 알아야 하느냐”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벽지지키미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빠르게 조치를 취한 건설사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한양 관계자는 “지난 7월 벽지지키미를 넣은 도배풀로 벽지시공을 진행했는데, 리스크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8월 이후) 다른 제품으로 교체했다”며 “7월에 벽지시공을 했던 단지는 다른 제품으로 재작업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 환경부의 이중잣대 = GS건설을 비롯한 업체들만 시치미를 뗀 건 아니다. 주무관청인 환경부도 이중잣대를 적용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환경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도배풀 방부제인 벽지지키미는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생활화학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부가 관리하는 위해우려제품이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다루는 제품이라면 ‘산업안전보건법’을 근거로 관리감독해야 한다.” 쉽게 말해, 도배풀 방부제는 업체에 납품되는 B2B(기업간 거래) 제품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원한 도배노동자는 환경부의 이중잣대에 의문을 제기했다. “벽지를 한번이라도 발라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도배풀은 벽지 뒷면뿐만 아니라 앞면에도 묻게 마련이다. 상상해보자. 이 벽지를 아기가 손으로 만졌다거나 혀로 핥아도 B2B라고 주장할텐가.”

유독물질이 함유된 ‘도배풀 방부제’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버젓이 사용됐지만 현장 노동자와 입주민들은 아무런 고지도 받지 못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독물질이 함유된 ‘도배풀 방부제’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버젓이 사용됐지만 현장 노동자와 입주민들은 아무런 고지도 받지 못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벽지지키미란 제품을 사용한 적 없다”면서 거세게 반박하던 업체들은 취재 막바지에 “(한번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 제품을 썼다 한들 유해한 건 아니지 않은가”라면서 입장을 살짝 바꿨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선후先後가 바뀌었다. ‘유해성이 없다’는 주장을 펴기 전에 ▲유령 제조원의 실체 ▲유독물질이 함유된 무허가 제품을 사용한 이유와 근거 ▲도배노동자와 입주민에게 유해성을 고지하지 않은 이유 ▲벽지지키미의 존재를 부정한 이유를 해명하는 게 먼저다. 역설적이지만 이 해명에 문제의 답이 있다. 
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건설사 취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환경부 취재 =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벽지업계 취재 =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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