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특약] SPA 브랜드, 너희가 예술을 아느냐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특약] SPA 브랜드, 너희가 예술을 아느냐
  • 전재훈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
  • 호수 305
  • 승인 2018.09.13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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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패션

패션쇼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고고한 모델들을 보면, 패션은 예술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입고 접하는 옷들은 예술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 SPA 브랜드가 범람하는 이 시대, 정말 패션은 예술일까.

“패션은 예술인가”란 질문엔 섣불리 답을 내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패션은 예술인가”란 질문엔 섣불리 답을 내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패션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강의할 때 자주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학생들은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듯 고민에 빠진 뒤, 나름의 의견을 펼친다. 흥미로운 건 수많은 주장이 쏟아지는 가운데 명쾌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패션과 예술을 두고 학생들이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어서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한 첫번째 질문.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인가?” 떠오르는 장르는 많다. 회화ㆍ조각ㆍ건축ㆍ시ㆍ무용ㆍ음악 등 순수예술 영역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어쩐지 고상하고 품격이 있다. 여기에 패션이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예술의 기원을 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예술(Art)’은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이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뜻했다. 이 시기 예술은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수공업 기술까지 끌어안고 있었다. 범위가 좁혀지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 시기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진행되던 순수예술이 칭송을 받았고, 이런 경향은 18세기 ‘유미주의(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문예 사조)’ 사조와 맞물리면서 극대화됐다. 예술은 점점 특정 분야의 전유물로 굳어지는 듯했다. 

변곡점은 영국의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가 ‘미술공예운동’을 벌인 19세기 후반에 나타났다. 이 운동은 “인간이 컨베이어벨트로 대체되는 산업혁명 시대에선 생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릴 게 뻔하다”는 문제제기로 시작했다. 과거 수공업기술과 장인정신을 부활시켜 가구ㆍ벽지ㆍ커튼 등 생활 속의 공예품을 직접 손으로 제작하자는 거다.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요 철학이었다. ‘옷을 만드는 일’을 윌리엄 모리스의 개념에 적용하면, 패션은 예술에 가까워 보인다.   

이제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패션은 무엇인가?” 떠오르는 용어는 숱하게 많다. 옷ㆍ의복ㆍ피복ㆍ복식ㆍ장식 등. 하지만 국어사전에 등재된 ‘패션(Fashion)’의 뜻은 조금 다르다.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이나 두발의 일정한 형식.” 패션이 갖는 가장 중요한 속성은 변화다. 단순히 의식주 가운데 ‘의’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처음 질문 “패션은 예술인가?”의 답변이 나올 차례다. 하지만 필자의 답변 역시 애매하다. “패션의 개념을 현대사회의 패션에 국한시키는지, 아니면 과거 복식의 개념으로까지 확장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예술 범위 좁힌 르네상스 시대

이유가 있다. 일단 위에 살펴봤던 ‘예술’과 ‘패션’ 개념을 살펴보면, 패션은 예술이 맞다. 과거 예술을 논했던 많은 학자들이 공통으로 언급한 특성들이 있는데, 패션의 요소는 여기에 모두 부합한다. 

예술의 첫번째 특징은 ‘모든 예술 작품은 인간 행위에 의한 상징적인 산물’이란 것이다. 패션 역시 ‘복식’이란 형태를 빌려 여러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출한다. 두번째는 ‘일정한 형식과 원리 아래 창조된다’는 건데, 옷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은 곧 표현이다’는 세번째 특징은 말할 것도 없다. 복식은 인간의 미적 표현을 위해 사용돼 왔다. 네번째 특징은 ‘예술은 인간행위의 창조물’이란 건데, 패션은 늘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조성에 기반을 둔다.

그럼에도 “패션은 예술이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이유는, 현대 패션은 예전의 복식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어서다. 현대의 패션 브랜드는 20세기 후반 대량생산 시스템의 구축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이들 브랜드는 많은 기성복들이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트렌디한 제품을 재빠르게 선보였다.
 

특히 SPA 브랜드의 성장세가 가팔랐다. 과거 의류업체들은 봄ㆍ여름, 가을ㆍ겨울 두 차례 열리는 전 세계 패션쇼에 자사 디자이너들을 보내 소비자 트렌드를 미리 예측하고 9개월에서 1년에 걸쳐 제작한 옷을 이듬해 시장에 내놨다. 그러나 SPA 브랜드들은 최신 유행을 담은 옷을 일주일에 몇벌씩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유는 ‘자사의 이윤 추구’다.

범람하는 SPA 브랜드

전세계에 판로를 갖고 있는 이들의 제품을 두고 ‘예술’이라고 정의하기 머뭇거려 지는 이유다. 모든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예술이라고 할 수 없어서다. 시대를 담고, 창의적인 시각이 담긴 패션 제품이 예술에 더 가까워 보인다. 따라서 “패션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엔 정답도, 오답도 없다. 판단은 각자의 해석에 맡기고자 한다. 
전재훈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kingkem2@snu.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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