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줄어드는 시중은행 창구
시중은행 일자리 창출 지속가능할까

국내 시중은행들이 올 하반기에 채용 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고용 쇼크’가 발생한 상황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지만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이번 채용규모 확대는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을 압박해 얻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은행권 안팎에서 “옆구리 찔러 늘어난 고용 효과가 지속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은행권 채용 확대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업계가 하반기 채용을 크게 늘렸다.[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업계가 하반기 채용을 크게 늘렸다.[사진=연합뉴스]

“일자리 창출 확대를 위해 다른 산업에 비해 고용유발 효과가 큰 금융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 박람회’에서 꺼낸 말이다. 금융권이 적극적으로 나서 일자리를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은행권에는 희망퇴직을 활용해 일자리를 늘리라고 독려했다.

5월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퇴직금을 많이 줘서 희망퇴직을 유도하면 10명 퇴직할 때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5월 28일 시중 은행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희망퇴직 활성화를 주문했다. 청년층 일자리를 위해 희망퇴직을 잘하는 은행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이유 중 하나도 핀테크 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층 일자리를 늘리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통했는지 은행권의 올 하반기 채용 규모는 크게 늘었다. 국내은행(외국계 제외)의 하반기 공채 규모는 3800명 수준으로 지난해 2888명 대비 1000명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250명을 채용했던 KEB하나은행은 채용 규모를 두배인 500명으로 늘렸다. KB국민은행도 615명을 더 뽑을 예정이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도 각각 510명, 21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채용 규모를 크게 늘린 셈이다.

은행권의 청년 일자리 창출에 나선 건 반가운 일이다. 은행권은 채용을 늘리기 좋은 구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국내은행(지방은행·특수은행 포함)의 국내 지점은 6784개다. 지점당 인원을 2명만 늘려도 1만3000명가량을 채용할 수 있다. 인력 규모도 크다. 국내은행의 직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1만1173명에 이른다. 생명보험(2만4800명), 손해보험(3만1938명), 증권사(3만4554명)의 3~4배 규모다. 인력 구조도 채용에 유리하다. 대부분의 일반직원보다 중간관리자 비중이 높은 ‘항아리형’ 인력 구조를 갖고 있다.

희망퇴직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인력 충원 여력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8월 초 준정년 특별퇴직을 통해 274명을 내보냈다. KB국민은행도 올해 초 임금피크제 대상자 400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갔다. 그럼에도 고용을 늘린 은행권의 선택엔 많은 의문이 뒤따른다. “(금융당국이) 옆구리를 찔러 일자리를 늘렸으니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겠는가”라는 회의론도 많다. 근거가 있다.


일회성 행사로 그칠 수도…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은행 창구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채용을 마냥 늘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금융서비스 전달 채널별 업무처리 비중’에 따르면 올 3월 은행 창구를 통한 거래 비중은 9.5%로 전년(11.3%) 대비 0.8%포인트 하락했다. 창구 비중이 10.0% 아래로 떨어진 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은행 업무를 보는 고객 10명 중 은행 창구를 찾는 사람이 1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매년 200~400명가량 발생한다”며 “단순히 계산하면 희망퇴직 인원만큼 채용인원을 늘리는 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채용은 업무의 효율성, 산업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은행업 환경이 바뀌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채용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을 압박해 만든 일자리가 고용침체 해소에 도움이 될 지도 의문이다. 통계청의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금융·보험업 취업자 수는 85만1000명이다. 7월 취업자 수 2708만3000명에서 금융·보험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1%에 불과하다. 은행권이 고용을 늘린다고 고용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일자리 창출 기여도도 높지 않다. 금융연구원의 ‘금융인력 기초통계 분석 및 수급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보험업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는 -0.07%를 기록했다. 수치가 가장 높았던 2011년의 기여도도 0.18%에 불과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활성화의 효과도 확실하지 않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고용은 크게 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242명이었던 케이뱅크의 임직원 수는 올 3월 266명으로 24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카카오뱅크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9월 329명이었던 임직원 수는 389명(올 3월)으로 60명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가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고용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허구에 가깝다”고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핀테크 신입보다 경력 선호

게다가 핀테크 산업의 특성상 신입보다는 경력직 채용을 더 선호한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에 소속돼 있는 115개 핀테크 회사의 매출액 규모별 신입·경력 신규 채용 예정 비중을 살펴보면 100억원 이상 기업의 경우 경력직 채용 예정 비중이 90%를 넘었다. 경력직 채용 예정 비중이 가장 낮은 매출액 1억~10억원 미만 기업도 68.5%에 달했다.

시중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나는 것보다는 채용을 늘리는 게 낫다”라면서도 “올해는 은행의 사정이 좋아 다행이지만 내년 채용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경제학) 교수는 “기업을 압박해 늘린 고용이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고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게 아니라 혁신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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