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복지사업의 불편한 민낯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벌써부터 겨울 걱정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에너지빈곤층’이다. 그들에겐 여전히 여름보다 겨울이 더 혹독하다. 추워서가 아니다. 비용이 더 들어가는데, 그 돈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에너지빈곤층이 누구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에너지복지사업에 투입하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에너지복지사업의 불편한 민낯을 취재했다. 

에너지빈곤층은 우리 주변에 흔하지만, 통계로는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에너지빈곤층은 우리 주변에 흔하지만, 통계로는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저소득층에게 올여름은 공포였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에어컨은 사치였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 6월말 실시한 여름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521가구 대상)에 따르면 에어컨이 없는 집이 313가구(60.1%)에 달했다.

설령 에어컨이 있다고 해도 전기요금이 무서워 틀지 못했다. 대부분은 선풍기에 의지했다. 선풍기도 없이 올여름을 보낸 이들은 521가구 중 6가구나 됐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 빈곤해서 죽는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정부가 에너지빈곤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그들은 한숨 돌렸을까. 아니다. 그들은 이제 곧 다가올 겨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매년 130여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48명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들에게 겨울 한파는 폭염보다 더 무서운 계절이다. 

겨울철(12~1월) 전력사용량은 여름철(7~8월)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더구나 겨울엔 전력 외에도 온수 사용, 난로와 같은 난방기구 사용까지 더해져 여름보다 더 많은 에너지비용이 필요하다. 역대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해 다양한 에너지 복지사업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에너지 복지사업인 ‘에너지효율개선사업’과 ‘에너지바우처제도’에 배정한 올해 예산만 해도 각각 638억원, 832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정부가 에너지 복지사업에 재정을 투입해도 에너지빈곤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에너지빈곤층을 추정하는 기준은 4가지다. ▲가구 경상소득 대비 연료비 지출액 비율이 10% 이상일 때(연료비 비율 기준) ▲가구원수별 평균 연료비의 70% 이하를 연료비로 쓸 때(최소에너지 기준) ▲가구 경상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40% 이하이면서 노인이나 영유아가 포함됐을 때(에너지바우처 기준) ▲가구 경상소득에서 연료비 지출액을 뺀 비용이 최저생계비에서 최소광열비를 뺀 비용보다 적을 때(부담가능비용 기준) 등이다. 

‘에너지빈곤층’은 과연 누구인가 

물론 어떤 기준을 쓰느냐에 따라 에너지빈곤층의 비율은 달라진다. 중요한 건 4가지 중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에너지빈곤층 비율이 의미 있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에너지복지사업에 허점이 있다는 방증이다[※참고: 추정 기준에 따른 연도별 에너지빈곤층 비율 참조]. 


 

■통계가 없으니… = 원인이 뭘까. 먼저 통계의 부재다. 일반적으로는 ‘에너지에 쓰는 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빈곤층으로 본다. 하지만 이럴 경우, 소득이 적어 에너지비용을 극도로 줄인 저소득층은 에너지빈곤층에서 제외된다. 반면 소득도 많고 가구원 수도 많아 에너지비용이 높은 가구는 에너지빈곤층에 포함된다. 또한 에너지효율이 떨어지는 오래된 집은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런데 이 집이 강남 재개발지역의 고가아파트라면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집주인이 에너지빈곤층에 속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서 설명한 에너지빈곤층 추정 기준은 이와 비슷한 오류들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빈곤층의 통계가 올바르게 잡힐 리 없다. 의미 있는 통계자료도 없다. 정부는 에너지빈곤층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에너지복지사업을 펼친 셈이다. 좀 더 정확한 추정 방법이 필요한데, 개선된 건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박광수 선임연구위원은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에너지빈곤층의 명확한 정의와 올바른 비율은 상당히 중요한 척도”라면서 “2016년에 이 문제를 보고서로 제기한 바 있지만 지금껏 별다른 논의는 없었다”고 꼬집었다.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니… = 기본이 안 잡혀 있으니 에너지복지사업에 투입되는 예산도 정권별로 들쑥날쑥하다. 일례로 에너지복지사업 수혜자들로부터 나름 좋은 평가를 받는 에너지바우처제도를 보자. 이는 저소득층 가운데 추위에 취약한 만 65세 이상 노인, 만 6세 미만 영유아, 1~6급 장애인, 임산부가 포함된 가구에 일종의 에너지쿠폰을 지급해 난방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2015년 12월 시작됐다. 하지만 제도를 운영하자마자 예산이 첫해 1058억원, 2016년 665억원, 2017년 520억원으로 줄었다. 올해 잡힌 예산은 832억원이다. 에너지바우처제도가 에너지빈곤층을 위한 장기대책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으니… = 대상이 정확하지 않으니, 정책의 홍보성과도 부진하다. 실제로 에너지빈곤층에 해당하는 이들은 어떤 에너지복지사업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지난해 12월 에너지시민연대가 에너지빈곤층 추정 가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38.7%에 불과했다. 수혜자는 그보다 더 낮은 16.8%였다. 
 

■허점투성이 에너지복지사업 = 당연히 에너지복지사업에도 문제가 많다.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2016년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은 229개 지자체가 총 5만7131가구를 추천했는데, 실제 지원은 절반 수준인 2만9468가구에 그쳤다. 2015년 에너지바우처 미사용률은 에너지빈곤층이 많은 지역에서 보급률이 더 떨어졌다. 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에너지복지사업, 방향 설정부터 해야 

사업 수혜대상 선정에도 한계가 있다. 현행 에너지복지사업의 적용대상은 주로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자나 차상위계층 등에 한해 이뤄지는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에너지빈곤층도 꽤 많다. 생활은 궁핍하지만 서류상으로는 부양가족이 있거나 자녀가 있어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명확한 개념 설정과 이를 토대로 한 정책 수립, 현실적 변수 반영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복지정책은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사회 전반적인 구조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놓지 않으면 정권에 따라 방향성을 잃고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진짜 에너지빈곤층을 위한다면 에너지복지사업 종류와 예산만을 늘릴 게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정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