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비밀의 ‘bada’

▲ 삼성전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MWC 2010’행사에서 독자 모바일 플랫폼 바다를 탑재한 웨이브를 처음 선보였다. <사진: 뉴시스>
삼성전자의 도약이 불완전하다는 의견이 많다. 파죽지세의 근원이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있는 게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자체 OS 파워가 약한 삼성전자에 이런 지적은 생체기에 소금을 뿌렸을 때처럼 아플 수밖에 없다.

바다 OS가 주목받은 것은 지난해 8월 구글이 모토롤라를 125억 달러(약 13조5000억원)에 인수하면서다. 구글은 제조사를 삼키고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애플과 유사한 형태의 경영 구도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진 IT생태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세계적 휴대전화 제조사가 소프트웨어 기업의 하청업체로 추락하는 모습은 삼성전자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특히 삼성전자는 OS의 85%를 안드로이드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소프트웨어에 취약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최신 버전의 사용권을 내부 제조사에만 우선적으로 허용하거나 갑작스럽게 안드로이드의 유료사용을 결정하는 등 최악의 상황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를 우려하는 눈길이 OS 바다로 쏠렸던 이유다.

 
하지만 바다 개발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러시아의 IT전문 블로거인 엘다 뮤타진은 올 4월 “삼성전자가 자체 플랫폼, 바다 OS를 2013년 상반기까지만 유지하고 개발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며 “판매된 단말기의 지원도 점차 감소할 것이다”고 예견했다.

트위터에 게재 된 가벼운 멘션이었지만 바다의 근황을 궁금해 하던 유저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특히 지난해 9월 바다 2.0 버전 발표 후 1년 가까이 업데이트 소식이 없어 뮤타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삼성전자의 반쪽짜리 도약

 
바다 OS 개발 중단설에 힘을 실어준 사건은 올 1월 발생했다. 삼성전자 강태진 콘텐츠 기획팀 전무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2’에 참가해 “바다 OS와 타이젠 OS를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한 것이다. 강 전무의 이 말은 곧 바다 OS의 개발이 중단됨을 암시했다.

삼성전자는 강 전무의 발언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홍보실 관계자는 “강 전무는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며 “외신의 오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브스를 포함한 외신들은 “We have an effort that will merge bada and Tizen”이라는 강 전무의 발언을 정확히 실었다. 강 전무는 또한 “이 작업이 언제 마무리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언론에는 통합 작업 이후의 일정까지 상세히 보도됐다. 강 전무는 “두 OS의 통합 작업이 완료되면 바다와 타이젠 개발자를 위한 개발자 도구가 제공될 것이다”며 “바다에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하게 된다면 타이젠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까지 상세하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젠은 삼성전자가 바다 OS 개발 외에 추가적으로 참여한 OS 개발 프로젝트다. 타이젠 프로젝트는 인텔과 삼성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리눅스 재단도 개발에 참여했다.

스마트폰에 최적화 된 구글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타이젠은 스마트폰•넷북•가전•스마트TV 등 다양한 디바이스에 탑재가 가능하다.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가전을 포함한 멀티 디바이스를 생산하는 삼성에게는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웬만한 디지털 기기에는 모두 OS가 탑재될 것”이라며 “차세대 웹 표준인 HTML5를 기반으로 하는 타이젠이 그 시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국내에서 선보인 바다폰‘웨이브2’모델의 광고 모습.
웹기반의 OS 타이젠이 성공한다면 다양한 기기를 제조하는 삼성으로선 절대적인 패권을 쥘 수 있는 기회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타이젠 개발로 무게 중심을 옮겨 바다 개발을 놓아 버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다 OS가 탑재된 웨이브폰(일명 바다폰)을 구매한 전 세계 384만명의 사용자는 고려하지 않는 처사가 될 수 있어서다.

바다를 오픈소스로 개방한 시기도 바다폰 사용자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타이젠 프로젝트 참여 시기와 바다의 오픈소스화 시기가 우연찮게 맞아 떨어져 빈축을 샀다. 자체적으로 바다를 개발하기에 한계를 느끼고 놔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마땅한 수익구조도 없으면서 오픈소스로의 개방은 안이한 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트레피스는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오픈소스 정책을 취한 이유는 되도록 많은 모바일 기기가 이를 사용함으로서 주 수입원인 검색 광고 시장에서 매출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며 “하지만 삼성전자는 매출을 올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바다의 공개 추진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내주고 수수료 없이도 개발자가 앱을 팔 수 있도록 했다. 그 대신 광고 수익을 냈다. 실제 하루에 개통되는 안드로이드 기반 모바일 기기 대수는 85만대에 이르고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1억3000만명에 달한다. 올해는 1조3000억원 이상의 광고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바다는 상황이 다르다. 바다를 오픈소스로 개방해도 이를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얻기 힘들다.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바다 OS의 기술력 자체는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문제는 플랫폼이다.

 
사람과 비즈니스가 몰리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토대로 플랫폼은 역에 비유된다. 서울역처럼 사람이 몰리고 상권도 성행해야 안드로이드와 같은 메인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메인 플랫폼이 돼야 오픈소스 효과도 톡톡히 난다. 바다는 마치 지방 외딴곳에 지어진 호화로운 기차역과 같다. 시설만 보고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애플의 iOS를 제외한 거의 모든 OS 플랫폼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자체 OS인 바다를 비롯해 구글의 안드로이드, MS의 윈도, 인텔과의 타이젠까지 무려 4개의 플랫폼을 지원한다.

 
OS 플랫폼이 늘어날수록 유지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플랫폼에 따른 개발자 확보가 필요하고, 운영체제 사용 시 지불해야하는 로열티도 문제다. 업그레이드 버전이 출시되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 비용도 추가된다.

무엇보다 문어발식 멀티 OS 전략의 가장 큰 리스크는 개발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앱 개발자는 “바다 OS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앱 개발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라며 “이런 멀티 OS 전략은 개발자에게 삼성전자가 바다에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바다가 단지 구글과의 협상 수단이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지방의 호화로운 기차역 ‘바다’

그는 “바다에 전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그 분야에 사활을 걸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돼야 개발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의 모호한 언론 대응도 의심쩍다. 국내 IT일간지 디지털타임즈는 최근 “삼성전자는 최근 자체모바일 운영체제인 바다 개발인력을 대거 DMC부문 소프트웨어 센터로 배치하며 타이젠 개발 임무로 전환했다”며 “바다 개발인력은 관리 등을 위한 핵심인력만 남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집중 보도했는데 이에 대한 반박을 하지 않았다.

이 기사에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바다와 타이젠의 통합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기존 바다 개발인력의 대다수가 타이젠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사실상 바다 개발을 접는다는 보도에 들고 일어나지 않은 삼성전자의 태도가 미심쩍다.

삼성전자 측은 “바다 OS는 활발히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개발을 접을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 인력 현황, 바다 버전 업그레이드 예상 일정 등의 질문에 대해서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바다의 미래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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