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민 케인 ❺

케인은 판매 부수를 늘리려고 선정적 기사들을 쏟아낸다. ‘황색언론’의 전형이다. 본래 목적이었던 ‘언론 창달’은 사라지고 부수 확장이라는 수단이 목적이 돼버린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며 ‘돈’은 하나의 수단이라 여기면서도, 결국 돈을 위해 가족과 행복 모두를 희생하는 현대인들의 가치 전도顚倒 현상을 케인이 보여준다.

돈을 위해 가족의 행복 모두를 희생하는 건 현대인의 전형적인 ‘가치 전도 현상’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돈을 위해 가족의 행복 모두를 희생하는 건 현대인의 전형적인 ‘가치 전도 현상’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케인은 콜로라도 산간 지방에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대개 그러하듯 그 역시 비록 가난하지만 공기 좋고 물 맑은 콜로라도 산간에서 눈썰매를 타며 행복해 한다. 그의 인생의 변곡점은 8살 되던 해, 아무짝에도 쓸모 없던 부모의 땅에서 금광이 발견된 이후였다. 그의 부모는 돈벼락을 맞지만 정작 케인은 어린 나이에 낯선 집, 낯선 곳으로 강제유학을 당하는 ‘날벼락’을 맞는다. 그를 데리러 온 점잖은 신사를 타고 놀던 눈썰매로 후려갈기고 튀어보지만 8살짜리에겐 ‘뛰어봤자 벼룩’이었다. 결국 케인은 대도시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돈벼락 덕분에 대도시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성장한 케인은 뜻한 바 있어 약관 25세에 신문사를 인수해 언론사업에 뛰어든다. 물론 금광 덕분이다. 사실 케인의 성취는 ‘자수성가’형이라기보다는 졸부 2세에 가깝다. 케인이 언론에 뜻을 품었던 것은 나름대로 당시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서 ‘신흥국’ 미국의 장래,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과 ‘삶’의 현실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차츰 ‘가치의 전도顚倒’현상이 발생한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이다.

케인은 ‘뉴욕 인콰이어러’지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부수部數 경쟁에 나선다. 판매 부수가 많을수록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영향력이 커져야 ‘언론 창달’의 꿈도 펼칠 수 있다. 신문 부수 증대는 ‘언론 창달’이라는 궁극적 목적의 수단이자 전제조건이 된다. 케인은 판매 부수 증대를 위해 선정적 기사들을 쏟아낸다.

그의 본래 목적이었던 ‘언론창달’은 점차 자리를 잃고 부수 확장이라는 수단이 곧 목적이 돼버린다. 전형적인 ‘황색언론(Yel low Journalism)’의 화신化身이 된다. 부수 증대에 따른 영향력과 그에 수반되는 권력과 부의 단맛에 빠져든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행복’일 터이고, 돈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겠지만 돈을 위해 가족과 건강, 행복 모두를 희생하는 현대인들의 가치전도 현상을 케인이 보여준다.

어릴적 가난했던 케인은 부모님이 맞은 돈벼락 덕분에 ‘졸부 2세’가 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릴적 가난했던 케인은 부모님이 맞은 돈벼락 덕분에 ‘졸부 2세’가 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콜로라도 산골 마을에서 눈썰매 타며 행복했던 케인, 언론 창달의 꿈을 꾸던 풋풋한 청년 케인은 사라지고 권력과 돈에 취한 거대 괴물 케인만 남는다. ‘시민 케인’의 감독과 주연을 맡고 각본까지 직접 쓴 오손 웰스가 주인공에게 ‘케인’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이유를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창세기에 아담의 아들이자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기록되는 ‘케인(Cain)’에서 따온 듯싶다.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다. 당연히 ‘케인’이라는 이름은 악과 탐욕의 상징이 된다. 창세기의 ‘카인’이 오손 웰스의 ‘케인’으로 부활한다.

괴테의 「파우스트(Faust)」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위험한 계약을 맺는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도움으로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지만 공짜는 없다. 그 대가로 때가 되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내줘야 한다. 파우스트는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도다’고 말할 때 자신을 결박해서 지옥으로 데려가도 좋다”고 계약한다. 그 최고의 순간을 맛볼 때까지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노예가 돼야 한다.

파우스트가 느낀 ‘최고의 순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을 결심한 순간이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파우스트가 느낀 ‘최고의 순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을 결심한 순간이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그 순간을 체험한 이후에는 반대로 파우스트가 영원히 메피스토펠레스의 노예가 된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파우스트는 순결한 그레첸과 사랑의 기쁨을 맛보고, 미美의 상징인 트로이의 헬렌에게서 자식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파우스트가 ‘최고의 순간’을 느낀 것은 사랑도 아니고, 최고의 아름다움도 아니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탐욕이 아닌 ‘이웃’을 위해 간척 사업을 이룩한 후에 만족한 늙은 파우스트는 비로소 그 순간을 향해 외친다. “멈추어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도다.” 약속대로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거두려는 순간, 신이 그의 손에서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원한다.

어떤 악마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케인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떠난다. 으리으리한 대저택 침상에서 ‘로즈버드’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숨을 거둔 케인의 영혼은 과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멱살 잡혀 지옥으로 끌려갔을지, 아니면 파우스트처럼 신에 의해 구원받았을지 궁금해진다. 케인이 파우스트처럼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기쁨을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케인의 영혼도 구원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케인’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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