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시민 케인 ❻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은 죽음에 이르러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을 남긴다. 그의 임종사는 회귀론적 세계관으로 점철된다. ‘미약함’이나 ‘창대함’이란 회귀回歸의 과정 속에 잠시 나타나는 것이다. 솔로몬도 그랬고, 케인도 그랬던 것처럼 모두 왔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다.

미약함이나 창대함이란 회귀의 과정에 잠시 나타나는 것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약함이나 창대함이란 회귀의 과정에 잠시 나타나는 것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손 웰스 감독은 영화 ‘시민 케인’을 통해 먼 길을 돌아 결국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세상 만물과 인간 여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갖는다.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는 항상 더 높은 곳을 향해 진보(progress)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발전했고, 내일은 또한 당연히 오늘보다 더 발전해야 하며,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무한대로 진보하다 보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욥기의 한 구절처럼 궁극의 위대한 세계로의 도달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반면 ‘변화의 회귀성’을 믿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인간은 끝없이 변화하는 것 같지만 변화란 결국은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처럼 무거운 바윗돌을 산 정상까지 굴려 올라갔다가 속절없이 다시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면 또다시 처음부터 굴려 올라갈 뿐이다.

모든 것은 원래 제자리로 돌아가고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점 하나가 빅뱅으로 끊임없이 팽창해 창대한 우주가 만들어졌지만, 어느 순간 다시 수축하기 시작해 언젠가는 우주 창조의 첫 순간처럼 다시 하나의 점으로 끝날 뿐이다.

케인이 마지막 순간 떠올린 것은 어린 시절 타고 놀던 눈썰매 ‘로즈버드’였다.[사진=더스쿠프포토]
케인이 마지막 순간 떠올린 것은 어린 시절 타고 놀던 눈썰매 ‘로즈버드’였다.[사진=더스쿠프포토]

여덟 살까지 빈곤한 산간마을에서 조악한 눈썰매 ‘로즈버드’를 타고 신나게 놀다 얼떨결에 집을 떠나 대도시에 유학하게 된 케인은 빅뱅처럼 무한 팽창한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창대한 끝을 향해 나아간다. 신문 부수는 날로 확대되고 그의 영향력과 재산도 그가 발행하는 신문 부수와 비례해 커져만 간다.

대통령의 조카와 재혼도 하고 급기야 대통령 자리까지 넘본다. 가히 거칠 것이 없다. 그러나 우주는 무한 팽창하는 것은 아니다. 무한한 것은 없다. 최대로 팽창한 우주는 어느 순간 수축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무無로 다시 돌아간다.

마지막까지 케인을 붙잡고 있던 것은 그가 일궜던 ‘뉴욕 인콰이어러’지도,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도, 그를 떠나버린 두번째 아내도 아니었다. 케인이 마지막 순간 손에 쥐고 있던 것은 그가 자란 콜로라도 산간마을을 추억하게 하는 주먹만 한 구슬 ‘스노 글로브(snow globe)’였다. 케인이 마지막 순간 떠올린 것은 어린 시절 타고 놀았던 눈썰매 ‘로즈버드’밖에 없다.

그야말로 우주의 종말처럼 처음 시작했던 하나의 점으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5000년간 축적된 유대인들의 지혜의 보고寶庫 「탈무드(Talmud)」에는 케인과 흡사한 소년이 나온다. 낚시에 열중한 한 소년과 현자賢者가 질문과 대답을 이어간다.

“왜 이렇게 열심히 고기를 잡지?”
“고깃배를 사려고요.”
“고깃배를 사서 고기를 더 많이 잡으면 뭐 하려고?“
“넓은 곳에 나가 사업을 하려고요.”
“그래서 뭐 하려고?”
“나중에 고향에 돌아와서 낚시나 하면서 지내려고요.”
“그래? 그럼 그냥 여기서 계속 낚시하면 되잖아?”


탈무드의 소년처럼 케인의 궁극의 꿈 또한 콜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 세상만사 잊고 어릴 때처럼 눈썰매를 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왕궁과 같은 대저택 ‘재너두(Xanadu)’에서 숨을 거두며 남긴 ‘로즈버드’ 한마디 속에는 이스라엘 솔로몬 왕의 허무한 임종사가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세상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은 죽음을 앞두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허무한 임종사를 남긴다. 그의 임종사는 회귀론적 세계관으로 점철된다.

‘시민 케인’은 결국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인간 여정을 보여준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시민 케인’은 결국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인간 여정을 보여준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해는 떴다가 지고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바람은 이리저리 돌아 불어온 곳으로 돌아가고…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고…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을 것이고 이미 했던 일을 후에 다시 할 것이다…하늘 아래 무엇이 새로울 것인가….’

‘미약함’이나 ‘창대함’이란 회귀의 과정 속에 잠시 나타날 뿐이다. 솔로몬도 그랬고, 케인도 그랬던 것처럼 모두 왔던 곳으로 돌아갈 뿐인 듯하다. 모두 그렇게 돌아갔고 우리도 그럴 모양이다. 크고 작은 일들에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것 없이 그저 ‘착하게’ 살다 돌아갈 일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