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지표로 본 경기침체

서민에게 미치는 경기침체의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산업 중 하나가 생명보험이다. 보험료가 비교적 비싼 탓에 가입자가 쉽게 줄고 중도해지도 크게 늘어난다. 생보업계의 지표만 보면 한국 경제는 이미 경기침체의 입구를 지나고 있다. 해지환급금은 사상 최대치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약관대출은 이미 최고치를 넘어섰다. 경기침체로 서민의 지갑이 얇아지니 보험도 사치가 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보험과 경기침체의 상관관계를 풀어봤다. 

경기둔화세가 계속되면서 보험을 해지하는 금융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경기둔화세가 계속되면서 보험을 해지하는 금융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8월 취업자 수 3000명 증가(전년 대비), 청년실업률 10.0%로 8월 기준 1999년 이후 19년 만에 최악, 가계부채 1500조원 돌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0%대로 하락 등 경기침체를 나타내는 지표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이럴 때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생명보험업계의 경영실적이다. 매월 납부하는 연금보험·사망보험 등의 보험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중도해지를 했다면 주머니 사정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이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보험 가입은 줄어들고 중도해지는 늘어난다. 생명보험업이 경기침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험 관련 지표만 보면 한국경제의 침체 시그널은 강해지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생보사의 초회보험료는 5조269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6조9911억원에서 1조7219억원 감소했다. 경기가 악화하면서 손해보험보다 비싼 생명보험 가입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도해지 보험은 크게 늘어났다. 올 6월 기준 보험 해약건수는 248만9018건으로 전년 동기(232만8706건) 대비 6.8%(16만312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험료 미납 등의 효력상실 보험도 63만9603건에서 65만4547건으로 늘어났다. 보험료 부담에 보험을 깨거나 보험료 연체로 효력이 사라진 보험계약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해지가 늘어나니 해지환급금 규모는 가파르게 늘었다. 

올 상반기 생명보험 해지환급금은 13조7867억원(해약 환급금 12조9187억원+효력상실 환급금 8680억원)으로 지난해 6월 11조5263억원보다 19.6%나 늘었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보험을 해지하는 금융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지금 추세라면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해지환급금(22조1086억원)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는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약관대출이다. 약관대출은 가입한 보험의 해지환급금을 담보로 해 돈을 빌리기 때문에 대출이 쉽지만 평균 이율이 연 7.0~10.0%에 이른다. 은행 등의 금융권을 이용하고 제2금융권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차주가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기간에 대출을 상환하면 아무런 탈이 없다.

문제는 약관대출의 증가 속도다. 보험약관대출 규모(6월 기준)는 45조5287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45조원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42조6288억원) 대비 2조8999억원이나 증가했다. 6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증가분인 2조3730억원을 넘어섰다. 보험약관대출이 증가했다는 건 급전이 필요한 가계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지난해 전국 1000개 가구를 대상을 실시한 ‘가구소득대비 보험료 부담실태’ 조사에 따르면 보험 중도해지 이유로 ‘보험료 내기 어려워서’가 28.2%로 가장 많았다.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서’라는 이유도 11.9%에 이른다. 전체의 40.1%가 금전적인 이유로 보험을 해지하는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중금리까지 상승하면 보험해지 건수는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 상승이 가계 대출 부담 증가로 이어지면 가장 먼저 해지하는 게 보험이다. 당장 쓸 돈이 없는 상황에다 미래를 대비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한 푼이 아쉬운 서민에겐 보험도 사치일 수 있다는 얘기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보험해지가 손실로 이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보험을 해지하는 건 그만큼 가계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라며 “한국 경제가 침체에 들어섰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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