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속도에 숨은 비밀

남들과 같은 돈을 내고도 질質이 떨어지는 제품을 받는다면 어쩔 텐가. 십중팔구는 “부당하다”면서 분노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388만명의 소비자들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광케이블과 구리 케이블로 연결한 인터넷(HFC)을 쓰는 소비자들이다. ‘비대칭형 인터넷’으로 불리는 HFC는 ‘대칭형 인터넷(FTTH)’보다 품질이 떨어지지만 요금은 똑같다. 문제는 내집 인터넷이 HFC인지 FTTH인지 아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인터넷 속도에 숨은 비밀을 취재했다. 

비대칭형 인터넷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품질이 떨어짐에도 대칭형 인터넷 이용자들과 동일한 요금을 내고 있다. 사진은 비대칭형 인터넷 이용자의 PC로 인터넷 품질을 측정한 결과.[사진=더스쿠프 포토]
비대칭형 인터넷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품질이 떨어짐에도 대칭형 인터넷 이용자들과 동일한 요금을 내고 있다. 사진은 비대칭형 인터넷 이용자의 PC로 인터넷 품질을 측정한 결과.[사진=더스쿠프 포토]

‘기가 인터넷’ ‘500MB급 인터넷’ ‘1Gbps 인터넷’…. 유선 인터넷 상품의 이름들이다. 기가·500MB·1Gbps 등 성능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모두 ‘다운로드’ 속도를 의미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품질을 결정하는 건 다운로드 속도뿐만이 아니다. 업로드와 지연시간(PC와 서버가 신호를 주고받는 데 걸리는 시간)도 인터넷 품질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SNS·메신저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글자뿐만 아니라 고화질 사진·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다. 지연시간은 PC의 인터넷 반응속도와 연관이 깊다. 지연시간이 낮을수록 인터넷 끊김현상이 줄어든다. 유튜브 동영상도 빠르게 재생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인터넷의 품질은 다운로드·업로드·지연시간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인터넷 품질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내부요인만이 아니다. 외부요인도 중요한 변수다. 바로 인터넷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광가입자망(FTTH·Fiber to the home)이다. 인터넷 업체망에서 가정까지 ‘광케이블’로만 연결하는 방식이다. 다운로드·업로드·지연시간 모두 쾌적하게 유지된다. 그래서 업계에선 이를 ‘대칭형 인터넷’이라고 부른다. 다운로드와 업로드의 속도가 똑같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광동축혼합망(HFC·Hybrid Fibre-coaxial)이다. 가정 인근 지역까지 광케이블을 설치한 다음 구리 케이블로 마무리하는 기술이다. 광케이블이 닿기 어려운 주택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구리케이블을 활용하는 HFC는 FTTH보다 인터넷 품질이 다소 떨어진다. 구리케이블의 데이터 손실률이 광케이블보다 높기 때문이다. 특히 HFC에선 업로드 속도와 지연시간이 크게 저하된다. 인터넷 설치 업체 관계자는 “HFC로 인터넷이 깔린 경우 보통 업로드 속도가 다운로드 속도의 10분의 1까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 HFC를 ‘비대칭형 인터넷’이라 명명한 이유다. 다운로드와 업로드의 속도차가 크다는 얘기다.

이호경 홍익대(전자전기공학) 교수는 “구리케이블을 쓰면 광랜보다 전송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면서 “오류가 발생하면 데이터를 다시 전송해야 하는데 그러면 자연히 인터넷 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소비자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건물 설계 단계에서부터 인터넷 연결방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요금이 다른 것도 아니다. 인터넷 품질이 다른데도 비대칭형 인터넷을 쓰는 소비자들은 대칭형 인터넷을 쓰는 소비자들과 똑같은 요금을 내고 있다. 인터넷 사업자들의 홈페이지에서도 별다른 요금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 약정기간이나 결합상품, 제휴카드 할인만 안내하고 있을 뿐이다.

홈페이지에도 없는 HFC

그렇다고 인터넷 업체가 비대칭형 인터넷인지 대칭형 인터넷인지를 알려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비대칭형 인터넷의 설치가 ‘약정해지’ 사유도 아니다.

인터넷 설치 업체 관계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터넷을 설치하러 오는 직원에게 FTTH 지원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라면서 “약관상 비대칭형 인터넷이 불편하다는 것만으로는 약정 해지를 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비대칭형 인터넷을 만나는 소비자는 말 그대로 ‘운’이 없다는 얘기인데, 그 수가 무려 388만2404명(올해 7월 기준)에 이른다.

인터넷 업체 측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회사 약관에 최저 다운로드 속도를 보장하도록 명시돼 있다”면서도 “업로드와·지연시간은 보장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체관계자는 “설치 방식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나는 건 알고 있다”며 “정부에서 지침을 내리면 우리도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정부의 별도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에서도 굳이 품질을 보증해 줄 이유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 품질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500Mbps 유선 인터넷의 평균 다운로드 속도가 469.31Mbps, 업로드 속도는 434.84Mbps라고 밝혔다. 준수한 결과다.

하지만 이 보고서엔 HFC·FTTH 등의 용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연시간이라는 용어는 측정결과에도 없었다. 과기부 관계자는 “품질 측정 결과 유선 인터넷의 평균 지연시간이 1~3㎳에 불과했다”면서 “변별력이 크지 않을 것 같아 표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평가 방법도 의문이다. 과기부는 평가단을 모집해 총 603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품질을 측정했다. FTTH·HFC 사용 여부나 지역·환경요인 등 평가단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품질 측정을 진행했던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보안상의 문제로 평가단 모집 기준을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둘 중 어떤 인터넷 설치방식을 쓰든 인터넷 품질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도 손 놓은 인터넷

하지만 전문가들의 주장은 다르다. 익명을 원한 한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인터넷 서비스의 품질이 다르다면 당연히 요금도 달라야 한다. 인터넷 속도는 고지하면서 대칭인지 비대칭인지 알려주지 않는 건 제품 함유량만 써놓고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표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터넷 사업자들은 제품의 성능을 과장해 막대한 이득을 벌어들이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 언급했듯 국내 비대칭 인터넷 이용자는 388만2404명이다. 이들이 모두 대기업 요금제 중 가장 저렴한 1만6940원 요금제(CJ헬로 100Mbps·3년 약정 기준)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한달에 인터넷 사업자들이 비대칭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벌어들이는 금액은 총 657억6792만원에 이른다. 어떤가. 비대칭형 인터넷이란 용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헌납한 금액치곤 상당히 많지 않은가.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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