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폐기물 수거정책

오래 쓴 장롱을 버리기 위해 구청에서 설명하는 대로 비용을 지불한 뒤 수거업체를 불렀다. 그런데, 수거업체는 추가비용을 요구한다. 어찌된 걸까. 수거업체의 일탈일까. 구청 시스템의 허점 때문일까. 대형폐기물 수거 과정에서 심심찮게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대형폐기물에 담긴 문제점을 취재했다.
 

서울시 자치구의 대형폐기물 수거 정책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로 인한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시 자치구의 대형폐기물 수거 정책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로 인한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 송파구에서 12년째 자취 중인 김현이(가명)씨는 최근 이사를 앞두고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삿짐을 꾸리던 중 처분하려고 내놓은 가구 때문이었다. 붙박이장이 설치된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김씨는 필요 없는 수납장과 책장 등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구청 사이트에 들어가 대형폐기물 배출규정을 살펴봤다. 처분할 가구의 규격에 맞춰 수거비용을 납부해야 했다.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품목도 있었지만 최대한 규격을 맞췄다. 수납장 1개와 책장 1개, 4단짜리 공간박스 4개를 처분하는 데 총 1만7000원을 지불했다.

문제는 수거 당일에 발생했다. 대형폐기물을 수거하러 온 기사는 “이 가구들은 돈을 더 받아야 한다”면서 사전에 지불했던 금액인 1만7000원에 버금가는 추가비용을 요구했다. 김씨는 구청에서 제시한 기준대로 요금을 지불했다고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수거 기사는 “신고 받은 품목과 규격이 맞지 않는다”면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구청 사이트에 나와 있는 대형폐기물 수거비용도 사실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현장에서 확인하고 품목과 지불한 수거 비용에 차이가 있으면 조정 후에 수거한다.” 김씨는 구청에서 제시한 기준을 따랐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소파ㆍTVㆍ침대 등 이른바 ‘대형폐기물’을 버릴 땐 별도의 돈을 내야 한다. 일반 생활폐기물에 비해 크기가 크고 무거운 만큼 운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절차는 어렵지 않다. 온라인이나 전화 또는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해 사전 신고를 한 후 기준에 맞춰 수거비용을 납부하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과정에서 파열음이 들려온다. 김씨의 사례처럼 사전에 납부한 비용 외에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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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대형폐기물 수거업무가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대형폐기물 수거와 관련된 기준은 모두 구區에서 조례로 정하고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조례가 각기 다른 만큼 대형폐기물 수거업무와 수수료 부과기준도 조금씩 다르다.

그중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건 일부 자치구에서 적용하고 있는 ‘위탁구조’다. 더스쿠프(The SCOOP)의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8곳은 구청이 직접 대형폐기물을 처리하고, 17곳은 대형폐기물 수거업무를 민간대행업체에 위탁했다.

17곳 중 8곳은 구청이 수수료를 징수한다. 민간대행업체는 수거업무만 전담한다. 해당 구청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구청이 징수한 수수료는 세입조치하고, 대행업체는 계약 내용대로 운반비를 일괄해서 받거나, 건수ㆍ무게ㆍ대금 등 정산 내용에 따라 별도로 대금을 받는다. 당연히 대행업체에 지급한 대금은 구청의 세출예산 항목에도 잡힌다.” 

문제는 나머지 9개 자치구다. 이곳에선 민간대행업체가 대형폐기물을 수거하고 수수료를 직접 징수한다. 이를테면 대형폐기물의 수거 및 비용징수를 100% 위탁했다는 얘기다. 당연히 구청이 직접 수수료를 걷는 지역에 비해 민간대행업체의 비행非行을 관리ㆍ감독하기가 어렵다. 

 

징수한 수수료가 대행업체의 수익(독립채산제)으로 직결된다는 점도 큰 리스크다. 대행업체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구민들에게 덤터기를 씌울 가능성이 높아서다. 장상환 경상대(경제학) 명예교수는 공공적인 영역에서 독립채산제를 적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채산제로 전환한다는 건 해당 기업이 단독으로 사업을 영위하도록 전임한다는 거다. 공공적인 부분에서 독립채산제를 적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행업체는 공익보다는 이윤 추구에 힘쓰고, 그에 따라 시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간대행업체가 주민에게 ‘비용 덤터기’를 치지 못하도록 수수료 기준이 명확한 것도 아니다. 처분하려는 품목이 수수료 기준 목록에 없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럴 경우 대부분 ‘유사품목’의 수거비용을 준용하는데, 이게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다. 성북구에 사는 김민성(가명)씨는 “최근 침대 머리 부분을 버렸는데 해당하는 품목이 없었다”면서 “그런데 수거업체에서는 여기에 침대 전체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매겼다”고 지적했다. 

한 대행업체 관계자도 이 부분을 꼬집었다. “지자체마다 민간대행업체마다 품목을 적용하는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가령, 책상을 수거한다고 할 때 책상값만 받는 곳도 있고, 서랍수를 따로 계산하는 곳도 있다. 기준이 정해진 품목도 이런데, 기준이 없는 유사품목은 어떻겠냐.”
 
지자체별로 수수료 비용이 천차만별인 것도 문제다. 예컨대, 10㎏짜리 세탁기를 버리려면 서울 마포구에선 6000원을 내야한다. 동작구에 살고 있다면 3000원만 지불하면 된다. 3단 높이의 서랍장은 종로구 4000원, 중구 2000원이다.

 

사전에 대형폐기물 수거 수수료를 냈음에도 대행업체가 추가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전에 대형폐기물 수거 수수료를 냈음에도 대행업체가 추가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왜 6000원인지, 어떤 이유에서 3000원인지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이는 민간대행업체가 ‘수수료 덤터기’를 씌우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 대행업체 관계자는 “구청이 정한 수수료는 현실성이 떨어져 수거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면서 “일부 업체들이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다.

다시 첫 사례를 보자. 김씨에게 대형폐기물 수거 수수료를 덤터기 씌운 장본인은 민간대행업체다. 하지만 민간대행업체가 주민을 상대로 비행을 저지를 수 없도록 제도를 탄탄하게 만들지 않은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 안타깝게도 피해를 입는 건 애먼 주민뿐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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