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과 청년 주거복지에 정책역량 집중해야

‘다주택자=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을 버리지 않으면 부동산 대책은 기대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다주택자=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을 버리지 않으면 부동산 대책은 기대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소중한 삶의 터전인 집의 가격이 유가증권처럼 매주 유력 일간지에 게재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 재산 중 부동산 비중이 80%를 넘나들다 보니 워낙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망국론’에 대한 걱정이 크지만, 개인이나 기업의 성공한 재테크 뒤에는 대부분 부동산 투자가 자리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에는 ‘경축 안전진단 통과’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집이 노후화돼서 더 이상 살기 곤란하다는 판정이 과연 축하할 일인가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안전진단이 통과하면 주민들은 재건축에 나서 큰 돈 들이지 않고 번듯한 새집을 차지하거나(일부 대지지분이 큰 아파트는 돈을 돌려받는다) 상당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ㆍ2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김수현 청와대 수석은 “이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시장은 코웃음을 쳤고 정부 대책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왜 그럴까.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경제논리를 무시했으니 시장이 보복을 한 결과다. 집값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결정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되는 가격메커니즘은 경제의 기본 중 기본이다.

우선 공급은 신규주택과 재건축 재개발, 그리고 중고주택 매물이다. 그런데 지금 서울 강남과 도심권에는 신규주택 공급이 거의 없고, 재건축 재개발도 발이 꽁꽁 묶였다. 새 집이 없으면 중고주택이라도 시장에 공급돼야 하는데 양도차익에 대해 최고 62%를 물리는 양도세 중과조치로 매물이 쑥 들어갔다. 

최근의 ‘미친 집값’ 사태는 매물 절벽이 길어지고, 공포에 사로잡힌 무주택자들이 앞다퉈 추격매수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지방 부자들까지 서울로 올라와 집을 산다.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 붐 세대(1955년생~1963년생)가 대거 은퇴하면 생활비 조달을 위해 집을 팔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노후 대비 임대용으로 사들였다.    

시작이 잘못됐으면 원점으로 돌아가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잘못을 덮으려고 또다른 무리수를 둔다. 이게 꼬이고 꼬여 부동산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를 엉망으로 만드니 문제가 심각하다. 청와대와 여당 실세 몇몇이 주도하고 정작 기재부ㆍ금융위ㆍ국토부 등 정부부처는 소외된 채 만들어진 9ㆍ13 부동산대책은 한마디로 세금 폭탄과 대출축소로 투기꾼을 때려잡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잘못된 대책의 후유증은 20년 넘게 하락추세를 걷는 한국경제의 숨통을 조일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거래위축과 금융대출 축소는 가뜩이나 현실과 괴리된 소득주도 성장으로 고전하는 한국경제에 치명적 한방이 될 수 있다. 다주택자나 비싼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오른 세금부담으로 소비를 줄일 것이고, 세입자들은 다락같이 오른 전월세 부담에 허리띠를 조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경제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지방과 서민, 그리고 은퇴자는 희망을 포기할 지도 모른다. 정부가 ‘배고픔’ 보다는 ‘배아픔’ 문제에 너무 과다 개입했기 때문에 빚어질 참사다. 

지난 25년 한국의 주식과 부동산은 대체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주식은 적은 돈으로 움직일 수 있어 먼저 오르는 반면 부동산은 덩치가 커 뒤에 오른다. 지금 한국의 주식시장을 보면 부동산이 더 이상 오를 이유를 꼽기 어렵다. 정부의 융단폭격으로 시장은 한동안 숨을 죽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좋은 집을 찾는 실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면 집값 파동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주택시장의 가격 왜곡을 해결하려면 거래 절벽 문제를 풀어야 하고, 다주택자에게 일시적 양도세 감면 등 당근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금리인상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다주택자=투기꾼’ 프레임에 갇힌 문 정부는 ‘세금 몽둥이’에만 집착할 뿐 이 해법을 선택할 수 없다.

정부는 일부 지역 아파트 값과 전쟁을 치르느라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일에서 손을 떼는 대신 서민과 청년의 주거복지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 청년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서울 외곽에 그린벨트 풀어 임대아파트 지어봤자 큰 효과가 없고 투기와 환경파괴만 가속화시킬 뿐이다.

출퇴근이 편리한 서울도심과 강남 역세권에 초고층 임대주택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123층 규모의 잠실 롯데타워 같은 빌딩을 10채 정도 지어서 파격적으로 싼 값에 서민과 청년에게 혜택을 주라고 권하고 싶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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