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맥주 부진한 이유

우후죽순 밀려드는 수입맥주에 점유율(가정용 맥주 기준) 50%를 내준 것도 모자라 1조원을 찍었던 국내 맥주 생산 실적이 1조원대 밑으로 떨어졌다. 국내 맥주업계는 “지금의 과세 표준 기준은 국산맥주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맥주 특성상 신제품을 내놓는 게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이는 얄팍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국내 맥주업계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거품이 걷힌 국산맥주의 민낯을 살펴봤다. 

수입맥주 공세에 밀려 국내 맥주 생산 실적이 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사진=연합뉴스]
수입맥주 공세에 밀려 국내 맥주 생산 실적이 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사진=연합뉴스]

국내 맥주 생산 실적이 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9월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국내 식품산업 생산 실적’을 발표했다. 2016년 1조196억원이었던 국내 맥주 생산 실적은 1년 만에 6.7% 감소해 9512억원을 기록했다. 식약처는 “수입맥주가 급증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맥주 수입은 가파르게 늘었다. 국내 맥주 생산 실적이 감소하는 동안 맥주 수입량은 22만3623t(2016년)에서 34만9471t(2017년)으로 증가했다.

국산맥주가 이토록 부진한 이유는 뭘까. 업계 종사자들은 하나같이 “과세 표준 기준이 달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수입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이 국산맥주보다 적다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수입맥주를 판매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국산맥주들이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업체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많은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데다 수입맥주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굳이 국산맥주를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한국주류산업협회의 ‘2017년 주류소비자 행태조사’ 결과를 보자. 주류산업협회는 국산맥주와 수입맥주를 비교하기 위해 13개 세부지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맛과 향, 디자인과 위생, 신뢰도에서 수입맥주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소비자들에게 수입맥주를 선호하는 이유를 물었던 조사에서도 ‘다양한 종류(38.8%)’와 ‘맛(32.3%)’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다. 국산맥주는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서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맥주업계는 “신제품 출시가 쉬운 건 아니다”고 반박한다. 주류는 다른 소비재에 비해 세금부담이 큰 데다 원가 비중이 높아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지난해 필라이트를 출시하고 올해 필라이트 후레쉬를 선보였지만 제품을 출시해 하나의 브랜드로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말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주류는 다른 소비재에 비해 충성도가 높다”면서 “신제품이 히트를 치더라도 그 바람이 오래 지속될 거란 보장이 없다”면서 주류업체들이 신제품 개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변명이다. 신제품을 쉽게 론칭할 수 있는 업종은 어디에도 없다. 소비자가 맥주에만 냉정한 잣대를 들이댈리 없다는 얘기다. “맥주업계가 쉽게 가려다 늪에 빠졌다”는 자성론이 더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굳이 새로운 걸 만들 필요가…”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국산맥주를 생산ㆍ유통하는 국내 업체들도 저마다 여러 수입맥주 브랜드를 국내 유통하고 있다 보니 굳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도 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받은 것들을 안전하게 유통하려고 하지, 굳이 신제품을 만들어서 맨땅에 헤딩하려고 하겠냐. 그게 결국은 부메랑이 됐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글로벌 1위 맥주 회사인 AB인베브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만큼 수입맥주 포트폴리오도 화려하다. 스텔라 아르투아(벨기에), 코로나(멕시코),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일본) 등 세계 각국의 맥주들을 국내에 유통한다. 하이트진로는 기린(일본), 싱하맥주(태국), 1664 블랑(프랑스), 포엑스 골드(호주) 등 6가지 수입맥주를, 롯데주류는 미국 맥주인 밀러, 블루문, 쿠어스 라이트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업계 종사자 역시 “신제품을 출시하려는 시도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수입을 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제품 하나 만들려고 하면 시간과 노력이 굉장히 많이 든다. 반면 수입맥주는 갖고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그런 시장 환경에서 수입맥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국내 브랜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 거다.”

 

국내 맥주업계가 부진을 탈출하는 해법은 결국 ‘혁신’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맥주업계 쌍두마차가 ‘혁신’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비맥주는 제품 패키지를 바꾸거나 제품에 변화를 주는 방법으로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카스 패키지를 싹 바꿨다. 출시 이후 처음이었다. 비용이 만만찮게 들었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보다 젊게 바꾸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호가든 맥주의 ‘체리’ ‘유자’ 시리즈도 우리 나름대로는 혁신의 일환이었다.”

하이트진로도 지난해 출시한 필라이트에 이어 올해 필라이트 후레쉬를 속속 시장에 내놨다. 주류산업협회 관계자는 “유통경쟁을 줄이고 업체들이 새로운 제품이나 품질 좋은 맥주를 생산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통경쟁 아닌 혁신할 때

혁신에 반응을 보인 시장의 시그널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이트맥주가 국내 최초로 내놓은 ‘발포주’ 필라이트는 출시 6개월 만에 1억캔, 1년 만에 2억캔, 1년 3개월 만에 3억캔 판매를 돌파했다. 필라이트 후레쉬도 필라이트보다 2배 이상 빠른 판매 속도를 보이고 있다. 업계의 혁신에 소비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한 것이다. 아직 희망의 끈은 살아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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