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없는 암호화폐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암호화폐에 손을 대고 있다. 암호화폐가 소비자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이점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마일리지와 무슨 차이가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획득 방식부터 사용법까지 별다른 차이가 없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개성 없는 암호화폐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암호화폐가 마일리지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암호화폐가 마일리지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암호화폐를 자사 서비스에 접목하는 업체들이 부쩍 늘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9월 4일 자회사 라인을 통해 암호화폐 ‘링크’를 공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링크가 라인 내 서비스인 웹툰·음원·게임 등의 결제수단으로 활용될 예정이어서다. 네이버는 9월 말까지 자사의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 이용자들에게 링크를 지급했다.

카카오는 기업들을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여기에 활용될 암호화폐 ‘클레이’의 공개도 앞두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미리 제휴를 맺은 고객사들을 상대로 10월 초 테스트 서버를 열 예정”이라면서 “이르면 내년 초에 서비스를 정식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로 ‘부활’을 노리는 업체도 있다. ‘미니홈피’로 전성기를 누렸던 싸이월드다. 이 회사는 기존 SNS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 올해 3분기에 ICO(가상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를 진행할 계획도 세웠다. 싸이월드는 암호화폐를 실제 화폐처럼 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비자는 보상으로 얻은 암호화폐를 선물가게에서 쓰거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금화할 수 있다.

스타트업들도 암호화폐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최근 페이익스프레스(결제), 포비즈코리아(e커머스), 코리아캐시백(해외직구), 네이처모빌리티(차량렌털) 등 4개 스타트업은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 보스코인과 잇달아 기술협약을 맺었다. 블록체인이 서비스에 정착되면 스타트업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 보스코인을 지급할 예정이다. 보스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판매할 수 있다. 최예준 보스코인 대표는 9월 3일 관련 행사에서 “보스코인은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인 보상체계로 작용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암호화폐나 마일리지나…

기업들이 제공하려는 서비스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보상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에겐 이미 비슷한 방식의 ‘가상화폐’가 있다. 마일리지·포인트 등의 적립금이다. 얻는 방법도 암호화폐와 동일하다. 쇼핑몰의 경우, 제품을 구매하거나 후기를 작성하면 적립금을 받을 수 있다. 카카오·라인 등 메신저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의 대부분은 참여 대가로 포인트를 지급한다.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암호화폐와 적립금은 별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도 기업들의 암호화폐 활용 방식에 “특별한 것이 없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전주용 동국대(경제학) 교수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는 특성상 많은 자원을 요구하는 기술”이라면서 “굳이 유지비가 비싼 암호화폐를 마일리지 수준의 보상체계로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기업의 암호화폐에는 혁신성이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블록체인 개발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암호화폐는 통화 발행량에 제한이 있고, 가격이 시장에 의해 정해지는 등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이 준비 중인 암호화폐는 무제한으로 발행되거나 기업에 의해 가격이 통제될 가능성이 높다.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기능 자체가 마일리지와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전락한 셈이다.”

블록체인 업체 관계자는 “암호화폐와 마일리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금화”라면서 “자신의 활동이 금전적인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반론을 폈다. 하지만 ‘현금화할 수 있는’ 암호화폐는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네이버·카카오의 암호화폐는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없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ICO가 법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현금화가 가능한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금화할 수 있는 건 싸이월드(싱가포르)·보스코인(스위스)처럼 해외에 법인을 둔 업체의 암호화폐다.

문제는 이들의 암호화폐 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인마켓코리아에 따르면 보스코인 시세는 올해 1월 초 1300~1500원대를 오르내리다 1월 26일 국내외 거래소 3곳에 상장하면서 최고 8035원까지 치솟았다(1월 31일). 하지만 현재 보스코인의 시세는 65원에 불과하다(9월 15일 기준). 소비자들이 이렇게 가치 없는 암호화폐를 적절한 보상수단으로 생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권혁준 순천향대(IT금융경영학) 교수는 암호화폐 시세가 폭락하는 이유로 “ICO 이후 대부분의 블록체인 업체들이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맹신은 금물

지난 9월 4일 네이버가 비트박스 이용자에게 링크를 나눠주기 시작한 이후 비트박스의 순위가 거래량 기준 세계 5위(9월 10일 기준)까지 단숨에 올라선 건 역설적으로 블록체인 업체의 ‘부실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권 교수는 “네이버의 풍부한 유료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용자가 몰린 것”이라며 “결국 암호화폐의 가치도 그 회사가 운영하는 사업의 가치로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암호화폐를 도입하면 사업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주장을 이어나갔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사업의 성패는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이나 혁신성 등에 달렸다. 암호화폐가 소비자를 끌어다 앉힐 거라고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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