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오피스 스페이시즈 체험기

공유경제가 대세다. 차도, 옷도 빌려 입는다. 최근엔 업무공간인 사무실을 빌려주는 공유오피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무심코 “그냥 예쁜 카페를 가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유오피스에 숨은 함의含意는 작지 않다. 공유와 공감, 이 시대적 철학이 이곳에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공유오피스를 직접 써봤다. 그 후일담이다.

사무실의 개념을 바꾼 공유오피스는 최근 국내 스타트업들의 보금자리로 떠올랐다.[사진=천막사진관]
사무실의 개념을 바꾼 공유오피스는 최근 국내 스타트업들의 보금자리로 떠올랐다.[사진=천막사진관]

IT 스타트업 기업을 만나기로 했던 지난해 초. 약속 장소가 참 생소했다. 언뜻 카페처럼 보이는 공유오피스였다. 당시 만난 CEO는 “사무실이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이 임대료를 지불하면 공간을 빌려주는 서비스인데, 스타트업 사이에선 꽤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공유오피스는 일반 사무실과 다른 점이 많다. 무엇보다 연 단위 장기계약을 할 필요가 없다. 짧게는 하루만 써도 된다. 복잡한 부동산 계약서나 보증금ㆍ관리비 등도 필요 없다. 인테리어와 가구도 이미 갖추고 있다. 카페나 프린터 등 각종 업무에 필요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여기선 노트북만 들고 가도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공유오피스가 주목받는 사업이란 걸 증명할 요소는 많다. 2015년 2개에 불과하던 서울지역 공유오피스는 최근 51개로 늘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공유오피스를 들를 때마다 기자는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자동차부터 가전ㆍ가구ㆍ의류 등을 나눠 쓰는 ‘공유의 시대’라지만, 중요한 정보들이 오가는 사무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이유에서였다. 오히려 지문, 홍채, 음성 인식 등을 활용해 물리적인 장벽을 쌓는 사무실도 숱하게 많다. 

그래서 궁금했다. 정말 공유오피스가 스타트업의 활력으로 무장된 유쾌한 공간일지, 아니면 ‘공유’라는 그럴듯한 수식어만 붙은 불편한 공간일지. 9월 12일 하루, 공유오피스의 세계에서 살아봤던 이유다. 장소는 지난해 9월 광화문 한복판 그랑서울 빌딩 7층에 둥지를 튼 네덜란드 공유오피스 기업 ‘스페이시즈’를 낙점했다.

입실 시각은 아침 10시, 천근만근인 출근길 몸을 이끌고 처음 만난 공유오피스 스페이시즈는 세련된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 7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수많은 회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왜 사무실에 회화 작품이 잔뜩 있지?” 호기심을 참고 출입문을 열었다.

유럽계 회사다운 북유럽풍의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입주기업들의 명단이 벽 한편에 채워져 있었고 안내 데스크엔 두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중 한명이 반갑게 일어서며 미소를 지었다. 스페이시즈 그랑서울의 마케팅 담당자인 김세영 과장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내부를 둘러봤다.

“스페이시즈는 전세계 55개 도시에 공유오피스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업력도 10년이 넘었죠. 서울 오피스에도 그 노하우를 녹였습니다. 2000㎡(약 600평)에 이르는 공간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본사에서 직접 했으니까요.”

공유오피스는 천국일까

특정한 테마가 있느냐는 질문엔 “‘집처럼 편안한 업무공간’이 콘셉트인데, 외적으론 ‘친환경’에 주력했습니다.” 실제로 공간 전체에 촘촘히 녹색 화분이 놓여있었다. 곳곳에 깔끔하고 참신한 오브젝트를 배치해 친환경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야외로 이어지는 곳엔 공중정원도 있었다. 스페이시즈 본사가 이 빌딩을 한국의 첫 사무소로 낙점한 이유도 이 공중정원의 영향이 컸다고 귀띔했다.

공유오피스 스태프들은 입주사의 여러 불편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공유오피스 스태프들은 입주사의 여러 불편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이곳저곳을 가리키던 김 과장은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미디어 투어 같단 느낌이 들어 “모든 입주희망자가 거치는 과정이냐”고 물었더니, 김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코스는 ‘입주상담’이었다. 입주방법에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멤버십’ 단계는 한달에 약 30만원을 낸다. 개방된 업무공간이자 커뮤니티 시설인 ‘비즈니스 클럽’을 이용할 수 있다. 규모가 제법 있는 회사라면 독립된 공간인 ‘오피스’ 단계가 적절해보였다. 기업 특성에 맞춰 데스크 개수와 외부 풍경에 따라 계약 조건을 유연하게 협의하는 게 가능했다.

설명은 다 들었다. 이제 써볼 차례다. 안내데스크와 마주보고 있는 비즈니스 클럽으로 발을 옮겼다. 겉으로 볼 땐 카페와 다를 게 없다. 실제로 고객 전용 바리스타가 커피도 팔고 있었다. 이 카페 같은 공간에 기자에게 주어진 건 ‘핫 데스크’다. 세로로 2m는 족히 되는 넓직한 원목 책상이었다. 오늘은 내가 쓰지만, 내일은 다른 사람이 쓸 책상이다.

당장 급한 마감이 없던 터라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다. 개방된 공간임에도 북적이는 느낌은 없었다. 책상 사이의 간격이 넓어 공간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른한 멜로디의 팝송 위주로 선곡했는지 작은 볼륨으로 The dynamics의 ‘move on up’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중하기엔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스페이시즈의 비즈니스 클럽은 단순한 개방형 업무 공간이 아니다. 입주사끼리 교류가 이뤄지는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모든 공유오피스 기업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게 ‘네트워킹’인데, 스페이시즈에선 기자가 앉아있던 이 공간이 그 역할을 맡았다.

공유오피스 기업들이 강조하는 네트워킹은 이런 기대에서 출발한다. 입주사간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통이 오고갈 거란 기대다. 여기서 스타트업을 함께 할 동료를 찾을 수도 있고,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라이벌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거다.

네트워킹이 핵심

하지만 기대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운 상상이다. 서로 마주치는 일이 잦다는 이유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리 없다. 실제로 과거 공유오피스에서 업무를 하던 한 CEO로부턴 이런 말을 들었다. “신뢰가 쌓인 사이도 아닌데, 그저 같은 사무실을 쓴다는 이유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가 있나요.”

스페이시즈에선 이따끔씩 유명한 화가들의 개인전이 열린다. 입주사의 네트워킹을 활용한 결과다.[사진=천막사진관]
스페이시즈에선 이따끔씩 유명한 화가들의 개인전이 열린다. 입주사의 네트워킹을 활용한 결과다.[사진=천막사진관]

김세영 과장에게 물었다. “정말로 여기서 서로 낯선 기업인들이 교류하나요?” 김 과장은 웃으며 답했다.

“물론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고객사끼리 친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기대만치 활발하지 않은 것도 있죠. 때문에 저와 같은 스태프들이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결과도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여러 점의 회화를 보지 않으셨나요? 국내 유명 화가가 개인전을 이곳에서 열었는데, 저희가 주최한 게 아니에요. 고객사와의 대화 중에 나온 아이디어가 현실이 된 겁니다. 이밖에도 디자인 고객사와 음반 사업 고객사가 친분을 다지다가 앨범 재킷을 함께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영화 같은 시너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소소한 협력 정도는 있다는 얘기다. 기자가 있는 동안에도 다른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곤 했다. 이번엔 다른 공간에 눈길을 줬다. 폰부스다. 들어가 보니, 소음 차단 효과가 제법이었다. 들어온 김에 데스크에 업무 보고도 했다. 시간이 흘러 금세 점심시간이 됐다. 광화문 일대는 누구든 만나기 편했다. 확실히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서울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비싼 임대료는 부담이다. 청년 스타트업들의 ‘서울 엑소더스’ 행렬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유다. 테헤란로에서 판교로, 최근엔 이마저도 어려워 더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공유오피스의 ‘도심 중심에 위치한 공간을 낮은 초기 비용으로 쓸 수 있다’는 취지에는 공감했다.

그럼에도 “꼭 공유오피스를 써야하는가”란 물음엔 확답을 못 내렸다. 그 답은 늦은 오후가 됐을 때, 의외의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올해 초부터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았다는 50대 중년기업가였다. 청년 창업가만 넘칠 것 같던 공간에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다. 경력도 그랬다. 국내 대기업에서 ‘부사장’ 직함까지 달았던 잔뼈 굵은 기업인이었다.

그가 바라본 공유오피스는 어떤 모습일까. “국내기업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주로 해외, 특히 유럽 쪽에 머물렀습니다. 그룹 단위로 돌아가는 편인 한국의 업무와 달랐습니다. 아무리 윗사람이라도 본인 고유의 업무를 가지고 있죠. 이 때문에 저는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공유오피스란 개념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가 공유오피스를 찾은 이유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오다가다 만나는 젊은 청년 기업인들과 안부를 나눕니다. 어쩌다 밤늦게까지 토론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1층으로 내려가서 맥주 한잔씩 하는 식이죠. 이러다보면 괜찮은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기자는 공유오피스의 장점만 늘어놓는 그에 맞서 여러 한계점을 나열했다. 정말 이 시장이 지속 성장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제 동년배 기업인들에게 공유오피스 얘길 하면 코웃음을 칩니다. 문제는 바로 그 코웃음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출퇴근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넷만 연결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건 20년 가까이 됐는데도, 일하는 방식이 그때와 비슷하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새로운 기술엔 새로운 사용 방식이 뒤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요? 공유오피스는 그 일환이라고 봅니다.”

살짝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기자도 ‘공유오피스’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였다. “사무실만은 공유하고 싶지 않다. 필요할 때만 쓰고, 여럿이 함께 쓴다는 건 우리나라 업무 방식과 거리가 멀다. 칸막이가 없고 명패도 없는 페이스북의 사무실도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 바로 옆에(그것도 칸막이라는 훌륭한 방어막도 없이) 하루종일 독기를 뿜뿜 뿜어내는 편집장이 앉아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중년 기업가는 반론을 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틀린 말도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 공유오피스가 계속 몸집을 불려갈지 장담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시너지가, 때론 혁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미 외국 비즈니스 세계에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미 글로벌 사회에선 대세다”

그래, 공유오피스는 저절로 업무 능률이 오르는 마법 같은 공간은 아니다. 한계도 뚜렷하다. 초기비용은 확실히 절감되지만 장기적으로 이용하면 더 많은 비용을 내는 구간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써야 하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비용이다. 하지만 ‘빌려 쓴다’기보다는 ‘함께 즐긴다’는 점에선 분명 매력적인 공간이다. 

마침 입주 선물로 받았던 게 떠올랐다. 연필과 지우개, 노트 세트다. 어떤 아이디어든 “썼다 지우라”는 의미다.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 서비스의 첫 선물이 옛날 물건처럼 여겨지는 연필이라니.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며 이 노트에 체험기의 엔딩을 적었다. “4차 산업혁명, 공유시대는 기업인들에게 또 하나의 딜레마를 줬다. 공유오피스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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