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결정의 득과 실

한미 기준금리의 격차가 11년 2개월 만에 최대치로 커지면서 한국은행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자칫 부진에 빠진 한국경제를 침체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 있어서다. 한은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기준금리에 숨은 문제점을 냉정하게 살펴봤다. 

한국은행의 10월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의 10월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10월 인상, 11월 인상, 내년 인상. 10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도 동결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한은이 금리인상 딜레마에 빠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은의 고민이 깊어진 이유는 한미 금리 격차에 있다. 시장의 예상대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9월 26일 기준금리를 연 1.75〜2.00%에서 2.00〜2.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그 결과, 올 3월 0.25%포인트였던 한미 금리차는 0.75%포인트(상단기준)로 벌어졌다. 2007년 7월 0.75%포인트의 금리차(미국 5.25%·한국 4.50%)를 기록한 이후 11년 2개월 만에 최대치다. 문제는 한미 금리격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연준은 2020년까지 기준금리를 5차례 더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 기준금리가 3.25~3.50%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한미 금리차는 자본 유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자율이 높은 쪽으로 자금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완연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사용하는 미국의 금리가 더 높다면 자본이 빠져나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9월 27일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0.25%포인트 벌어지면 15조원의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준의 금리 인상 이후 각종 지표도 시장의 우려를 키우기에 충분하다. 원·달러 환율은 9월 27일 달러당 1112.50원에서 지난 5일 1129.80원으로 1.55%(17.3원) 상승(원화가치 하락)했다. 자본유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이전 코스피시장에서 순매수세를 기록했던 외국인 투자자는 인상 이후 매도세로 돌아섰다. 10월 3거래일 동안 팔아치운 금액은 8275억원에 이른다. 9월 한달 기록한 매도세(2974억원)의 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치 찍은 한미 금리차


이주열 한국은행총재도 기준금리 인상 시그널을 강화하고 있다. 이 총재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직후 “거시경제와 금융 불균형 축적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 4일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는 “금융 불균형을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등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리정책의 방향성을 동결에서 인상으로 분명히 한 셈이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숱하게 많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는 경기흐름에 따라 결정된다.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는 것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고 시중에 풀린 돈이 많아 통화량을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상황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정도로 양호하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4% 줄어들며 올 3월 이후 6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소매판매 증가율은 0%를 기록하며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7월 101.2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8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4를 기록, 전월 대비 0.4포인트 하락했다.

2016년 6월 99.5 이후 26개월 만에 최저치다. 8월 기준 전년 대비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치며 ‘쇼크’에 빠진 고용시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9월 중 이례적인 호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취업자 수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며 “9월과 10월 모두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올해 2분기 기준 1493조2000억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우려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159.8%였던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올 2분기 161.1%로 증가했다. 소득보다 부채가 더 많아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금리 변화에 연동한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8월 기준 70%에 달한다. 기준금리가 인상으로 감당해야 할 부채 상환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소득이 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계의 소득은 132만5000원으로 전년 대비 7.6%나 감소했다. 2분위(하위 20~40%)와 3분위(하위 40~60%) 가계의 소득도 각각 2.1%, 0.1% 줄었다. 전문가들이 기준금리 인상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은으로선 미 기준금리에 인상에 맞춰 올려도 ‘골치’고 모른 척 동결을 해도 ‘골치’다.

섣부른 금리인상 경기 발목 잡을 수도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의 성장세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을 따라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경기 회복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경제 상황과 경기 흐름을 감안한 신중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한미 금리역전 현상을 해소하는 데 치중해서는 안 된다”며 “금리역전 현상의 근본적 원인인 우리 경제의 부진한 성장세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둘러싼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이 총재의 매파적인 발언에 힘입어 10월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확신할 수 없다. 10월보다 11월 인상이 유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동락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경기를 보면 동결 요인이 우세하지만 금융안정성의 우려가 높아진 점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수정경제전망’이 나오는 10월보다는 11월 인상이 유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준금리 인상 딜레마에 빠진 한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 분명한 점은 한국의 통화정책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것뿐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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