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락손해배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대방 잘못으로 구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 차가 박살났을 때, 차주車主가 공통적으로 내뱉는 한마디다. 아무리 잘 수리해도 차를 이전 상태로 복구하기는 힘들고, 중고차 시세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때 차주는 상대방 보험사로부터 수리비 외에 시세하락으로 인한 손해까지 배상받을 수 있을까.

격락손해(중고차 시세하락)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보험사는 드물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격락손해(중고차 시세하락)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보험사는 드물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월 신차를 구매한 A씨. 그런데 3개월 뒤 그는 퇴근길에 추돌사고를 당했다. 100% 상대방 과실을 인정받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자동차 수리업체 관계자는 “차량의 주요 골격이 심하게 파손돼 파손부위를 절단한 후 용접하는 방식으로 수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차량의 중고차 시세도 같은 차량보다 떨어질 것(법적 용어는 ‘격락손해’)”이라고 설명했다. 

수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신차를 구입해 석달만에 사고를 당한 A씨는 억울했다. A씨 차량의 시세는 2800만원으로 그리 싼 가격도 아니었다. A씨는 총 수리비 470만원 외에 격락손해까지 청구하기로 했다. 차량기술법인에 의뢰해 차량의 가치가 335만원 하락한다는 평가를 받아 이를 토대로 사고 가해차량 보험사인 B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는 B사로부터 격락손해를 배상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B사는 격락손해에 대한 배상약관을 두고 있지만 이런 문구가 있었다. “수리비가 차량 가격의 20%를 넘는 경우 출고 후 1년 이하인 차량은 수리비의 15%를, 2년 이하인 차량은 수리비의 10%를 중고차 시세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B사 측은 “수리비가 차량 가격의 20%를 넘지 않기에 해당사항이 없다”면서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입장은 어떨까. 2017년 5월 대법원은 A씨와 비슷한 손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이런 판결을 내렸다. “자동차의 주요 골격이 파손되는 등 중대한 손상이 있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리를 마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상회복이 안 되는 수리 불가능한 부분이 남는다고 보는 게 경험칙에 부합하고, 그로 인한 자동차 가격 하락의 손해는 통상의 손해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2016다248806).” A씨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격락손해의 상당 부분을 배상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과연 법원의 입장을 모르겠느냐는 거다. 그럼에도 보험사들은 격락손해를 거절하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가 격락손해와 관련해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의 지급기준을 개정할지 여부를 두고 논의 중인 이유다.

현행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별표2’의 대물배상 지급 기준은 B사의 약관과 똑같은데, 현실적인 시세하락분을 보험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대상범위와 지급률 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격락손해의 지급기준 확대를 반대한다. 보험금이 오르면 일부 운전자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사고를 낼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미 격락손해를 ‘통상의 손해’로 인정했다. 굳이 불필요한 소송으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필요 없이 보험사들이 이를 보장해주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예측하지 못한 대형사고를 당한 억울한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장기간 비용을 들여야만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대기업인 보험사들의 ‘갑질’일 뿐이다. 
안정현 IBS법률사무소 변호사 huadel@ibs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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