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사업 다각화 바람

최근 사업을 다각화하는 제약사들이 늘고 있다. 제약사가 약만 만든다는 건 이제 옛말이다. 화장품 사업부터 식품개발과 외식사업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흥미로운 건 사업 다각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전문적인 경영코스를 밟은 2세 경영인과 전문경영인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제약업계의 세대교체가 사업 지형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제약업계에 부는 사업 다각화 바람을 취재했다. 

제약사들의 경영진이 세대교체되면서 단편적이었던 사업 포트폴리오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약사들의 경영진이 세대교체되면서 단편적이었던 사업 포트폴리오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IFC몰 L1층에 한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198㎡(약 60평) 안팎의 작지 않은 규모에 깔끔한 원목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메뉴도 독특했다. 알약 모양의 영양제를 절구에 갈아 음식ㆍ음료 등에 곁들였다. 

눈길을 끈 건 또 있었다. 이 레스토랑이 제약업체 유한양행이 론칭한 건강식품 브랜드 ‘뉴오리진’의 콘셉트 스토어라는 점이었다. 뉴오리진은 홍삼ㆍ녹용ㆍ소금ㆍ설탕 등 천연원료로 만든 식품을 만들고, 콘셉트 스토어에서는 이 원료들로 만든 음식을 선보이는 방식이었다. 문진표를 작성해 영양제를 처방받는 등 제약회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는 구색도 갖췄다.

제약회사와 외식사업이라는 조합이 여전히 어색하지만 유한양행은 이 신사업을 정착시키고 키워나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엔 송파구 롯데월드몰에 뉴오리진 콘셉트 스토어 2호점을 열었고, 수도권 주요 지역의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 등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선 제약회사는 유한양행만이 아니다. 최근 몇년 사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제약회사들이 부쩍 늘어났다. 특히 코스메슈티컬(코스메틱+파마슈티컬ㆍ화장품과 의약품의 합성어)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를 만큼 화장품 브랜드를 내놓는 제약회사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동국제약이다. 동국제약은 2015년 4월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24’를 론칭하면서 신사업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토털헬스케어 전문점 ‘네이처스비타민샵’과 화장품 매장 ‘메이올웨이즈’까지 오픈했다.

동국제약뿐만이 아니다. 종근당은 지난해 11월 화장품 브랜드 ‘벨라수’를 론칭했고, 일동제약은 2015년 12월 ‘퍼스트랩’, 동구바이오제약은 2016년 ‘셀블룸’을 통해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유한양행도 지난해 5월 뷰티ㆍ헬스 전문 자회사 유한필리아를 설립해 유아용 화장품 브랜드 ‘리틀마마’를 선보였다. 이밖에도 JW중외제약은 일본의 저염ㆍ저단백 즉석조리식품(레토르트)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고, 녹십자와 한독 등은 분유시장에 진출했다.

제약사들이 이처럼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는 이유는 간단하다. 리스크를 분산하면서 성장을 꾀하기 위해서다. 제약회사의 본업은 의약품 개발ㆍ판매다. 회사가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하기 위해선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게 상책上策이다.

문제는 신약 개발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성공 확률도 낮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약 개발에 따른 리스크를 해소하고,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제약사들이 신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세대교체’다. 또다른 제약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제약업체의 창업주들과 달리 2~3세 후계자 중엔 전문적인 경영수업을 받은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기존의 의약품 사업보다는 신사업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전문경영인을 두는 제약업체가 적지 않다는 점도 제약업계의 팔색조 변신을 이끌고 있다.” 

일리가 없는 얘기가 아니다. 최근 과감하게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유한양행은 창립주인 유일한 전 회장 이후 지금까지 전문경영인 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사장은 1978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2015년 사장 자리에 오른 영업통이다. 최근 유한양행이 신사업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도 이 사장 취임 이후 진행된 체질개선 및 사업다각화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동국제약의 신사업 브랜드 센텔리안24도 2세 경영인과 전문경영인의 합작품이다. 권동일 전 회장 별세 이후 이른 시기에 경영을 맡은 권기범 부회장과 2013년 사장직을 맡은 오흥주 사장은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화장품 브랜드를 내놓았고,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회사의 성장가도를 이끌고 있다. 

JW중외제약 역시 전재광 사장과 신영섭 사장의 공동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가고 있고, 3세 경영인인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은 약학 전공자인 윤원영 회장과 달리 사업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제약회사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진행될수록 제약회사들의 사업 지형에도 많은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제약사들이 본업(국민건강)을 등한시 한 채 장사에만 열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거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를 약뿐만 아니라 건강이라는 넓은 카테고리 안에서 봐야 한다”고 반론을 폈지만 본말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제약업계의 팔색조 변신에 ‘사회적 책임’이 깃들면 금상첨화라는 조언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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