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사막의 라이언 ❷

이탈리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는 리비아 민중항거가 20년 가까이 지속되자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던 무솔리니는 마침내 폭발한다. 무솔리니는 로돌포 그라치아니 장군을 리비아 총독으로 임명해 반군 섬멸의 특명을 내린다. 이탈리아 최정예 사단과 기갑부대가 리비아 사막으로 총집결해 무자비한 공세를 시작했다.

전쟁의 광기는 전쟁의 목적과 수단을 뒤섞어 놓는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전쟁의 광기는 전쟁의 목적과 수단을 뒤섞어 놓는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그라치아니 장군이 이끄는 이탈리아군은 반군의 공급원이 되는 리비아의 모든 주거 지역에 들이닥친다. 반군과 양민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학살을 자행하고, 거주민들을 모두 끌어다 수용소에 가둔다. 양민들과 포로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고문과 처형이 이어졌다.

리비아 반군들은 오랜 저항투쟁 기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탈리아군의 야만적인 공세에 적잖이 당황하고 이탈리아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반군 지도자 오마르 무크타르(Omar Mukhtar)의 고뇌도 깊어만 간다. 무수한 희생과 고난을 감수한다 한들 이탈리아군을 축출하고 리비아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단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저항에 따르는 희생은 너무나 크고 참혹하다.

그러나 무크타르를 고뇌에 빠트리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투쟁의 방식에 관한 문제다. 그라치아니 장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가족과 친지ㆍ동료를 잃은 반군들은 무크타르에게 코란의 가르침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동일 보복’을 외친다. 이탈리아군이 전투원도 아닌 비무장 양민들을 학살한다면 그들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고, 리비아 반군 포로들을 고문하고 학살한다면 마찬가지로 이탈리아군 포로들도 고문하고 죽여 보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분노에 치를 떨고 복수심에 피가 끓는다.

이탈리아군과의 전투에서 리비아 반군은 젊은 이탈리아 장교를 포로로 잡는다. 부대원들은 그를 처형해서 이탈리아에 복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뇌에 빠졌던 무크타르는 복수를 외치는 부대원들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반문하다. “이탈리아인들이 우리의 선생인가? 우리가 왜 그들이 하는 대로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리비아 반군과 양민을 향한 이탈리아군의 무차별적 학살이 자행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리비아 반군과 양민을 향한 이탈리아군의 무차별적 학살이 자행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무크타르는 그들이 믿는 코란은 포로를 죽이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한 진정한 이슬람교도는 전쟁을 혐오해야 하며, 전쟁은 오직 우리의 땅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젊은 이탈리아 장교에게 이탈리아 국기를 쥐어 돌려보낸다. 그는 그렇게 ‘전쟁의 광기’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부대원들에게도 경계시킨다. 오마르 무크타르의 위대함이다.

전쟁의 광기는 전쟁의 목적과 수단을 뒤섞어 놓는다. ‘고향 땅’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살육은 어느 순간 살육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다. 저들이 저지르는 악행이 지독히 악마적인 것일지라도 그 악행을 저지른 자들에게 똑같이 되돌려주는 것이 마치 정당한 행위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악마와 싸우기 위해선 나 자신도 악마가 돼야 한다.

악마와 싸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나 자신도 이미 악마가 돼있음을 깨닫고 몸서리치게 된다. 독재자와 투쟁하다 보면 나 자신도 독재자가 돼있다. 독재권력을 붕괴시키고 집권한 민주투사가 그들이 쫓아낸 독재자와 똑같은 방식의 통치를 하는 비극이 되풀이된다.

갈등 현장에서 ‘받은 대로 되돌려준다’는 미러링 방식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사진=뉴시스]
갈등 현장에서 ‘받은 대로 되돌려준다’는 미러링 방식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사진=뉴시스]

오마르 무크타르가 간디의 ‘비폭력 정신’에 공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크타르의 해법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의 원칙인 ‘사티아그라하(satyagrahaㆍ진리를 향한 열정)’와 닮았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정신은 ‘아힘사(ahimsaㆍ타인에 대한 불살생, 불혐오)’와 ‘타파시아(tapasyaㆍ자발적인 자기희생)’라는 덕목으로 완성된다. 그것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했던 목적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적들을 닮아가고 악마와 싸우다 우리도 악마가 될 뿐이다.

우리 사회의 남녀갈등 현장에서 ‘받은 대로 되돌려준다’는 소위 ‘미러링(mirroring) 방식’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녀갈등뿐만 아니라 모든 갈등의 현장을 ‘미러링’의 법칙이 지배한다. 욕설에는 욕설로, 모욕은 모욕으로 갚아주고,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미러링’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갈등과 문제는 없다. 우리는 ‘악’과 싸우면서 마치 그 ‘악’을 우리의 선생처럼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한다. 그렇게 함께 악에 빠져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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