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어린이집·유치원 횡령사고 왜 못 막았나

사립어린이집 원장 A씨는 정부 지원금 중 일부를 어린이집과 무관한 남편에게 월급 형태로 지급했다. 학부모들은 A씨를 ‘횡령죄’로 고소했다. 승자가 정해진 누가 봐도 뻔한 게임,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A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어린이집에 복귀했다. 어떤가. 이상하지 않은가.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립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발생하는 횡령사고를 막기 힘든 이유를 추적했다. 이번에도 법적 공백이 화를 불렀다.
 

보육료나 정부 보조금을 횡령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원장을 현행법으로 처벌하는 건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보육료나 정부 보조금을 횡령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원장을 현행법으로 처벌하는 건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1월까지 8개 특별ㆍ광역시와 경기도 지역의 대형 유치원과 어린이집 95곳의 회계ㆍ급식ㆍ위생 등을 점검했다. 그 결과, 91개(95.8%) 시설에서 총 205억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실을 적발했다.” 지난해 2월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과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실이 밝힌 ‘어린이집ㆍ유치원 실태점검’ 결과의 일부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회계부정이 숱하게 발생한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그로부터 1년8개월이 흐른 지금, 정부나 국회는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을까. 그렇지 않다. 번번이 사립어린이집ㆍ유치원 운영자들의 반대에 막혔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기도는 지난해 4월 보조금의 부정사용 등을 사전에 예방하겠다면서 금융회사들과 함께 ‘어린이집 회계관리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일부 사립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에 부딪혀 여전히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치원의 회계부정 사례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취지에서 정책 토론회를 진행하려다 무산됐다. 일부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이 토론회장을 점거하는 등 집단적으로 반발했기 때문이다. 
사립어린이집ㆍ유치원 원장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왜 남의 사유재산을 부정하게 사용했다거나 횡령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이 주장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입금되는 보육료(학부모가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금)나 보조금(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직접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자신들의 사유재산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 참고: 경기도는 도내 어린이집 운영 지원사업과 교직원 지원 등에만 한해 7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언뜻 들어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을 대법원과 하급심의 판례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최근에 나온 대법원 판례 하나를 보자. 어린이집 원장 A씨는 남편이 운전기사로 근무한 것처럼 꾸며 급여를 지급하다 학부모들에게 들통났다. 학부모들은 보육료(아이사랑카드로 결제)를 횡령했다면서 A씨를 고소했다. 판결은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갔는데, 대법원은 지난 8월 “업무상 횡령이 아니다”고 최종 판결했다. 

보조금 횡령해도 처벌 안 받는 이유

이유는 이랬다. “횡령죄는 횡령 대상이 된 재물이 타인의 소유여야 한다. 학부모들이 지원받은 보육료와 필요경비는 목적과 용도를 한정해 위탁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일단 어린이집에 납부하면 그 돈은 A씨 소유다. 따라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어린이집 설치ㆍ운영에 필요한 범위로 목적과 용도를 한정한 금원이다. 하지만 보조금이 A씨 소유로 된 다른 금원과 섞여 있다면 이를 특정할 수 없다. 따라서 보조금을 일부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 해도 전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 판결의 잣대는 단 하나다. 보육료든 보조금이든 그것이 ‘목적과 용도가 한정된 금원이고 특정할 수 있는 돈’이냐다. 이럴 때 가장 정확한 판단 기준은 바로 ‘별도의 전용 계좌’다. 보건복지부가 공표하는 ‘보육사업안내’에 “보조금 지원은 보조금 전용카드나 보조금 전용계좌를 이용해야 하며, 시ㆍ도지사가 정하는 소액의 범위 내에서는 현금결제 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보육사업안내’는 법률이 아니어서 강제성도 처벌 규정도 없다는 점이다. 사립어린이집 원장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보육료든 보조금이든 자기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의미다. 하나의 통장에 수입을 모두 섞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가 불법도 아니다.

영유아보육법이 “거짓이나 그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거나 보조금을 유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해놓고 있음에도 막상 횡령으로 기소되는 어린이집 원장들이 모조리 무죄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은 지난 5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비한 정책 토론회를 무산시켰다.[사진=연합뉴스]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은 지난 5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비한 정책 토론회를 무산시켰다.[사진=연합뉴스]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자. 2017년 5월, 어린이집 원장 C씨는 식자재 납품업체와 짜고 허위 거래명세서를 작성해 급식비를 부풀리고 보조금을 지급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영유아보육법상 처벌할 규정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정부가 사립어린이집에 기본보육료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음에도 영유아보육법 등 관련 법규에서 기본보육료의 사용처와 관련 규제를 명시하지 않아 보조금 사용을 통제를 할 근거가 없다”면서 “보조금을 부도덕한 방법으로 유용해도 정부가 이를 제재할 수 없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통장 분리 원칙부터 세워야 

문제의 해결책은 뭘까. 간단하다. 통장을 분리해서 쓰도록 하면 된다. 이용희 IBS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거짓이나 그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아 유용했는지를 알려면 돈에 꼬리표를 달아야하는데, 각 금원마다 통장을 갖추도록 강제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공공어린이집도 횡령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 법은 법리에 없는 걸 유추 해석해서 벌하는 걸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도 처벌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매우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다”면서 “사립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원장 개개인의 도덕성을 재단하기보다는 별도 계좌를 강제하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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