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9월 28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하지만 일부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현실성이 결여된 일부 벌칙 조항 때문이다. 가령, 택시ㆍ버스 등에 영유아용 카시트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한다든지, 경사로에 주차할 때 고임목을 의무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취지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검증을 거치지 않은 법안은 되레 질서를 해칠 수 있다.
 

9월 28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결함이 있는 조항이 많다. 대표적인 게 고임목 의무화다.[사진=연합뉴스]
9월 28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결함이 있는 조항이 많다. 대표적인 게 고임목 의무화다.[사진=연합뉴스]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안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정이다. 도로교통법의 개정(특히 벌칙조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개정법안에 결함이 있거나 타당성이 결여돼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9월 28일 시행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결함을 안고 있는 몇가지 조항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그럼 문제를 안고 있는 조항들을 살펴보자. 첫째는 모든 좌석 안전띠 착용 및 카시트 의무화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 적용하던 ‘뒷좌석 안전띠 의무 착용’ 범위를 모든 도로로 넓혔다. 사고 발생 시 가장 위험한 자리가 뒷좌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개정 조항은 탑승객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규정이자 좋은 제도인 셈이다. 

문제는 카시트 의무화다. 자가용은 문제가 될 게 없지만 택시나 버스 등에서도 의무적으로 카시트를 장착해야 한다. 부모들이 카시트를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모든 택시에 부피가 작지 않은 카시트를 장착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버스는 더욱 심각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상업용 차량에는 카시트 장착을 강요하지 않는 것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가용은 당장 단속을 시작하되, 택시와 버스에도 적용을 해야 하는지는 고민을 해봐야 하는 이유다. 

 

아쉬운 부분은 또 있다. 영유아를 벗어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 일반 안전띠를 착용하면 어깨가 아닌 목으로 내려와 사고시 질식사 위험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좌석을 높이는 보조방석인 부스터의 의무화도 고려해봐야 한다.

둘째 문제는 자전거 안전모 의무착용이다. 안전모를 착용하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두꺼운 방탄복을 의무화하면 사고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와 같다. 과연 집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슈퍼에 가는데 안전모를 써야 하는가. 공원이나 캠퍼스, 아파트 단지 내에선 예외라는 점도 우습다.

자전거 안전모 착용은 차도를 달리는 자전거 동호인 등 위험요인이 큰 대상을 중심으로 자발적 착용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 처벌조항을 둬 강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전거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한 호주는 자전거 인구가 급감했다. 반면 자전거 천국인 일본은 안전모를 착용하면 신기하게 쳐다볼 정도다. 중요한 건 자전거 탑승자와 보행자, 자동차 운전자가 서로 배려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셋째는 경사로에서의 고임목 장착 의무화다. 매해 청소차ㆍ트럭 등의 내리막길 사고가 발생해 입안立案한 것으로 보인다. 경사로에서는 주차브레이크를 하고, 앞바퀴 방향을 보도블록 턱으로 향해 안전성을 높이며, 대형차는 바퀴 앞에 고임목을 받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법안을 만들어 의무화하고 벌칙조항을 마련하는 건 다른 문제다. 가령, 고임목을 몇개 놓아야 하는지, 기울기가 몇도 이상이어야 경사로로 치는지 등을 어떻게 따질 것인가. 실제로 이번 개정조항엔 이런 점들이 정의돼 있지 않다.

 

언급한 것처럼 법안을 마련하기 전엔 숱하게 많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입법은 현실과 문화적 공감대가 바탕이 돼야지, 실적이 바탕이 돼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문화적 공감대가 함께하는 법안 마련을 기대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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