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협상의 최종 목적지

북이 변했다고 생각하면 ‘진보’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수구꼴통’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지나친 이분법이다. 사진은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사진=더스쿠프 포토]
북이 변했다고 생각하면 ‘진보’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수구꼴통’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지나친 이분법이다. 사진은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사진=더스쿠프 포토]

암수暗數살인은 ‘아무도 모르는 살인’을 말한다. 신고조차 되지 않아 피해자도 없고, 가해자도 모른다. 영화 ‘암수살인’은 잔혹한 장면이 없는 심리극에 가까운 영화이지만, 우리 중 누군가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 자체를 인식시켰기에 두려움을 자아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북한 핵협상이 떠올랐다. 협상이 이대로라면 평화로운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거대한 국제 사기극으로 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암수 핵협상이 된다면 결과는 영화처럼 정의가 승리할 수 있을까.

먼저 가해자가 미끼를 던지고 상황을 주도한다는 점이 닮았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살인범(강태오ㆍ주지훈 역)은 형사(김형민ㆍ김윤석 역)를 불러 자신이 과거 죽인 사람들이 총 7명이라고 자백한다. 형사는 거짓자백을 의심하면서도 진실의 부스러기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수사에 나선다. 북한 핵도 비슷하다. 북한은 제발로 협상장에 나오기는 했지만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배신한 것은 반성하지 않는다. 북한의 속내를 알지만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수 없다. 평화의 실마리를 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배경 때문이다. 살인범은 7개 범죄리스트라도 내놓았는데 북한은 핵에 관한 신고조차 외면한다.

살인범은 왜 자신의 끔찍한 범죄를 털어놓은 것일까. 그의 목적은 미끼로 던진 7개 범죄의 수사가 엉터리라는 점을 법정에서 밝혀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 역시 조작됐다고 역공을 취하겠다는 의도다. 살인범은 수사에 협조하는 척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을 뒤섞어 수사가 미궁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북한도 미국에 대해 ‘상응조치’만 강조할 뿐 비핵화의 시발점인 핵 신고와 검증절차에는 관심이 없다. 북핵 협상이 난마처럼 얽히고설켜 몸통과 뿌리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가 되면 북한의 핵무장은 이미 파키스탄처럼 ‘조용히’ 완성돼 있을 것이다. 결국 목표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 대북 경제제재의 해제를 겨냥했다고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남한 내 분열과 한미군사동맹의 와해는 덤으로 얻을 ‘엄청난’ 과실이다.

살인범은 수사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영치금 등 물질적인 요구를 하고, 나중엔 이를 근거로 회유 협박을 당했다면서 역으로 형사를 고소해 수사를 진흙탕에 빠뜨리게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한다며 경제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과 꼭 닮았다. 남북경협이 족쇄가 돼 나중에 코가 꿰이는 상황이 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핵은 고도의 심리무기이고, 경제무기이고, 외교의 중대한 수단이다. 노름판에 비유해서 좀 그렇지만 북한 핵은 어느 정도 도박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놓고 벌이는 긴박한 승부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를 뿐이다. 핵을 두고 벌어진 노름판의 ‘호구’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미국은 핵 협상을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 놓고 시간 끌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미국은 본토를 공격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폐기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정작 비핵화에는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평화공세를 하며 정작 핵심인 비핵화는 살라미 전술로 시간을 끌겠다는 계산이다. 

“북한 핵은 통일되면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나 “비핵화는 불가능한 일이니 포기하고 핵 동결이나 얻어내자”는 발상은 너무 어리석고 위험하다. 무슨 근거로 3대 세습 왕조인 북한이 독재에서 개혁ㆍ개방의 길로 나올 것이라고 판단하는지 이유를 찾기 어렵다. 늑대가 사는 굴에 혼자 가지 말아야 하는데 사방을 보아도 우리 편은 없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 변심할지 모르고, 중국과 러시아는 원래 북한 편이다. 

북이 변했다고 생각하면 진보이고, 여전이 불신하면 ‘안보팔이’ ‘수구골통’이라고 매도한다. 대화하고 양보하는 것은 일정부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변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로마의 제패 비결은 상대방을 ‘믿고 싶은’ 대로 믿지 않고 ‘믿을 만큼’만 믿은데 있었다. “어데 있노, 니….” 영화에서 주인공 형사는 세상에서 시신조차 없이 사라진 이들을 향해 묻는다. 보통의 스릴러 영화들과 달리 암수살인에서 형사가 바라보는 종착지는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북한 핵협상도 마찬가지다. 최종 목적지는 남과 북의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돼야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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