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왜 못 잡나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못 산다.” “부동산으로 돈 벌기가 가장 쉽다.” 1990년대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던 일본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숱한 정책에도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이 ‘분배의 실패’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에도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에도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두명의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부동산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7년 5억원대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A는 입이 귀에 걸렸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최근 15억원대에 매도했기 때문이었다. 가격이 10년간 월평균 1000만원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하지만 전세로 살고 있는 B는 “전세금이 3배 가까이 오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식주 중 하나인 집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재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으로 조절할 수 있는 다른 필수재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부동산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0위권이지만 국토 면적은 109위에 불과하다. 국토 대부분이 산악 지역이어서 주거에 적합하지도 않다. 한국의 주택가격이 오르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란 얘기다. 한번 오른 주택 가격은 절대로 하락하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말이 탄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면에서 주택은 단순한 생활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비금융자산(토지·주택·자동차 등) 비중은 74.4%로 미국(34.8%), 일본(43.3%) 등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주택 가격의 변화가 자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부동산을 단순한 투자 개념으로 보면 가격의 상승이나 하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거나 손해를 보는 건 당연하고 그 책임은 투자자가 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부동산은 다른 자산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국가와 가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서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데, 열심히 일해도 내집을 마련하기 힘든 무주택자의 좌절감은 근로의욕 상실 등 사회문제를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다른 한편으론 투기대상으로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 세금·대출 등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가격상승의 원인은 공급부족’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선 이 규제책에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주택 공급량은 정말 부족할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주택 보급률은 2010년에 100%를 넘어섰고 2016년 기준 102.6%에 이른다. 서울의 주택보급률도 96.3%로 100%에 근접해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부른 양극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도 증가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빈집은 126만5000호에 이른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에도 빈집이 9만3000호나 있다. 이런 빈집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국토연구원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은 2050년 302만호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주택가격 상승세의 원인이 공급부족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럼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다름 아닌 ‘분배’다. 지난해 전국 주택 자가보유율은 61.1%를 기록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돌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한사람이 여러 주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만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2016년 28만명에 달했다. 5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도 10만명(10만9000명)을 넘어섰다.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 명의의 주택을 포함하면 한가구가 보유한 주택 수는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점은 2주택 이상 소유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187만9000명이었던 2주택 이상 소유자의 수는 2016년 198만명으로 5.3% 증가했다. 2016년 부동산 가격 기준으로 상위 1%(13만9000명)가 보유한 주택은 총 90만6000채라는 통계자료(국세청)도 있다. 한명이 평균 6.5채의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주택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가격의 정상화를 더 늦춰서는 안 된다. 부동산 시장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악재는 매우 많다. 주택가격 상승세를 뒷받침해온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인 부동산 규제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인구구조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저출산·노령화에 따른 인구감소는 부동산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부동산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게 뻔하다.

부동산 가격 상승 이후 갑작스러운 폭락은 경기침체의 단초가 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과 미국이다.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못 산다.” “부동산으로 돈 벌기가 가장 쉽다.”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직전 유행했던 말이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 아닌가.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돼 전세계를 경기침체의 늪으로 몰아넣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도 부동산에 있었다. 저금리로 시장에 풀린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주택시장에 거품이 꼈다. 

공급 아닌 분배 문제 해결해야

이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미중 무역전쟁, 인구감소, 청년실업 문제 등 경기침체의 시그널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우리나라 경제를 헤어날 수 없는 침체에 빠뜨릴 수 있다.

일본 부동산 버블 이후 “비정상적인 가격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말이 등장했다. 주식시장의 격언 중에도 “가장 위험한 주식은 많이 오른 주식”이란 말이 있다. 최근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더 이상 주택이 재산증식을 위한 투기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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