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후’ 어떻게 맞아야 하나

인간의 오만과 비극은 죽음을 외면하는데서 기인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의 오만과 비극은 죽음을 외면하는데서 기인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20여년 전 미국 하와이 출장길에 본 광경이 아직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태평양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에 개 무덤이 즐비했습니다. 십자가와 함께 세워진 묘비에는 세상 떠난 가족(반려견)에 대한 그리움과 비통함이 넘쳐났습니다.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로는 의아함을 넘어 문화충격이었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 개는 식용食用이었고, 방범견에 불과한 천덕꾸러기였으니까요.

딸아이가 처음 하얀털을 가진 수컷 말티즈를 데려왔을 땐 데면데면했습니다. 꼬리치고 입 맞추려고 달려드는 강아지가 성가시고 귀찮았습니다. 그러나 술 한잔 걸친 가장이 밤늦게 귀가할 때까지 현관 한 모퉁이에서 기다리는 강아지에게 어느새 곁을 주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권리가 신장된 것은 ‘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벌써 19년이 되었으니 사람으로 따지면 90살이 넘은 나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창 때는 산책길에서 주인을 앞에서 이끌었고, 늙어서는 주인 뒤를 힘들게 뒤 따라오던 강아지는 요즘엔 거의 누워서 지냅니다. 시력과 청력은 벌써 상실했고, 걷기는커녕 제대로 서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치매가 찾아와 대소변도 가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깔끔하던 강아지가 아무데나 배설을 하는 모습을 보면 짜증에 앞서 생명의 소멸과정을 보는 짠한 마음이 앞섭니다. 

머지않아 아니 어쩌면 조만간 반려견은 가족 곁을 떠날 운명입니다. 정든 강아지와 어떻게 이별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반려견이 세상을 떠난 뒤 겪는 상실감과 우울감을 말하는 ‘펫로스(pet loss) 증후군’도 있지 않습니까. 개를 키워 본 사람은 압니다. 사람은 개를 배신해도 개는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록 자신을 학대하고 야멸차게 내다버려도 버려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과 의리의 표상이지요. 

동네 동물병원 수의사는 안락사를 권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면 마지막까지 보살피려 합니다. 다만 마지막 떠나는 길을 너무 고통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배웅했으면 합니다. 무릇 언젠가 사라져야 할 생명과 쌓는 정은 너무 큰 고통이므로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을 생각입니다. 

죽은 다음에 거창한 장례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별의 예禮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법적으로 사유재산에 불과한 반려동물의 사체는 폐기물이어서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20년 가까이 정을 붙이고 살아온 가족인데 조촐한 장례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학창시절 고문古文 시간에 배웠던 조침문弔針文은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잃어버린 바늘의 의인화해서 그 슬픔을 표현한 글이지요. 한갓 바늘 하나를 놓고 비통해 하는데 “개 한 마리 죽은 걸 가지고 유난 떤다”고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갓 짐승인 개를 통해 우리네 노년의 모습을 미리 내다보게 됩니다. 반려견의 생애는 인간 수명의 5분의 1 축소판입니다. 생노병사의 과정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지요. 그래서 떠날 채비를 하는 반려견의 모습은 인간에게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듯합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떠나야 할 운명이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합니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오만과 비극은 모든 생명을 가진 자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애써 외면한 채 영원히 살 것처럼 오판해서인지 모릅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도 늘 목말라 하며 탐욕을 부립니다. 지금의 젊음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착각을 하며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합니다. 

반려견을 가만 안아주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동물로 태어나서 주인님을 잘 만나 평생 분에 넘치게 호강하다 갑니다. 떠나면서 외람되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축복입니까. 우리 개보다 5배 이상을 건강하게 살지 않습니까. 하지만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는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입니다. 사랑도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즐거운 삶을 누리세요. 세상 떠날 때 인생의 평가기준은 ‘얼마나 돈 많이 벌고 출세했는지가 아니라 ‘한평생 얼마나 사랑과 온정을 함께 나눴는가’가 아닐까요? 멋 훗날 별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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