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단층 역풍 맞은 중신용자 김용인씨 사례

금융소득 3800만원, 신용등급 5등급의 중신용자 김용인(39ㆍ가명)씨. 그는 지난해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20%대의 고금리 대출에 몸을 기댔다. 10% 전후의 중금리 대출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금리 대출이 거절되면서 시중은행으로도, 서민금융으로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중금리 대출이 단절된 금리단층의 문제점을 김씨의 사례를 들어 짚어봤다.
 

중금리 대출이 단절된 탓에 고금리 대출을 강요받는 중신용자들이 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금리 대출이 단절된 탓에 고금리 대출을 강요받는 중신용자들이 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스에서 금리단층斷層 현상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금리단층 현상이란 대출상품의 금리구조가 저금리와 고금리로 양분화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쉽게 말해, 고신용자들을 위한 저금리 대출 상품과 저신용자들을 위한 고금리 대출 상품은 있지만 중신용자들에게 필요한 중금리 대출 상품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별 얘기가 아닌 듯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신용평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체 신용등급(1~10등급) 가운데 중신용자에 해당하는 4~6등급 인원은 총 1850만명에 달했다. 비중은 40.6%다. 이들이 전부 제 신용등급에 맞춰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고금리 대출 상품을 강요받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직장인 김용인(가명)씨에겐 금리단층 현상이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에도 대출을 받아야 할 일이 몇차례 있었는데, 때마다 금리단층 현상이란 말을 실감했다. 가장 처음 금리단층 현상을 겪은 건 지난해 8월께다.

김씨는 2년에 한번 꼴로 가슴을 졸인다. 전세 재계약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7년째 전세살이 중인 김씨는 재계약철이 되면 늘 “이번엔 전세를 얼마나 올려달라고 할지” 노심초사다. 전세가격이 과하게 오르면 금융권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씨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8월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은 “지난 재계약 때 전세금을 크게 인상하지 않아서 이번엔 좀 많이 올렸다”면서 2500만원의 추가금을 요구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당장 돈을 끌어올 곳이 마땅치 않았던 김씨는 대출을 받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예상대로 대출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세대출 1억8000만원을 끼고 있는 김씨로선 신용대출을 받아야 했는데, 중간에 걸쳐 있는 신용등급이 발목을 잡았다. 신용평가사에 조회한 결과, 김씨의 신용등급은 5등급. 중신용자였다. 최근 생활자금이 빠듯해 카드론을 끌어다 쓰고,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요금을 수차례 연체한 결과였다. 당연히 제1금융권에서 저금리로 대출을 받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중금리 대출은 무난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승인 거절’. 다른 시중은행과 상호금융을 찾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중금리 대출상품인 사잇돌 대출의 보증기관 서울보증보험이 보증서 발급을 거절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보증보험 측은 “최근 장기간 연체된 적이 많다는 점”을 거절 이유로 밝혔다.

그렇다고 햇살론ㆍ새희망홀씨대출 등 서민금융이 김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씨의 연 금융소득은 3800만원. 금융소득 3500만원 이하라는 자격조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오갈 데가 없어진 김씨가 결국 찾은 곳은 제2금융권이었다. 김씨는 전세자금 지급 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20%대의 고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김씨는 “급한 대로 고금리 대출을 받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자를 갚아 나갈지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중금리는 통상 10% 전후다. 원래대로라면 중신용자인 김씨는 중금리 대출을 받는 게 맞지만 그보다 10%포인트가량 금리가 높은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 금리단층 현상의 단적인 폐해다. 문제는 금리단층에서 비롯되는 피해가 ‘악순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탓에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 이자 부담이 워낙 무거워 연체율이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씨도 이런 악순환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고금리 대출을 받은 이후로 되레 크고 작은 대출을 받는 횟수가 잦아졌다. 김씨는 “아이가 커가면서 돈 들어갈 곳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웠던 이자가 태산처럼 커보인다”면서 “최근 몇차례 생활자금과 이자를 갚는 용도로 카드론을 썼는데, 귀신같이 알고 권유해오는 대출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어렵다”고 한탄했다. 

김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중신용자의 비중은 전체의 40.6%에 육박한다. 김씨처럼 금리단층 현상의 역풍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빈기범 명지대(경제학) 교수는 “금리단층 현상이 심각하다”면서 “중신용자들이 중금리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됐을 때 고금리 대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는 “금리단층 현상이 해소되기 위해선 금융산업에 경쟁 DNA가 이식돼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현재 중금리 대출은 P2P(개인간) 대출, 카드론, 사잇돌대출 등이 전부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중금리 대출을 커버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당초 목표를 잃었다. 현재 독과점적인 성향의 금융산업에 다양한 주체들이 나와서 다양한 상품을 제시하면 이런 문제들을 다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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