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리 대출의 현주소

정부가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위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고금리와 저금리의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는 금리단층 현상이 해소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중은행은 여전히 고신용자 위주로 대출을 하고 있다. 저축은행 등의 제2금융권은 고금리 대출에 열을 올린다.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은 중신용자가 고금리 대출로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신용자는 있지만 중금리 대출은 없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중금리 대출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정부의 중금리 대출 활성화 노력에도 금리단층 현상은 여전하다.[사진=뉴시스]
정부의 중금리 대출 활성화 노력에도 금리단층 현상은 여전하다.[사진=뉴시스]

“중신용자는 있는데 중금리 대출은 없다.” 중금리 대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말이다. 돈이 필요해 시중은행의 문을 두드린 중신용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다. 주택 등 확실한 담보가 있거나 웬만큼 직업이 좋지 않은 이상 신용등급 4~6등급의 중신용자가 금리가 낮은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는 쉽지 않다.

통계자료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규태(바른미래당) 의원이 금감원과 나이스신용평가 등에서 제출받은 금리대별 대출금액과 신용등급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중금리대출(금리 10~15% 미만) 비중은 0.38%에 불과했다. 대상을 금융권 전체로 확대해도 중금리 대출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에서 중금리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0.82%(금융위원회)에 불과했다.

올해 6월 기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평균 5.03%다. 카드사·캐피탈 등 여신전문회사가 19%로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저축은행은 22.2%에 이른다. 대부업체 평균 금리는 법정 최고금리 24%를 웃도는 26.5%에 이른다.

1000만원을 대출(1년 만기, 원금일시상환) 받았다고 가정할 때 은행은 월 4만1910원(총 이자 50만2920원)을 이자로 내면 된다. 하지만 여신전문회사의 이자는 월 15만8330원(총 이자 189만9960원)으로 상승한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 내야 할 이자는 각각 월 18만50000원(총 이자 222만원), 월 22만830원(총 이자 264만9960원)으로 치솟는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면 3.7~5.2배의 이자를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은행과 제2금융권 사이에 대출금리 격차가 그만큼 벌어졌다는 건데, 이런 금리단층 현상은 중신용자에겐 풀기 어려운 과제와 같다. 시중은행의 문턱을 넘기 어렵고 서민금융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중신용자가 어쩔 수 없이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때문인지 정부도 중금리 대출시장의 확대에 나섰다. 정부는 2012년 시중은행에 중금리 대출을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 ‘국민세금으로 조성한 공적 자금으로 외환위기를 넘긴 만큼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로 은행을 압박했다. 연 10%대 대출상품을 출시하라는 공개적인 주문에도 나섰다.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2016년에는 ‘중금리 신용대출 활성화 방안’까지 발표하며 중금리대출을 독려했다. 지난해엔 중금리 대출 공급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켰다. 이런 노력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에는 ‘중금리 대출 발전방안 간담회’까지 개최하며 중금리 대출 활성화에 나섰다.

정부가 중금리 대출 활성화에 열중하는 이유는 금리단층 현상이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작동할 수 있어서다. 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면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서민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리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돈을 갚을 수 있는 여력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8일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존 2.9%에서 2.7%로 0.2%포인트 하향조정했다. 4월 GDP 성장률을 3.0%로 제시한 이후 6개월 만에 0.3%포인트나 떨어뜨린 셈이다. 소득도 감소세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1분위 (소득 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올 1분기 8.0% 감소한 데 이어 2분기에도 7.6% 줄었다. 1분기 감소폭은 역대 최대치다. 2분기 감소폭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큰 감소폭을 나타냈다. 2분위(소득 하위 40%)의 명목소득도 1분기와 2분기 각각 2.1%, 4.0% 감소했다.

여전히 부족한 중금리 대출

특히 1·2분위에만 나타났던 소득 감소가 2분기에는 3분위(소득 하위 40~60%)로 확대됐다. 3분위 명목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0.1% 감소했다. 소득 감소세가 중산층까지 확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정책으로 은행 문턱이 더 높아지면서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는 풍선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활성화 정책에도 중금리 대출시장의 확대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이는 평균금리가 20%를 웃도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의 대출 잔액의 가파른 증세를 보면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부잔액은 16조5014억원으로 지난해 6월 15조4352억 대비 1조662억원(6.9%)나 증가했다. 대부업을 이용한 차주의 수는 247만3000명에 이른다.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잔액 증가세도 가파르다. 2016년 8조8609억원이었던 저축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9조5005억원으로 증가했고 올해 5월 기준 10조2403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5개월 사이에 7378억원 늘어나며 지난해 증가분(6396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게다가 신용대출로 돈을 빌린 차주 109만1000명 중 78.1%에 해당하는 85만1000명이 연이율 20%가 넘는 고금리로 돈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중금리 대출 확대를 부르짖고 있지만 자칭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여전히 고금리 위주로 대출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시중은행에서 움직여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달비용이 높은 제2금융권보다 은행이 사업을 진행하기가 더 수월해서다. 은행의 입장은 달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도 실적이 나올 때마다 쉬운 이자 장사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하면 ‘이자 놀이’를 한다는 비판여론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금리 대출은 리스크관리와 은행의 평판 관리차원에서는 마냥 따를 수는 없다”며 “중금리 대출은 은행에 계륵 같은 존재”라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시중은행의 입장에서는 대출을 원하는 고신용등급의 대출자도 충분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껴안으면서 중금리대출을 늘릴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를 위해 탄생한 인터넷전문은행도 고신용자 대출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 정부의 정책 자금을 투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은행 대출의 중 일정부분을 중금리 대출에 사용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축은행 고금리 장사 여전해

중금리 대출 활성화는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시장에서 개선되지 않는 부분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금리단층 문제는 금융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취약계층을 위한 대출은 복지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을 평가할 때 중금리 대출 비중을 포함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며 “신용등급 평가 방법도 채권 회수 측면의 신용평가에서 벗어나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통한 금리단층해소는 단순히 포용적 금융의 확대 차원의 이슈가 아니다. 고금리 대출로 내몰린 중신용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금융회사의 중금리 대출 상품 출시를 독려는 것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다.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한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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